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일하는 대통령”의 길을 택했다. ”경제”라는 국민적 화두를 내걸고, 첫발을 내디딘다.
5월 10일, 제 17대 대통령 선거출마를 공식선언한 것이다. ‘당 경선 룰에 대한 강재섭 대표 중재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후, 전광석화와 같이 치고 나가는 기세가 당당했다. ”잘 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 국가”로 응축된 집권의지도 돋보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한나라당 예비 대선후보”로 등록하여 ‘탈당 가능성’을 스스로 뿌리뽑는 모습이나, 출마 기자회견 장소를 ‘염창동 당사’로 정하여 은연중 “한나라당 주인자리”를 넘본 것은 여론조사 부동의 1위인 예비후보로서의 웅위한 자신감을 표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동안 ‘굴러온 돌’로서 알게 모르게 느꼈던 불안을 단숨에 날려버린 듯한 모습이다. 축하할 일이다.
문제는 ‘아름다운 경선’과 ‘결과 승복’과는 거리가 멀어진 당내 사정이다. 어쩌면 당내 경선 룰을 두고 일었던 분란이 더욱 심화될지도 모른다. 사실 10일 같은 날 중재안에 대한 질문을 받고, 박근혜 전 대표는 ”받아들일 수 없죠, 거부예요.”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이런 식으로 하면 한나라당이 원칙이 없는 당이고, 이런 식으로 하면 경선도 없다”고까지 말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판 밖에서 보는 눈으로 볼 때, ”원칙이 없는 당”이라는 박 전 대표의 말이 맹탕 빈 말인가. 그가 내세웠던 “원칙론과 걸레론”이 몇 일이라도 숨 쉴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전달하려는 어떤 의미와 설득력을 보여 주었다는 말일 것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이제까지 우리가 보았던 박 전 대표의 공세는 ‘이기기 위한 공세가 아니고, 살아남기 위한 공세’였다. 20% 정도의 힘이 실린 기세다. 판세를 뒤엎을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 집안싸움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처지이다. 살인검이 아닌 활인검(活人劍)으로 싸워야 할 이유이다. 퇴로를 열어주고, 손 잡고 “축하의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심정적 쉼터를 마련해 주면서 ‘경선 경주’를 계속했더라면 어찌되었을까. 누구는 ”가랑비에 옷 젖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적은 적이다. 기세를 꺾어야 할 때는 “단 칼에 목을 치듯” 손속에 인정을 두어서는 안된다고 말할 것이다. 다 옳은 말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사실 박 전 대표의 공격의 속셈을 살펴보면 이 전 시장보다 경선을 관리할 강재섭 대표를 겨냥했을 수도 있다. 대표 경선 때부터 힘을 실어 주었던 ‘강재섭 대표’를 자기가 원하는 그 자리에 묶어두기 위한 공세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순간에 ‘이 전 시장편’으로 한 발 다가가 ‘자기에게 절대 불리한 중재안’을 들고 나오는 강 대표를 보아야 하는 박 대표다. “아름다운 경선”을 위하여 자리를 지키려 할 것인가.
이쯤해서 “귀를 넓게 열고 잘 들어야 한다”는 이회창 전 총재의 말을 들어보자. “두 사람(이, 박)이 감정적인 모습을 보인 게 놀랍다. 상처가 깊으면 단일화해도 고전할 수 있다”고 염려 반, 충고 반의 말을 남긴다. 대선 후보였던 당 원로의 눈에도 어느 한 쪽이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보는 것이리라.
한나라당 밖으로 눈을 돌리면 “이와 박”의 “화해를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볼 수 있다 (본보 5/9 참조). 한나라당 경선 룰 갈등에 대한 다섯 전문가들의 견해 가운데 원인 제공과 이해 득실에 대한 의견은 말고, 앞으로의 전망만을 보자. 그 중 두 분은 “대선 다자 구도 가능”을 지적했다. ‘이, 박’ 둘 다 후보로 나갈 것이라 점쳤다. 또 다른 두 분은 아예 “분당 가능”을 지적했다. 한 분만 “예측 쉽지않아”라고 의견을 접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의견은 ‘분당 가능’을 점친 이정희 교수의 지적이다.
”대선 주자들에 의해 당이 움직여지는 게 문제”라며 “한국 정당문화 자체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당이 생성소멸했던 발자취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으로부터 시작하여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가 “자기 당”을 만들었고 임기 동안 꾸려 갔다. 노무현 대통령도 ‘열린 우리당’을 만들었고, 지금은 사분오열 그 명을 다하려 하고 있음을 본다. 한나라당이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음은 야당 10년 덕일 것이다.
말이 쉬워 “정당문화를 고쳐야 한다”고 하겠지만, 이런 여건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민주시민들의 철저한 주인의식과 정치의식의 고양이 먼저다. 법과 원칙을 지키고, 지도자를 키워낼 수 있어야 한다. 지역감정과 집단이기주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정당을 두고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했던 고려, 조선조 천 년과 근세 100년의 역사로부터도 깨어나야 할 것이다. “골수에 새길 교훈”만을 챙길 수 있으면 될 것이다.
이명박 전 시장이 출마선언문에서 “저는 국가 최고 권력자가 아니라 국가 최고 경영자가 되고자 한다. 말 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일 잘 하는 대통령이 되길 소망한다”고 했다. 높이 올라 앉아 멀리 보고 큰 그림을 그리며, 참으로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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