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맡은 MBA 필수과목 강의 마지막 날, 떠나는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는 얘기가 있다. 몇 년 전 팜스프링스에서의 어느 컨퍼런스 에서 빌 게이츠가 한 얘기에 경영학교수의 마음을 담은 것인데 대충 이렇다.
이제는 게이츠 자기처럼 정보 통신 분야에서 억만 장자가 되는 것은 좀 어려울지 모르나 백만장자가 되려는 젊은이들은 이렇게 하면 된다면서 든 예가 있었다. 소프트웨어 한 가지를 만들어 99달러에 만개를 팔면 백만 달러정도 매출이 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의 눈으로 보는 시장을 소개하면서, 미국이란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큰 시장을 가진 곳이니까, 비즈니스 스쿨을 들어온 학생이라면 인생에 한번은 꼭 매스마켓을 상대로 상품 한 가지는 개발해서 팔아보아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세상에 나가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있다.
회계, 재무, 마케팅, 인사, 정보시스템, 전공에 상관없이 비즈니스 필드에 들어왔으면 각자가 가진 “꿈”을 펴는데 필자의 얘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얘기다. 그리고 그 “꿈”을 펴나가는데 조금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펴나갔으면 하는 얘기를 한다. 왜냐하면 아름답지 않은 꿈을 가진 이들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예들을 수업도중에 볼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얼마전 이 칼럼에서 현대자동차의 약점이 그들의 투명성이 없는데서 온다고 얘기하며 아름다운 경영의 예로 들은 최충경이란 기업인이 경영하는 경남스틸이란 어느 한국 중소기업의 경영사례도 그 기업인의 꿈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투명경영 대신에 어두운 욕심이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면 직원들이 그렇게 따라 와 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음악대학과 미술대학 입시에서의 부정이 신문에 오르내릴 때마다 필자는 아름다운 필드에서도 더러운 마음들을 가지면 보는 소리와 그림이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길지 않은 인생을 되돌아 보면서 “꿈”을 생각할 때마다 필자는 때때로 미안해지고 겸허해진다. 기성세대가 아니라 우리세대가 정치나 무엇을 할 때는 훨씬 깨끗하고 아름답게 할 것으로 단정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자기 과신에 찬 것이었는가는 날이 갈수록 참담하게 드러나서 자기 자신이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독재시절 얘기는 모두들 너무 많이 해서 더 할 얘기도 없지만 양 김씨의 아름답지 못한 정치술수들을 볼 때마다 우리세대에서 정치를 주도하는 시절이 오면 정치문화가 무척 달라지리라 의심이 없었다.
그런데 대통령선거 캠페인이 시작하기도 전에 어쩌면 우리는 두 번째로 우리세대의 후보가 탈당하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을까. 박차고 나간 후보의 정치도의를 의심하는 비평의 글들을 보는 이 마음은 너무나 어둡다.
“개발독재와 그 대칭점의 민주화운동이 낳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나 강력한 추진력이 아니라 국민다수와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합리적 지도력.” 이 얘기는 한국일보의 어느 정치평론가가 쓴 얘기인데, 손학규 후보를 실용주의적 중도 노선의 이상형으로 보면서 그에게 기대를 가졌던 이로서 손 후보가 탈당한 후 그에 대한 실망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논조였다.
개인적인 친구라서가 아니라 손학규 후보는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다.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이들이 떠나더라도 필자는 그가 성공하기를 빈다. 그러나 그가 성공해서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더 보고 싶었던 것은 그가 한나라당에 남아서 멋지게 한번 경선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세대의 사람들에게 멋진 정치는 “저렇게 떨어지는 것”이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아름답게 지는 것. 국민들이 표를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주면 떨어 질 수밖에 없지만, 그렇더라도 끝까지 싸우다가 흠씬 두들겨 맞는 그 모습. 그것이 자랑스러운 세대라면 보여주어야 할 아름다운 싸움이요 정치가 아닐까.
얘기 나온 김에, 또 주위에서 아무리 “충청도 후보는 당신밖에 없소” 하고 바람을 넣더라도, “나는 평생 학교에서 지낸 사람이라 대통령 노릇을 할 준비는 안 되었소” 하고 조용히 연구실에 돌아가, 밀린 학술지 논문들을 읽는 그런 정운찬교수가 필자에겐 훨씬 아름다워 보인다. 아, 좀 멋있는 이들이 우리 사는 이 세상 을 살맛나게 만들어 줄 수는 없는 것인가.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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