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32년 전인 1975년 4월30일. 이날은 전 세계의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던 ‘월남 패망의 날’이다. 이 악몽의 날을 우리의 기억에서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우선 개인적으로 월남전 파병 초기에 한국군 보병 소총 중대장의 한 사람으로서 187명의 중대원을 이끌고 참전하여 월남 중부 곡창지대와 캄보디아 국경선 일대에서 월맹 정규군 제5사단 병력과 치열하게 싸웠다. 이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중사 김종열을 비롯한 10명의 전우들에게 이제 칠순이 넘은 중대장은 눈물을 삼키며 명복을 빈다.
한국군의 참전 8년 동안 5,077명의 전사자와 미군의 참전 10년 동안 5만8,000여명의 전사자를 포함, 무려 100만명의 고귀한 생명이 자유수호를 위해 희생됐다. 또 1,500억달러(한화 120조원)라는 천문학적인 미국의 원조가 물거품으로 사라져간 월남 땅이다.
월남 패망은 그들만의 일이 아니다. 자유를 사랑하는 전 세계의 모든 인류에게 경악과 분노, 그리고 살아있는 교훈을 함께 안겨준 현대사의 증거이다. 한 나라가 공산화되면 그 이웃 나라로 확산되어 진다는 ‘도미노’이론을 증명이나 하듯 월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인도지나 3개 국이 일순간에 공산군에게 패망함으로써 우리를 경악케 하였는가 하면 북한 공산 정권에게는 더 할 수 없는 무력 적화통일의 야욕을 고무시켰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우방 여러 나라의 지원을 받아 병력과 장비면에서 월등한 우세에도 불구하고 자유월남이 하루아침에 붕괴된 원인은 여러 가지 있겠으나 다음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국론 분열과 내부 혼란을 지적할 수 있다. 1973년 1월 파리협정 체결에 의해 휴전이 성립되자 정치 판도는 스스로 월남 국민의 양심과 정의를 대변한다는 이른바 ‘제3세력’의 등장으로 큰 혼란에 빠져들게 되었다.
전 국가 원수 두옹 만 민 장군과 부통령 구엔 카오 키 그리고 불교파의 부반 비우 상원의원 등이 이끄는 제3세력은 티우 반공정권의 퇴진, 베트콩과의 협상, 정치범의 무조건 석방, 미 군원의 중단 등을 요구하면서 재야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 학생 등을 선동하여 대정부 투쟁으로 정권 탈취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이 요구한 조건들은 종래 베트콩이 주장해 오던 것을 그대로 대변한 것으로 소위 자유, 민주, 인권을 빙자하여 자신들의 정권 탈취의 도구로 이용함으로써 국론분열과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두 번째로는 자위의지의 결여를 지적할 수 있다.
당시 공산군은 베트콩과 월맹군 모두 합해 40만명이었는데 비해 월남군은 115만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지상 화력도 7대1로 절대 우세했으며 특히 월남 공군은 1,800대나 되는 전투기를 가진 세계 4위의 막강한 전력을 갖고 있었으며 탄약 보급도 월등히 우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남군은 싸움다운 싸움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연일 후퇴만 거듭했다. 심지어 다낭 공군기지에서는 후퇴하기에 바빠 수백 대의 전투기를 고스란히 공산군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이처럼 월남군이 싸우지도 않고 공산군에게 넘겨준 무기는 무려 50억달러나 되었다.
한마디로 월남 군대는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 정세가 자유 월남과 비슷한 역사의 길로 접어들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들은 친북세력에 의해 보수수구 반동으로 매도되고 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국방력을 약화시키는 군 복무기간 단축, 병력감축, 작전 통제권 환수 및 미군철수 등의 선거공약을 내세워 국민여론에 영합하는 선전 선동은 망국을 자초하는 길임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오직 정권 획득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실정이다.
금세기의 탁월한 사회사상가이자 독일 태생 유대인으로 1933년 히틀러에 쫓겨 미국으로 이주한 예일 대학의 에리히 프롬(Erich Fromm) 교수는 그의 저서 ‘소유냐 삶이냐’(To Have or to Be)에서 “인간들은 탐욕의 소유양식에서 탈피하여 창조하는 기쁨을 나누는 존재양식으로 일대 전환하지 않으면 모두가 사멸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4,000만 한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국방력 약화 대선 공약을 즉각 중지하여야 한다. 형이상학을 연구하는 철학자나 신학자들은 “현대의 역사적 위기에 대한 계시를 역사성 위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 월남 패망의 역사를 되새겨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박종식 예비역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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