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는 정부’ 국민이 감시해야
지난 6일 개봉된 드라마 ‘속임수’(The Hoax-6일자 본보 위크엔드판 참조)에 주연한 리처드 기어와의 인터뷰가 지난 달 17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었다. ‘속임수’는 1970년대 초 기인 하워드 휴즈의 가짜 전기를 쓴 미국인 작가 클리포드 어빙의 실화로 기어는 어빙역을 맡았다. 잿빛이 섞인 윤기 나는 하얀 머리를 하고 안경을 낀 기어는 달라이 라마의 열렬한 추종자로 이 날 용화 외에도 사회정의와 박애, 질병과의 투쟁과 세계 평화 등에 관해 진지하게 말해 때로 도사의 설교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인터뷰 후 기어와 함께 사진을 찍을 때 기자가 “나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자 그는 “어떻게 하다 아직 한국에 못 갔지만 그 곳에 나의 훌륭한 스님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리처드 기어는 “우리는 정부세력이 시민의 발전을 찬탈치 못하도록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라이 라마 신봉… “한국 스님친구 많다”
클리포드 어빙의 사기극은
과시욕에 당시 사회풍조 탓
-어빙은 영화가 사실과 다르다며 자기는 이 영화와 아무 관계도 없다고 말했는데.
▲진짜로 그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제작자와 수년간 계속 대화를 나눴고 또 각본내용은 딱 한 부분만 빼고 전부 클리포드가 직접 얘기한 것이 아니면 그의 허락 하에 그의 책에 바탕을 두고 만들었다.
-이 영화는 인간의 명성에 대한 집념에 관한 것이라는 데서 30년 전과 같이 요즘의 세태도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데.
▲클리포드는 당시 아직 성숙한 인간이 못된 자로서 자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나은 작가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 같다. 문학인들의 동아리 속에 들어가지 못한 것에 대한 반응이라고 본다. 또 한 가지는 1960년대가 끝난 당시는 사회를 뒤집어놓자는 풍조가 있었다. 일종의 장난기가 섞인 사회개혁 운동이었는데 그도 이 바람을 탔을 것이다.
-그는 사실 세기의 사기극을 성공적으로 연출해 보려고 한 밉지 않은 사람이었던 같은데.
▲우리는 그를 감정적으로 복잡하면서도 당시 혼란스러웠던 세상과 연계시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했다. 이와 함께 우리는 당시 하워드 휴즈 등 미국 내 세력자들이 국민들 모르게 서로 부패하고 허위적인 관계의 고리를 맺고 있던 상황에 어빙의 얘기를 얹으려고 했다. 지금의 미국 정부가 심히 부패하고 온갖 거짓말을 한다는 점에서 영화 속 시대의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된다.
-당신은 누군가에 의해 사기 당한 적이 있는가.
▲돈 때문에 누군가가 당신에게 사기를 친다면 그것은 돈 문제로 끝난다. 그러나 누군가 당신과 가까운 사람이 당신을 속이고 실망시킨다면 그 것이야말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이 아픔을 극복할 길을 찾게 된다면 다음에 속았을 때 보다 관용적인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당신은 어빙역을 하면서 30년 전의 혼탁한 정치적 분위기를 요즘의 그것에 비교하려 했는가.
▲권력구조들이 서로 결탁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면서 우리를 속인 당시와 현재는 같은 점이 많다. 거짓말로 시작한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쟁이 그렇다. 대통령과 정부는 닉슨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시민으로서 우리는 이를 용납해선 안 된다. 우리가 이 친구를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우리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자신도 진실을 말하려고 신경을 써야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들이 진실을 말하도록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당신은 역을 준비하면서 미국은 체 하는 사람들의 나라라는 생각을 해봤는가. 미국 사람들은 이름도 바꾸고 또 자기 아닌 남의 노릇을 쉽게 하는데.
