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을 하니 반가운 이메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목은 ‘축하해주세요’- 대학 진학생 아들을 둔 한 후배가 보낸 편지였다.
“우리 큰 아들 어제 UCLA 공대 화학공학과로부터 정식 합격통지를 받았습니다. 버클리는 안돼서 본인이 좀 실망하는 것 같지만 UCLA 합격한 게 얼마나 장하고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올해 대입경쟁률이 어느 대학이나 다 사상 최고라고들 하니… 아무튼 이제 한 놈은 대학 해결 됐습니다. ……”
지난해 말 입학원서 제출하고부터 묵적지근하게 맴돌던 4개월여의 불안이 어제로 마감이 된 것이었다. 아이의 성적은‘SAT 2280, GPA 4.3’- 웬만한 명문 대학에는 들어갈 것으로 안심해도 될 것 같았지만 아이의 엄마인 후배는 그렇지가 않았던 것 같다. “혹시라도 아무데도 안 되면 어쩌나”하는 막연한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많은 대학진학생들에게 29일은 긴장과 초조의 하루였다. UC 버클리와 UCLA가 UC계열로는 마지막으로 이날 오후 5시 온라인 합격자 발표를 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두 대학에 원서를 제출한 학생들, 그리고 부모들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을 것이 눈에 선하다.
긴장은 당연하다. 어느 대학에 합격하느냐는 아이로 보면 인생의 첫 중간점검이라고 할 수 있다. 짧게는 고교 4년, 길게는 초등학교부터 12년 학교생활의 ‘결산보고’인 셈이다.
합격자 발표가 긴장되는 또 다른 이유는 입학사정에 누가 봐도 자명한 객관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처럼 커트라인이 있다면 떨어져도 붙어도 납득이 되지만 미국 대학의 입학사정은 성적, 과외활동, 성장 환경 등을 ‘총체적’으로 평가한다고 하니 누구도 안심할 수가 없다.
납득 못할 결과들은 올해도 속출했다. 버클리에 붙은 학생이 LA에 떨어진 경우는 더 이상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고 버클리· LA 모두 합격한 학생이 UC 샌디에고에서는 낙방한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한 학생은 UC 계열에서 줄줄이 떨어져 풀이 죽어 있는데 느닷없이 버클리에서 합격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온 집안이 경사가 난 듯 기뻐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모든 것에 수직적 순위를 매겨야 직성이 풀린다. 명문 사립대학들, 그리고 버클리, LA, 샌디에고 순으로 내려가는 UC 대학들, 그 밑으로 이어지는 칼스테이트 대학 등 순위에 우리는 대단히 민감하다. 그래서 자녀가 합격한 대학의 순위에 따라 딱 그만큼의 자부심, 그만큼의 실망을 안고 진학생 부모들은 자녀 대학 보내기라는 한바탕의 드라마를 끝내고 있다.
인생은 자기가 살아본 만큼만 아는 법인데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자녀가 고등학생일 때까지는 대학입학이 대망의 ‘고지’이다. 하지만 막상 그 ‘고지’에 도달하고 나면 그 너머로 겹겹의 ‘고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합격은 입학만 보장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미국의 대학 시스템이다.
대학 진학생이나 부모들은 지금의 기쁨 혹은 실망은 지금의 일일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될 줄 알았던 대학에 떨어졌다고 실망할 일도 아니고, 감히 기대를 못하던 대학에 합격했다고 그 운을 고마워 할 일만도 아니다. 대학 문에 들어서면 그때부터 다음 라운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2년 전 아들을 UC 명문대학에 보낸 한 엄마의 말이다.
“공부가 너무 어려워서 아이가 따라가기 힘들어 해요. 이런 성적으로는 졸업을 해도 아무 의미가 없지요. 시티 칼리지에서 한두 학기 수강을 하며 GPA를 좀 올린 후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이비리그에 합격해 자부심이 하늘을 날던 학생들이 내로라하는 수재들 틈에서 버티지 못하고 스트레스성 우울증에 빠지거나, 졸업은 겨우 했지만 번듯한 직장 하나 못 잡는 경우를 심심찮게 듣는다. 그런가 하면 늦되는 아이들 중에는 시티 칼리지부터 차곡차곡 실력을 다져서 일류 대학원에 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
‘간판’이 주는 뿌듯함은 잠깐이다.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 보다는 들어간 대학에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걷기운동은 약간 땀이 나고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속도가 가장 좋다고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자녀가 적당한 긴장감을 갖고 노력하며 열정을 가지고 캠퍼스 생활을 즐길 수 있는 학교가 최선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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