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 우리의 마음의 풍경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세상에 대한 지옥불 같은 증오를 무자비한 살상으로 쏟아내고 죽은 한인 청년의 총격사건으로 우리는 모두 참담하고 암울한 나날을 보냈다.
무엇이 사람을 그런 난폭한 괴물로 만들었는지 답답한 의문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대학 캠퍼스에서 32명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그 총격범이 한인 1.5세로 밝혀졌을 때 우리의 첫 반응은 충격과 경악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반응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의 심정. “내 아이들은 제대로 자라고 있는 걸까”라는 가슴 철렁한 경각심이었다.
총격범이 방송사에 보낸 사진, 비디오와 글, 그리고 같이 수업한 학생·교수들의 코멘트로 그에 대한 윤곽이 드러난 지금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불쌍하다’이다. 양손에 총을 들고, 혹은 칼이나 도끼를 들고 한껏 위협적 포즈를 취한 그의 사진에서 우리는 한 불행한 인간의 절망을 발견할 뿐이다. 소외감과 열등감, 그로인한 적개심과 분노를 누르고 누르다 보니 어느 순간 광기로 변해 현실과 망상을 구분 못하는 미치광이가 되고 만 것이다.
사람이 잘못 자라면 그 내면에 얼마나 기괴한 암흑의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지, 그 황폐한 영혼이 사회에 어떤 참혹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지를 우리는 이번에 똑똑히 보았다.
자녀를 여럿 키워보면 아이마다 다 다르다. 똑 같이 낯선 환경에 던져져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적응하는 아이가 있는 가하면 힘이 들어 절절 매는 아이가 있다. 온가족이 갓 이민 와서도 떠듬거리는 영어로 붙임성 있게 친구를 만들고 교사들의 귀염을 받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같은 형제인데도 남이 말을 붙일까봐 겁을 내며 겉도는 아이가 있다.
이번에 사고를 낸 조씨 가족도 그랬던 것 같다. 딸인 그의 누나는 활달하고 명석해서 남들의 주목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한 반면 아들인 그는 말 한마디 못하고 친구 하나 없이 왕따 당하며 자랐다. 같은 집에서 같은 밥 먹이며 키워도 남매가 이렇게 다르니 부모에게 무슨 책임이 있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잘못 자란 책임은 근본적으로는 부모에게 있다고 본다. “엄마아빠가 나를 좀 도와주었으면” 하는 아이의 절박한 신호를 아차 하는 어느 순간 놓쳐버린 책임이다.
총격범 조씨는 도무지 말이 없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거기에는 원인이 있었다. 8살에 이민온 후 영어발음이 이상하다고 자꾸 놀림을 받자 소심한 성격에 말할 용기를 잃고 아예 입을 닫아 버린 것이었다. 항상 선글래스를 쓰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특이한 차림 역시 외모에 대한 열등감과 상관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부모는 조용하기만 하던 아들이 그런 고통을 겪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살인극을 계획할 만큼 정신의 병이 깊은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너무도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버지니아 텍 사건이 터진 날 한 2세 젊은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한인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자기감정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없는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부가 힘들어 스트레스가 심해도, 친구문제로 너무 우울해도 … “내가 이렇게 힘이 들어요. 날 좀 위로해 주세요”라고 털어놓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의 높은 성취욕과 상관이 있다고 본다. 높은 목표를 세우고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이뤄내는 우리의 기질이다. 덕분에 한인사회가 빠른 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약하고 소심하며 뭔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포용력이 너무 없다.
화초로 보면 우량종을 튼튼하게 키워내는 데는 강하지만 부실한 화초를 있는 그대로 애정을 가지고 돌보는 데는 약하다. 많은 한인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는 자녀들의 성공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고생을 감내할 만한 자랑스런 자녀를 갖고 싶은 욕심이다.
덕분에 한인사회에는 성공한 2세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대신 그 과정에서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는 불행한 낙오자들도 많이 생겨난다.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자랑스런 자녀보다는 행복한 자녀를 키우는 것이 먼저이다. 부모에게 편안하게 마음을 열수 있는 자녀들은 문제아가 되지 않는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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