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포는 요란했다. 밤하늘에 수많은 불꽃들이 쏘아 올려진 가운데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은 절정의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유럽연합(EU)을 배태한 로마조약 50주년을 맞아서다.
이 날을 위해서였나. 유럽의 싱크탱크란 싱크탱크는 저마다 바쁜 나날을 보내왔다. 21세기는 유럽의 세기다. 6개국에서 출발해 27개국 연합체가 된 EU야 말로 21세기의 세계적 수퍼파워로 부상할 것이다. 이런 담론들을 쏟아내면서다.
이 담론은 ‘파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근거로 한 것이다. 미국은 분명히 제3 국가의 체제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군사적 파워다. 그러나 그 파워는 사회를 내적으로부터 변화시킬 수 없다. 때문에 약한 파워다.
EU는 내적으로부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파워다. 경제, 정치, 사회적으로 전 세계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이 소프트파워야 말로 진정한 파워로, 유럽은 21세기의 수퍼파워로 부상할 것이다. 내로라하는 유럽의 브레인들이 펴는 주장이다.
21세기의 수퍼파워가 되는 게 유럽이 맞은 ‘명백한 운명’일까. 많은 전망은 반대로 기운다. 유럽은 문제의 덩어리로, 쇠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 뚜렷한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해가 2005년이다. EU의 엔진역할을 하고 있는 나라의 하나가 독일이다. 이 해에 독일은 사망자 수가 신생아 수를 앞질렀다. 오래 전부터의 예언이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인구감소다.
독일만이 아니다. 유럽 전체에 보편화된 현상이다. 유럽의 출산율은 1.4명으로 현상유지를 위해 요구되는 2.1명에 크게 못 미친다. 이런 유럽과 관련된 빈정거림이 클린턴의 92년 대선 슬로건을 본뜬 말이다. ‘문제는 인구야, 바보야!’라는.
이 추세로 볼 때 유럽 인구는 2050년께에는 1억 이상 줄어 전 세계 인구의 6%에 불과하게 된다는 거다. 이 6%의 인구가 세계를 지배한다.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유럽이 맞은 또 하나의 딜레마는 노령화다. 일할 노동력이 없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도 유럽인들이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완벽한 사회복지 시스템이다.
그 제도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개혁을 꾀한다. 그러자 대규모 소요가 발생했다. 수년 전 프랑스 전역을 휩쓴 소요는 사회복지 시스템을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신세대의 요구가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다.
‘유럽 신생아의 반은 모슬렘이다. 영국에서 태어나는 남자 어린이 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은 모사드이고’-. 유럽의 모슬렘 인구는 3,000만이 넘는다. 문제는 급증하고 있는 이 모슬렘 인구 대다수가 현대화를 거부하면서 이슬람 율령에 의해 통치되는 세계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권법 제정 이전 미국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다.” 날로 과격화하고 있는 유럽의 모슬렘, 그리고 말뿐인 평등정책, 그 가운데 모순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 말이다. 동시에 나오고 있는 극단의 전망은 유럽은 반(反)미 회교극렬주의의 전초기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50년간 유럽은 평화와 번영이라는 면에서 괄목할 발전을 이룩했다. 그리고 못 가진 자에 대한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 문화, 도덕적으로 유럽의 정체성을 지탱하고 있는 기독교 정신을 배제하고는 진정한 유럽의 통합을 이룰 수 없다.”
유럽연합 50생일을 맞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한 말이다. 무엇을 말하나. 유럽이 맞은 가장 심각한 문제, 가장 근본적 문제는 ‘영적(spiritual)문제’라는 것이다.
유럽연합 50주년을 맞아 채택된 ‘베를린 선언’은 물론 EU 헌법논의 어디에도 유럽의 기독교적 근원과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완전히 빠져 있다. 이를 교황이 지적한 것이다.
‘유럽은 신앙이다. 신앙 그 자체가 유럽이고’-. 독일이, 또 프랑스가 있기 전에 먼저 있었던 게 유럽이다. 로마제국의 잔해 속에, 그리고 야만족의 잇단 침입 가운데 유럽이 세워졌다. 그 모태는 바로 교회다. 이런 유럽의 전통과 관련해 나온 유명한 경구다.
그 유럽이 그런데 기독교 전통과 결별하려고 있다. 이를 스스로를 부인하는 영적 위기로 교황은 본 것이다. 말하자면 기독교 전통을 벗어난 유럽의 시민사회라는 게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사회가 과연 성숙한 사회인지 강한 의구심을 보인 것이다.
“…유럽은 불행하게도 자칫 역사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길을 걷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축포가 요란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계속 이어진 교황의 충고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세속화로의 변화에 대해 보수 가톨릭교회의 수장이 보인 거부의 몸짓인가, 아니면 시대를 내다보는 예언인가. 어쩐지 후자로 들린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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