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두어달 전 잘 아는 김 모 교수가 양손에 술병을 들고 한국 전통주 수입상과 함께 찾아 왔다. “아니 여자 교수님이 웬 대낮부터 술병인가” 의아한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김 교수는 다소 들떠 있는 목소리로 “일본의 고급 사케와 미국의 와인시장에 도전하는 술입니다. 두고 보세요”라며 술병을 건넸다. 주머니 속에서 플라스틱 소주잔을 꺼내 술을 따라 맛을 보았다. 약초(능이버섯)를 달여 투명한 황금빛이다. 향이 독특했다. 버섯향이 나지만 강하지 않았다. 약초 냄새가 먼저 후각을 자극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단맛과 신맛의 조화, 그리고 목넘김도 좋았다. 전통 사케에 도전하는 술인데 너무 달지 않나 싶었다. 대답이 돌아왔다. 단맛을 줄여 ‘드라이’한 맛의 송이주가 조만간 뒤를 이어 미국행 비행기를 탄단다. 김 교수가 가져온 술은 임금님이 육식중 소화제를 겸해 음복했다는 ‘능이주’ 즉 능이버섯 술이다. 소화를 도우니 당연히 고기와 궁합이 맞을 수밖에 없겠다. 생고기와 진한 양념 고기를 즐기는 식탁과 잘 어울린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한국의 전통주 제조업체 ‘내국 양조’(내국은 조선시대 궁중 약국으로 술관리 하는 곳)가 순쌀과 능이버섯만을 원료로 제조, 수입상 ‘준마’(Junma USA)를 통해 올해 초 미국으로 들여왔다. 도수는 와인과 비슷한 13도지만 4도의 편차를 가지고 있으니 9~17도의 알콜 농도를 지닌다. 가격은 일반 마켓에서 시판 기념으로 3달러99센트. 흥미로운 점은 미국의 와인처럼 알루미늄 캡에 코르크 마개를 사용했다.
<‘주마 USA’의 이승옥씨가 미국 와인시장을 겨냥해 수입한 ‘내국 양조’의 ‘능이주’를 설명하고 있다. <진천규 기자>>
능이주·소곡주·이강주 등
조상의 손 맛 담긴 우리 술
건강에 좋고 체질에도‘딱’
□ 한국의 술
한국의 술은 역사가 깊다.
문헌상으로는 ‘제왕운기’에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탄생이 술때문(?)이라는 내용으로 처음 술이야기가 나온다.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가 꾀를 내어 하백족의 딸 유화를 만취하게 만들어 주몽이 잉태됐다는 것이다.
물론 고구려 이전의 고조선 문헌이 전래되지 않아 이전의 술 이야기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발효 문화가 일찌감치 정착한 고조선이라면 충분히 술을 맛있게 담가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학계의 추측이다. 그러니 한국술을 중국의 뿌리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규방총서’등 옛 문헌에 나오는 한국의 술만도 수백여 가지에 달한다. 그러나 외침, 지역분쟁, 사대주의에 일제 침탈기까지 거치면서 그 많던 술들이 슬그머니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은 요즘 들어 한국 것 찾기 분위기와 1999년부터 시행하는 한국정부의 양조법 해제에 힘입어 옛 술들이 속속 제 모습을 찾고 등장한다는 점이다.
한국 술은 집에서 만들어 마시던 가양주 문화가 근원이다. 일제 때 일인들이 세금 수탈의 수단으로 양조법을 만들어 양조 면허가 없으면 술 제조를 금지시키면서 가계로 이어져 내려오던 명주 생산 기법들이 소리 소문 없이 흔적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약 50종류가 복원돼 시판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의 ‘능이주’ 역시 우리 전통 청주 생산 기법으로 복원해 순도를 높여 만들었다. 제조업체 ‘내국 양조’는 오는 4월19일 다운타운에서 열리는 한 와인시음회에 한국 술로는 유일하게 초대돼 ‘능이주’와 곧 들여올 ‘송이주’를 들고 나간다니 결과가 기대된다.
□ 전통주
과실주를 빼고는 한국의 전통주는 거의 쌀로 빚는 술이다. 물론 일본 사케처럼 사케만 을 위한 쌀을 재배해서 만들지는 않는다. 또 누룩 역시 찹쌀로 만들어 쌀로 만든 일본의 발효균 고지(원래 누룩의 한자어 ‘국’의 일본식 발음)와도 차이가 난다.
쌀에 누룩을 띠워 술을 만들 때 제일 위에 맑게 고인 물을 모으면 ‘청주’(약주), 걸쭉하게 가라앉은 것을 ‘탁주’(막걸리), 이를 끓여 수증기를 모아 식히면 ‘소주’등 3가지가 한국 술의 기본이다. 우리 술은 중국의 것처럼 독특하지는 않지만 은은하고 부드럽다. 와인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과실주가 아니면서도 과일향이 우려 나온다.
대나무 마디를 이용해 빚은 술을 죽통주, 휘영청 휘어진 소나무를 파내고 그 안에서 술을 빚으면 와송주, 유명한 약주로는 백하주, 호산춘, 소곡주, 막걸리로는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할 정도로 진한 이화주, 산성막걸리, 소주는 평양소주, 이강주, 안동소주 등등 이름과 종류도 다양하다. 같은 재료에 따라서는 천차만별의 느낌과 맛을 생성하는 이유는 한국술의 기반이 집안에서 만들어 마시는 ‘가양주 문화’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맥주, 영국은 위스키, 프랑스는 포도주, 일본은 사케, 멕시코는 데킬라, 중국은 마오타이.
그렇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술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 전통주 빚기
▲통밀을 부수어 물과 함께 반죽하여 덩어리지게 한다. 덩어리지게 한 반죽을 약 6개월간 발효시키면 속속들이 곰팡이가 만들어 진다(공정기간이 길므로 마켓이나 방앗간에서 누룩을 구입 하면 된다).
▲이렇게 만든 누룩과 쌀, 보리, 조 등 곡물 원료를 한데 버무려 물과 함께 옹기 독에 넣어 발효시키면 짧게는 3일 길게는 100일 정도 후에 찌꺼기가 가라앉고 술독 표면에 맑고 노른 물이 떠오른다. 이것을 떠내면 알콜 도수 16도 전후의 약주가 된다.
▲남은 찌꺼기에 물을 타서 체에 걸러내면 탁주(막걸리)가 된다.
▲소주 고리에 증류해 내면 소주가 된다(소주를 집에서 주조하기는 힘들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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