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하와이 법조계 수장직을 맡고 있는 문대양 주대법원장 앞에서 역시 한인 3세인 글렌 김 판사가 선서를 하며 오아후 순회법원 판사로 임기를 시작했다.
이민 104년을 맞는 하와이 한인사회, 하와이 주류사회 곳곳에서 한국인의 우수성을 과시하며 커뮤니티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주내 법조계 한인 판사들은 한결같이 훌륭한 부모의 그늘에서 성장을 했고 이들 부모들 역시 하와이 한인 이민 104년 역사에 나름대로의 족적을 남기고 있었다.
본보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주내 법조계 한인 판사들을 찾아 판사직에 오르기까지 그들의 가정교육과 삶의 교훈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편집자주>
“인종차별로 백인여성 데이트 거절당한
경험 판사로서의 공평한 잣대 세워”
하와이주 대법원장 문대양(67 미국명 로널드)판사는 하와이는 물론 미주 한인들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하와이 한인 이민90주년 준비가 한창이던 1993년 미주 한인 최초로 주대법원장에 취임해 미주 한인들의 긍지를 한껏 높여준 문 대법원장은 앞으로 얼마남지 않은 은퇴이후 생활을 고민하고 있었다.
3남1녀중 장남인 문 판사는 지금도 팔순이 넘은 어머니(88 메리 문 한여사)에게는 더없이 부드럽고 다정한 아들로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며 안부를 전하고 있다고 한다.
1958년 미드퍼시픽 스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 아이오와 법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이수, 졸업 후 1년간 마틴 펜스 연방 순회법원장의 서기로 주내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1982년 주 순회법원 판사로 임명되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1993년 하와이주 대법원장으로 임명되기까지 문 대법원장은 지금과는 다른 엄청난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오늘의 자리에 올랐다.
문 대법원장이 아이오와 법대 재학 당시 그곳의 인구는 99%가 백인이었으며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그가 하루는 영화를 보고 나서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쓰려하자 점원은 그를 쫓아낸 적도 있고 택시운전기사로부터 승차거부를 당한 적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백인 여학생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가 여학생클럽의 규칙상 유색인종과는 연애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 당한 적도 있었다.
그가 학위를 받고 하와이로 돌아왔을 때 당시의 대형 법률사무소에서는 백인들 외에는 직원을 고용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마틴 펜스 연방 순회법원장의 서기로 일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인종차별을 비롯한 각종 비합리적인 사회적인 문제들에 도전하기 위해 법관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결심이 있기까지는 그의 선친의 영향이 매우 컸다고 문 대법원장은 회고한다.
1970년 55세로 작고한 문 판사의 선친(문덕만)은 항상 사람들을 평등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했다고 한다.
또한 문 판사의 숙부인 데니엘 문 변호사와 아이오와 법대에 같이 다녔던 사촌 제임스 최의 도움도 컸다고 전했다.
문판사의 선친은 군부대 지역인 와히아와 스코필드에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양복점을 운영했었는데 당시 군인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어해 듀크(Duke)라는 애칭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문 판사는 “선친은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인물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잘 나타내 주는 모범적인 인물이었다”고 회고하며 와히아와 한인 기독교회의 신자로써 영어를 못하는 한인들을 위해 병원에 같이 가주고 통역을 해주는 등 많은 봉사를 했으며 후에 와히아와 시민회, 태극회, 라이언스 클럽, 로터리 클럽 등의 회장을 맡으며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했었다고 전한다.
문판사는 항상 가족들을 사랑하고 자식들에게 올바를 가치관을 심어주려 노력했던 그의 선친 곁에는 유능한 모친 메리 문(88)여사가 있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어머니는 상업학교를 졸업하는 등 아버지보다 많은 교육을 받았으며 집안을 운영하는데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었다고 한다. 모친은 언제나 활동적이어서 최근에는 K-드라마 팬이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전한다.
어릴 적 문판사는 그의 아버지가 1달러를 벌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파인애플 농장에서 문판사 형제를 일하게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첫날 8시간 동안 허리도 펴지 못하고 중노동을 한 후 그는 아버지에게 그 뜻을 잘 알았으니 이제 그만하게 해달라고 말했으나 안 된다고 하셔서 3번의 여름 동안 벌레들과 뜨거운 햇볕을 싸우며 농장에서 일했었다고 그는 회고한다.문 판사는 자신이 어렸을 적 ‘착한 아이’였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자신이 잘못했을 때에는 선친이 인내를 가지며 대화로써 자신의 잘못을 일깨워 주었지만 그에 따른 책임으로 사랑의 ‘매’는 들었다며 자녀교육에 있어 사랑의 매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하와이는 주법에도 인정하는 것이라고 법리적 해석도 덧붙였다. 문 대법원장은 “어릴 적부터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이 나중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증 등에 걸릴 확률이 많다”면서 “아이를 위해서라도 엄할 때는 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판사는 판사직 정년 70세에 불만이 많은 듯 하다. 하와이주는 공무원들이 자신이 일하고 싶을 때까지 일할 수 있으나 유일하게 판사직 만이 70세의 정년이 정해져 있다며 앞으로 3년 후인 2010년 9월 자신은 은퇴하지만 이 후 법정 중재자 등의 관련업에 종사하며 지역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은퇴이후 계획을 밝혔다. 문 대법원장은 골프 보다는 뜰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며 다른 도시를 방문할 때에는 꼭 공동묘지를 돌아보며 지나간 역사를 되새기는 습관이 있다고 조금은 특이한 자신의 취미를 전했다. 또한 권총사격을 좋아했었다고 전하는 문 판사는 앞으로 법관을 지향하는 젊은이들에게 판사는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대해야 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모든 사건들의 전말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요즈음 텔레비전에 나오는 ‘Judge Judy’ 시리즈와 같은 프로그램은 판사는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좋은 표본을 보여주며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프로그램이라며 프로그램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전하기도 했다. 6명의 자녀를 둔 문 판사는 바쁜 일정 중에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며 요즈음에는 특히 손자, 손녀들의 야구와 농구부 활동을 지켜보는 것이 큰 낙이라며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쳤다.
<김민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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