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기려다, 터져버렸어”
자고 나면 집값이 오르던 시절, 주택 열풍을 타지 못하면 얼간이였다. 일단 사면 돈을 벌기 때문에 집을 사기 위해 전쟁을 치렀다. 특히 새 집이나 콘도는 잠깐 샀다가 당일로 되팔아도 몇 만은 건진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의 많은 신축 분양 사무소 앞에는 투기꾼들이 밤을 새워 줄을 섰다. 그러나 광풍이 쓸고 지나간 지금 그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단기 전매차익 노렸던 플리퍼들
한몫커녕 발목 잡혀 돈 고생 막심
대부분 막차 탔던 소액 투기자들
손해 감수해도 못 팔아 진퇴양난
단기 전매차익을 노렸던 주택 투기의 허망한 끝마무리를 최근 AP통신이 전했다. 3년전 라스베가스의 주택신축업체 ‘풀트 홈’ 세일즈 오피스 앞에는 새 집을 분양받기 위한 긴 행렬이 밤을 새웠다.
라스베가스 근처 신흥도시인 헨더슨 거주 샘 슈와르츠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부촌에 있는 자신의 집이 18개월 사이 20만달러나 치솟는 것을 보고 주택 붐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TV와 간단한 먹거리, 음료수를 들고 가서 파킹랏에서 참으로 별난 야영을 했다. 수백명의 다른 사람들도 밤을 샜다. 그들은 대부분 단기차익을 노린 플리퍼(flipper)였다. 일단 분양받아서 일년 안에 재빨리 팔아서 한몫 챙길 속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도 않게 주택시장이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한몫 챙기려던 작전은 졸지에 발목을 잡는 악수로 변해버렸다. 갚아야 할 모기지가 집 가치보다 더 많아졌고, 이익은커녕 진퇴양난의 굴레를 뒤집어쓰게 됐다.
지금 나붙는 것은 세일 간판이고 쌓이는 것이 매물이다. 차압은 기록적으로 늘고 있다.
네바다는 전국에서 주택 차압 1위다. 팔려고 내놓아 못 팔고 부채 상환 불능으로 차압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지난달 미전국 차압은 일년 전보다 47%나 크게 늘어나 14만9,150건으로 증가했다. 주택 775가구당 한 가구꼴이다.
네바다는 벌써 3개월 연속 차압순위 전국 1위다. 일년전에 비해 220% 늘어나 184 가구당 한 가구꼴로 차압이 급증했다.
라스베가스가 소재한 클라크 카운티는 지난해 30가구당 한 가구꼴로 차압 절차에 들어갔다.
18개월전 스와르츠가 집을 예약했을 때 세일즈 에이전트는 바이어 다섯 명이 들어설 때 마다 가격을 2만달러씩 올렸다. 처음 봤을 때 50만달러였던 집이 자신의 차례가 되어 세일즈 에이전트 앞에 앉았을 때는 가격이 54만 달러로 올라가 있었다.
그래도 다들 개의치 않았다. “길 건너 집들이 70만달러인데 지금 이 집을 분양만 받으면 바로 20만 달러를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매입을 마무리 지으려는데 집값이 푹 떨어졌고, 슈와르츠는 이상 기미를 간파하고 매입을 취소했다. 빨리 발을 뺐기 망정이지 꾸물거렸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고 그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운이 좋지 못했다. 그 때 분양받았던 사람들은 다들 발목 잡혔다. 집값은 떨어졌고 팔려 해도 팔지 못하고 재정난으로 허탈에 빠진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분노에 떠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낭패감에 술과 도박에 빠져버린 이들도 적지 않다.
다른 주도 비슷하지만 특히 네바다,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 투기열풍이 뜨거웠던 지역은 차압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대부분 투기 때문에 빚어진 불행”이라고 리얼티 트랙 마케팅 부사장 릭 사는 꼬집는다. 고위험 융자와 고위험 부동산 거래가 섞여 터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샌디에고도 피투성이다. 다운타운 콘도는 라스베가스 도박판처럼 광풍이 일었지만 그때의 바이어들은 매입했던 집을 다시 은행에 넘기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샌디에고 다운타운에는 주인 없는 빈 콘도가 2005년 초에 비해 다섯배나 늘어났다.
매물이 쌓이자 라스베가스 신축주택 업체들은 새 프로젝트 건설 페이스를 지연시키고 에이전트에게 주는 커미션을 12%까지 올리는 한편 수영장, 그래닛 카운터탑, 고급 어플라이언스와 같은 업그레이드를 10만달러까지 제공하면서 재고처리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투기꾼들은 자취를 감췄다.
마이애미도 마찬가지. 투기적 매입은 고사하고 차압매물만 쌓이고 있다. 플로리다 차압 파일이 3월중 전년 동기비 54%나 늘어났다. 511가구당 한 가구꼴이다.
스테로이드 먹은 것처럼 날뛰었으니 당연히 조정 국면이 찾아온 것이다. 투기는 이젠 실종됐지만 막차 탔던 사람들의 고통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애플 프로그래머인 제이슨 비버(37). 라스베가스에서 집 열채를 사고 팔아 돈을 크게 번 친구의 이야기에 솔깃해서 새 집 분양 추첨에 참가했던 그는 2004년 2월 3만5,300달러를 디파짓하고 35만3,000달러에 집을 분양받을 수 있었다. 원래 이 집은 55세 이상이어야 입주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었지만 사서 금방 되팔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냥 샀다.
바로 그 해 여름 주택시장에 둔화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본전치기라도 할 생각으로 에스크로가 끝나자마자 매물로 내놓았는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오퍼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 때 이후 아직까지 바이어는 전혀 입질도 없다.
막차 탔다가 딱 붙잡힌 케이스였다. 그 때 같이 집을 샀던 사람들이 현금을 찾으려고 줄줄이 샀던 집을 쏟아냈고, 설상가상 주택건설업체들도 쌓인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가격을 후려쳤으니 타격이 컸다.
건설사는 하루에 8만달러나 할인판매를 하기도 했는데 비버를 비롯한 개별 오너들이 소송을 냈으나 “과열된 시장 상황에 맞춰서 가격을 내렸을 뿐‘이라는 답을 들었을 뿐이었다.
비버는 지금 그 집을 1,000달러에 세주고 있는데 자신이 지불해야 할 비용은 월 2,000달러가 넘는다. 지금까지 이미 5만달러 손해 봤는데 팔려면 3만달러는 더 손해 봐야 할 것이다.
관계 당국은 모기지 융자 해이 때문에 이런 비극적인 사태가 빚어졌다고 본다. 스캇 바이스 네바다주 모기지 융자 커미셔너는 “현금 1,000달러로 100만달러짜리 집을 사는 케이스도 봤다”며 융자기준을 한층 강화할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잠깐 투기열풍에 몸을 담았다 크게 다친 어수룩한 피해자들에게는 당국의 이런 규제강화는 뒷북일 뿐이다.
<케빈 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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