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들은 뛰어난 민족은 아니었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게르만족보다 떨어졌다.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다. 그래도 로마는 이들을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다.
반면 중국인들은 뛰어난 민족이었다. 화약, 종이, 비단 그리고 거대한 국토와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의 중국은 일본, 프랑스, 미국, 영국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비록 동서고금을 달리하고 있지만 국가의 흥망을 보여주는 이 두사례는 ‘대외개방’이라는 키워드에 의하여 해석될 수 있다. 로마의 융성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개방성 덕분이었지만 중국의 쇠락은 부국과 강병을 위해서 개방이 ‘시무’(時務)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개방을 실천하지 못한 탓이다. 여기서 시무란 시대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하여 ‘때를 당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말한다. 따라서 한 국가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일을 잘하는 것. 무엇인가를 잘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바른 일, 반드시 해야 할 일인 시무를 잘 파악하는 것이다.
최근 한미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협상을 타결한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상승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36%로 급등하면서 한미 FTA 체결 이전과 비교하여 14%포인트 이상 상승하였다. 다른 한편 한미 FTA 타결에 대한 국민의 지지여론은 협상타결 소식이 전해진 4월 2일의 52.6% 보다 10%포인트 정도 상승한 63%로 나타났다. 한미 FTA 협상타결에 대한 찬성여론의 상승률보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의 상승률이 더 큰 것은 한미 FTA 협상타결과정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 사회는 87년 헌법을 통해 형식적 민주화를 달성하였지만 이후 사회적 전환기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시무를 미루어왔다. 현재의 전환기적 시점에서 정치적으로는 개헌을 고민하고 경제적으로는 한미 FTA를 추진해왔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국가적으로 정비해야 할 것들을 정비하고, 새로운 방향을 세워 ‘샌드위치 코리아’라는 질곡에서 탈출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일본식 후발 추적형 모델(catch-up model)을 벗어나 우리가 먼저 점프를 해서 일본과 중국을 넘는 새로운 모델과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한미 FTA로 경제규모가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이어 세계3위가 된다.
한미 FTA는 우리의 이익만을 위한 협정도 아니고 미국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해주기 위한 협정도 아니다. 협상은 양측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과정이기에 궁극적인 목표는 상대방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양보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양측의 충분한 협의에 근거한 의견접근이다. 이번 협상을 통해 우리는 자동차와 LCD 모니터 등 공산품 분야에서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호전되는 이득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고, 미국은 쇠고기를 포함한 농산물분야에서 한국시장접근의 가능성을 높였다. 한미 FTA협상 결과에 대한 미국 의회의 반발이나 한국 내의 반대여론은 한미양국의 경제적 이해득실이 상호 균형적 차원에서 접점을 찾았음을 반증하고 있다.
사실 한미 FTA 협상타결은 우리나라와 미국간의 통상확대 차원을 넘어 북한, 중국, 그리고 일본의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당장 북한의 경우 개성공단 제품에 대한 한국산 인정이 한미 FTA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남북한 경제협력을 포함, 남북관계는 일대전기를 마련하게 되며,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한미 FTA가 비준되면 이익을 보는 사람도 많지만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착실한 준비와 대비책이 마련된다면 일부 국민에 대한 손해보전을 넘어서 도리어 경쟁력을 강화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전화위복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어차피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기록이 아닌가. “장미라면 언젠가는 꽃을 피운다”는 이탈리아 속담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철영 대구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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