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섭(브루클린)
배가 부른, 아직은 앳되게 보이는 여성이 두려움과 절망에 가득찬 모습으로 일본군 옆에 우두커니 서 있다. 이름하여 정신대(挺身隊). 과거 일본 군대에는 정진대(挺進隊)라는 특수부대가 있었다. 일본말로 ‘데이신타이’, 전방에서 특수 임무를 수행하던 부대였다.발음은 같고 글씨만 다른 ‘데이 신타이(挺身隊)’라는 이름으로 종군위안부 부대가 만들어진다.
세계 전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단 하나뿐인 ‘집단 성적노예부대’인 정신대. 인간이 저지른 범죄 중 가장 잔인한 죄악이지 인류사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영원불멸의 국가 범죄가 아니고 그 무엇이랴.일제가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만주사변(1931.9.18)을 일으키고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부의(溥儀)를 허수아비 왕으로 임명하여 만주국을 세운 후에 계속해서 중-일전쟁을 하던 그 즈음, 일본 북지나 방면군 참모장의 비밀문서가 일본군 참모총장에게 다급하게 전달된다. 그 내용은 점령지역에서 교통망의 파괴 등 치안유지 및 안정이 어렵고 반일감정이 높아지는 것은 일본군인들의 현지인에 대한 강간에서 비롯되는 바, 빠른 시일 내에 ‘성적 위안소’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1992년 미야자와 총리가 종군위안부 관련 모든 문서는 불타 버렸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하던, 그 해 일본 방위청 도서관에서 발견돼 공개된 일본 군부의 극비문서(陸支密大日記)이다.이로써 일본정부는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구 일본군의 종군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는 담화를 어쩔 수 없이 발표하게 된다.
1930년대 후반, 개설 당시 위안소 소속 위안부의 80% 이상이 조선 여성이었다. 이렇게 강제로 끌고 간 숫자가 20만여명에 달한다. 일본 군부의 배급에 의해 전쟁터에 배치돼 겁에 질린 여성들은 전쟁의 광기와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군인들의 성적 만족을 위한 배설물의 도구로써 사용되었고 버려졌다.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하루에 적게는 5~6명에서 많게는 60명의 굶주린 수컷들로부터 집단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 중에는 국민학교 학생들도 상당수가 있었다. 열 두어살짜리 어린 학생들까지 끌고간 사실이 당시 학적부들에서 입증되고 있다 하니 사람의 탈을 뒤집어
쓴 들짐승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럴 수 있었겠는가.
그 문구를 보면 ‘명랑하고 작아 보이지만 성숙한 데가 있으며’ ‘몸집이 비만하여 터져나갈 듯 하다’ ‘혈색이 좋고 가슴팍이 넓어 인내심이 강하며’... 종전 후 시카고 북쪽 ‘스코키’라는 유대인 집단 도시가 있는데 대량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은(7,000여명) 서독 정부를 상대로 배상금을 청구하여 연간 3억달러씩 받아내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도 동서독 장벽이 무너지자 마자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배상금 가운데 동독 지분으로 남겨둔 50억달러를 통일독일 정부에 청구하였다.
일본도 전쟁중 미국 거주 일계인들의 단순 강제수용에 대하여 인권과 미 헌법까지 따져가며 미 의회에서 ‘일계인들의 전시 수용에 관한 위원회’까지 만들게 하여 1인당 2만달러의 보상금과 미 대통령의 사과 편지도 받아내었다.또한 UN 건물 안에 돔 형식의 ‘일본 히로시마 원폭 기념실’이 있는데 이를 통하여 자신들이 최초의 원폭전쟁 피해자라고 말하고 있다. 잔인한 전쟁 가해자에서 전쟁피해자로 탈바꿈을 하고 있는 것이다.군수물자 제조 공장에서, 탄광에서, 댐 건설현장에서, 비행기 격납고 건설현장에서, 군사기지 건설현장에서 그리고 일제 군부의 성적 노예로 사용되자 죽고 다치고 버려졌으며 배고픔과 버티기 힘든 노동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참으로 민족적 모욕감이 하늘을 꿰뚫고 떨리는 분노로 지축이 흔들리며 치 떨리는 원한이 뼈 마디 마디에 사무친다.지금도 매주 수요일이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백발의 그 소녀들이 하얀 소복을 입고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 앉아 말 없는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말 없는, 눈물 맺힌 그 눈동자와 마음 속의 피맺힌 울부짖음은 개인의 수난사를 뛰어넘어 우리 민족의 수난사인 동시에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전세계 인류의 양심에게, 그리고 아무 말 없는 우리 후손들에게 목놓아 소리치며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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