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영
대구대 법학부 교수
로마인들은 뛰어난 민족은 아니였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다.
그래도 로마는 이들을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뛰어난 민족이었다. 화약, 종이, 비단 그리고 거대한 국토와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의 중국은 일본, 프랑스, 미국, 영국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비록 동서고금을 달리하고 있지만 국가의 흥망을 보여주는 이 두사례는 대외개방이라는 키워드에 의하여 해석될 수 있다.
로마의 융성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개방성 덕분이었지만 중국의 쇠락은 부국과 강병을 위해서 개방이 시무(時務)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개방을 실천하지 못한 탓이다. 여기서 시무란 시대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하여 ‘때를 당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말한다.
따라서 한 국가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일을 잘하는 것, 무엇인가를 잘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바른일, 반드시 해야 할 일인 시무를 잘 파악하는 것이다.
최근 한미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협상을 타결한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상승하고 있다.
한미 FTA 협상타결에 대한 찬성여론의 상승률보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의 상승률이 더 큰 것은 한미 FTA 협상 타결과정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사회는 87년 헌법을 통해 형식적 민주화를 달성하였지만 이후 사회적 전환기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시무를 미루어왔다. 현재의 전화기적 시점에서 정치적으로는 개헌을 고민하고 경제적으로는 한미 FTA를 추진해왔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일본식 후발 추적형 모델(catch-up model)을 벗어나 우리가 먼저 점프를 해서 일본과 중국을 넘는 새로운 모델과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한미 FTA는 경제규모로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이어 세계3위가 된다.
우리는 외교와 안보를 중심으로 전개된 동북아 국가 간의 관계를 한국 중심의 동북아 경제와 통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극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물론 한미 FTA는 우리의 이익만을 위한 협정도 아니고 미국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해주기 위한 협정도 아니다.
협상은 양측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과정이기에 궁극적인 목표는 상대방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양보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양측의 충분한 협의에 근거한 의견접근이다. 이번 협상을 통해 우리는 자동차와 LCD 모니터 등 공산품 분야에서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호전되는 이득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고, 미국은 쇠고기를 포함한 농산물 분야에서 한국 시장접근의 가능성을 높였다.
사실 한미 FTA 협상타결은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통상확대 차원을 넘어 북한, 중국 그리고 일본의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당장 북한의 경우 개성공단 제품에 대한 한국산 인정이 한미 FTA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남북한 경제협력을 포함, 남북관계는 일대 전기를 마련하게 되며,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한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서 한 건의 FTA도 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 FTA의 형성은 동북아 경제허브의 고지를 선점하는 효과가 있다. 이미 중국과 일본이 우리나라와 FTA를 논의하자는 입장을 경쟁적으로 비치고 있다.
물론 한미 FTA가 비준되면 이익을 보는 사람도 많지만 손해를 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착실한 준비와 대비책이 마련된다면 일부 국민에 대한 손해보전을 넘어서서 도리어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쟁력을 확보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전화위복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와이 한인이민 104주년 특별 연재, 빅 아일랜드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야무진 한국여인 야물이’<28> 종합출판미디어 제공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그러다가 오빠의 신나는 웃음소리가 정글 속으로 울려 퍼지는 걸 듣고 우리도 따라 웃으며 같이 모였다.
오빠는 순이 언니가 우리를 모두 따 제키고 혼자 도망가더라고 놀려주었다.
방공호는 어둡고, 눅눅하고, 또 흙냄새도 났다. 몇 달 사이에 우리 섬의 사정이 달라졌다. 뭍에는 녹색 군대 지프차와 캔버스를 씌운 트럭 수백 대가 오가고, 하늘에는 B29 폭격기들이 날아다니고, 바다에는 군함들이 떠다니므로 교통량이 증가했다.
우리 파나에바 숲에서 1마일이 미처 안 되는 곳에는 임시군사캠프가 들어섰다. 그곳은 군인들 외에는 접근금지구역이 되어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보초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가끔 방과 후 학교에 남아 있다가 집에 오는 9살짜리 나를 보면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내가 길목을 지나가면 전문군인들답게 목례도 하고 미소를 해주었다.
전쟁 때문에 물자가 귀해지면서 고무, 아일론, 철물, 휘발유 같은 것은 배급제나 감량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궁핍을 느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불편한 겪었지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바지와 내의용 고무줄은 실용성이 덜한 잡아매는 광목 줄로 대치되었다.
1943년 5월 1일 우리 반은 메이폴 댄스를 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날 내 속옷 끈이 바로 광목 줄이었는데, 나는 그것이 느슨한 채로 댄스에 가담했다. 다행히도 한 손은 허리에 대고 추는 것이었다. 순이 언니는 어머니랑 청중석에서 내 연기를 보고 박수를 보냈다.
언니는 항시 내 연기를 너그럽게 평가해주었다. 2년 뒤에 같은 연기를 맡은 내 친구 하나는 나처럼 운이 좋지 못했다. 다른 급우들은 농구를 하려고 체육실로 가는데 그 애와 나는 많이 뒤로 쳐져 있었다.
그 애의 팬티가 그만 줄이 끊어져서 발목까지 흘러내렸다. 그 애는 쑥스러워서 나를 쳐다보는데 나는 못 본 척했다. 비단은 군인들의 낙하산을 만드는 데 필요했다.
내가 비단에 대해서 가진 지식이란, 비단은 뽕나무 잎을 먹고 자란 누에로 만든다는 것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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