▲난 그것을 고안이라고 부르고 싶다. 미국에 사는 우리는 모두 자신을 새롭게 고안해 낸다. 그 건 좋은 일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디서 왔건 과거에 갇힐 필요는 없다.
-왜 영화를 찍기 전 어빙을 직접 만나지 않으려고 결정했는가.
▲그에 관한 서적과 TV 인터뷰 필름과 영화 등 관계 자료가 충분히 있었다. 또 사람 심리를 잘 조작할 줄 아는 그를 만나 크게 영향 받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하고픈 일은.
▲정부가 하는 일에 개입해 끊임없이 견제해야 한다. 권력구조가 우리의 진보를 접수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배우란 속이는 것이 직업인데 맨 처음 당신이 배우가 되려고 했을 때 제작자나 감독에게 어떻게 당신을 팔았는가.
▲나는 세상에서 가장 엉터리 오디셔너였다. 나는 오디션에 나가면 너무나 신경이 쓰여 엉망이 되곤 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는 것을 싫어했는데 오디션에 나가면 내 창조성이 죽어버리고 만다. 그런 점에서 내가 아직도 일하고 있는 것은 진짜 기적이다.
-당신에게 1년 반을 쉬면서 책을 쓰라고 한다면 무엇에 관해 쓸 것인가.
▲그 시간에 앉아 글쓰기에는 다른 할 일이 너무 많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는 내가 귀중히 여기는 배우로서의 삶이요, 둘째는 내가 사회활동을 하는 재단이며, 셋째는 내 가족이다.
우리집 가장은 아내가 맡아
명상하고 나면 사람 달라져
-가족생활은 어떤가. 7세난 아들에게는 무엇을 가르치며 부인과 다투기도 하는가.
▲우리는 절대로 부부싸움을 안 한다(그의 부인은 배우인 캐리 로웰). 우리 집의 가장은 내 아내다. 어쩌다 아내가 내게 불평을 하면 난 그가 지쳐 포기할 때까지 아무 반응도 안 보인다. 지친 아내가 물러서면 그 때 내가 내 목적을 달성한다. 내 아들은 내게 완전한 기쁨이다. 나는 요즘 양키스 팬인 아들에게 야구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깊게 맺어지고 있다.
-당신은 명상을 통해 크게 깨달음을 얻는가. 그리고 명상을 하면 정말로 뇌에 변화가 오는가.
▲난 아직 깨달음을 얻진 못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서양과학은 동양과학에 비하면 유치하다. 동양적 관점에서는 명상을 할 때 뇌에 변화가 온다는 사실을 기계 없이도 경험으로 아는데 서양측은 그 사실을 꼭 기계를 통해 봐야 믿는다. 나는 명상을 하고 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당신은 해외에서의 사회활동이 국내서보다 더 활발한 것 같은데.
▲내가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에이즈 예방 운동은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나는 현재 이 운동을 인도에서 주력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우리가 겪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다른 국내 활동으로 오류투성이인 교도제도를 시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도에서의 에이즈 예방운동을 위해 지난해에 아내와 함께 뭄바이에 가서 1만5,000명의 창녀들에게 콘돔사용을 권장한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가수와 무용수를 불러다 춤추고 노래하며 “노 콘돔, 노 섹스”를 연창했는데 그 때 섹스산업 종사자들이 비로소 하나의 집합체가 되는 것을 느꼈다.
-과거 섹스 심벌이었던 당신이 “노 콘돔, 노 섹스”를 외치다니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
▲줄리아 로버츠와 ‘프리티 우먼’을 찍을 때 호텔 장면에서 우리는 콘돔을 소도구로 사용했다. 창녀와 콘돔 없이 섹스를 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게리 마샬 감독이 즐거운 아이디어를 냈다. 로버츠가 청과 홍과 분홍빛의 콘돔을 내게 보여주면서 고르게 했는데 당시만 해도 이는 큰 일이었다.
<클리포드 어빙역의 리처드 기어가 영화에서 기자들의 질문세례를 받고 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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