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비가 온 다음날, 고층 빌딩에서 로스앤젤레스의 아름다운 날씨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4.29가 다가온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시커먼 연기로 덮이고, 소방차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던, 그 날의 기억하기도 싫은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빠른 속도로 눈앞을 지나가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마치 오랫동안 시달려온 지병이 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죄라면 미국에 와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것 밖에 없는데…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고 하지만 말이 안통하고 문화가 달라 서로 잘 이해하지 못한 것밖에 없는데… 또 실수라면 오렌지 주스를 훔쳐가는 아이를 잡으려다가, 한인 여주인보다도 더 큰 아이의 주먹에 몇 대 얻어맞고 엉겁결에 총을 든 것이 발포가 되었는데, 주머니에 권총이 있는 것처럼 돈 내놓으라던 강도를 향해 총을 쏜 것 밖에 없는데… 정당하게 방어를 했는데 우리가 왜…
흑인을 마구 짓밟고 때린 것은 백인경관들이었는데… 가슴이 더 답답해 오는 느낌입니다.
한인 이민 역사에 가장 큰 전환점이었던 ‘사이구 폭동’은, 우리가 미처 예비하고, 준비할 사이도 없이 일어났고, 우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우리는 많은 피해를 당하였으며, 한 많은 한민족의 가슴에 또 한 번 못질하면서 3일에 걸친 폭동은 600여채의 건물을 태우고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선거자금을 지원해 주고, 우리의 친구라고 자칭하던 정치인들은 다 어디 갔었는지? 자유와 민권의 전도사인 척 행세하던 미국 언론들은 왜 우리가 쓴 글을 실어주지도 않고, 거의 일방적으로 우리가 마치 돈만 아는 고약한 수전노인 것처럼 마구 써 내려갔을까?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는데도, 왜 아무도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사람이 없었을까? 왜, 왜, 왜!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고, 더 더욱 뚜렷하게 보여 지는 폭동의 상처는 우리를 괴롭게만 합니다. 15년 동안 쌓여온 스트레스가, 가슴속 깊이 숨어있던 한이, 모두 한꺼번에 밀려들어오는 느낌입니다.
왜 우리는 피해자이면서도, “We want peace!”라고 외치며 평화의 행진을 해야만 했을까? 힘을 합해도 모르는 데, 우리는 왜 서로 먼저 마이크를 잡으려고, 먼저 소개 받으려고 티격태격했을까? 유리창 두어 장 깨지고도 폭동 피해자라며 남들처럼 보상금을 받아간 사람은 누구인가? 세금보고에는 한 해에 3만달러도 벌지 못했는데, 자기는 한달에 2만달러 벌었다고 자원봉사자에게 큰소리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100만달러가 넘는 폭동기금을 거의 탕진하고도 왜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한마디 없을까? 1,000만달러에 달했던 폭동성금이 정말 제대로 관리가 되었을까?
왜 우리는 굳이 폭동이 한흑 문제 때문에 일어났다고 우리 스스로를 탓하고 있을까? 우리는 폭동을 겪으며 무엇을 배웠는가? 폭동의 잔해를 모두 쓸어버렸는데,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건가? 불탄 간판이나 수표책 하나 보관하지 못했는데, 4.29기념관은 무엇으로 채우려 하는가?
4.29는 우리 한인사회가 이러면 안 된다고 깨달은 날이 아닌가? 2세 영어권 한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한인사회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나선 날이 아닌가? 미국 역사에 존재하지도 않던 한인들이 미국 역사에 데뷔하고, 손님처럼 둥둥 떠다니던 한인 이민사회가 드디어 미국 땅의 주인으로 뿌리를 내린 날이 아닌가?
이 날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어떤 달인가? 4.29가 내게 중요한 이유가 뭔가? 정답은 없지만, 4.29의 기승전결을 파악해 보려고 노력한 적이 있는가?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 우리는, 나는 과연 무엇을 하였는가? 너무도 힘들어 폭동이 일어난 사실을 잊으려 한다고 해서 과연 잊혀 질까?
저는 4.29를 맞으며 정말 후회스런 것이 하나 있습니다. 4.29의 잔해들을, 부서지고, 불타고, 깨어진 역사의 편린들을 보존하지 못했고, 우리 후손들에게 역사적인 자료로 남겨줄 것을 하나도 보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0년 후, 아니 4~5년 후도 내다보지 못한, 너무나도 한심한 제 자신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여러분의 4.29는 어떤 4.29입니까? 용서는 하되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는 되풀이되게 마련이며,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는 자들은 또 다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찰스 김 한미연합회(KAC) 전국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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