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목회학박사)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자동차를 타고 뉴욕과 뉴저지 시내를 다닐 때에 많은 빌딩들을 보게 된다. “저 빌딩들은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그냥 저 자리에 서 있겠지.” 왜 이런 생각을 가끔씩 하는지 나도 모를 때가 있다. 왜 그럴까? 한 번 태어나면 한 번 죽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스스로의 모습일까. 아니면 생은 가도 세상은 남는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었을까.
지난 10일, 해리만 스테이트 파크의 북쪽에 있는 그린 폰드 마운틴(Green Pond Mountain)에 등산을 갔다. 겨울이라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3월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지난번 폭설이 내린 후 날씨가 좋아져 눈이 녹았고 눈이 녹은 후 다시 기온이 급강하되어 꽃샘추위를 해서였는지 산에는 눈과 얼음이 그냥 얼어붙어 한겨울 그대로였다. 그날은 온도가 49도까지 올라간다는 기상대의 보고가 있어 등산옷도 가볍게 입고 집을 나섰다. 동행하는 분의 자동차로 등산로 파킹장까지 약 1시간이 걸려 도착해 보니 다른 등산객들이 와 있었다. 주말 등산객으로 보였다. 즐겁게 산행은 시작되어 산을 오르고 내리며 심호흡을 내쉬는 가운데 산의 정기를 들어 마시는 등 2시간 이상의 산행이 계속됐다.
오름이 끝나고 내림이 시작됐다. 등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오를 때에는 언제나 힘들다. 아무리 추운 날씨라 해도 속옷은 젖는다. 산을 오를 때의 힘 들어감이 속으로 땀을 나게 해 속옷이 젖는 것이다. 그러니 등산 상행 길은 언제나 버겁다. 한 번 오르고 그냥 내려오는 산은 그
런대로 낫다. 오르고 내리는 등 몇 번의 상행과 하행이 있을 때는 정말 힘들다.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한참을 내려가고 있는데 이게 왠일인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산길(트레일)이 앞에 나타났다. 하행 길에 나타난, 마지막 산을 넘은 내림 길의 중반이었다. 산의 중턱을 가로지르는 협소한 길이 나타났다. 이 길 외에는 길이 없다. 돌아갈 수도 없다. 다른 길로 접어
들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야말로 “노 초이스(No Choice·다른 방도가 없음)”였다.
겨우 한 사람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 전부 얼음으로 덮여 경사져 있는 것이 아닌가. 길 밑이 비스듬한 언덕이라면 얼음 위를 지나가다 넘어지면 미끄럼을 타고 아래로 굴러가면 된다. 그래도 크게 다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아래는 낭떠러지였다. 낭떠러지 밑이 보이
질 않는다. 잘못해 미끄러져 떨어지면 크게 다치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산행 길에서 실족하여 떨어지면 크게 다치거나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산을 타다가 산과 생을 같이한 산악인들은 많다. 그러기에 산은 사람을 품어 호연지기를 만나게도 해주지만 잘못하면 사람을 집어삼키는 무서운 자연으로 변하기도 한다. “어어어~~” 하다가 그냥 미끄러져 떨어
지면 중상 아니면 그 무엇이다. 아주 잠깐 사이이다.
프로 등산객이 아니더라도 아마추어 등산객이라 해도 최소한 필요한 장비는 갖추고 산을 올라야 한다. 늘 다니든 산길은 괜찮지만, 특히 처음 가는 산의 길은 더더욱 그렇다. 이 날은 그 전 주 미끄러진 경험이 있어 얼음길에도 다닐 수 있는 스테블라이저(Stabilizer)를 등산화 밑에 차
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조심조심 건넜다. 20-30야드 거리는 족히 되었다.무사히 건넜다. 자동차 파킹장까지 도착했다. 협소한 얼음길을 만난 그날 등산 자체는 “흥분된 신나는 산행이었다”고 생각 들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다음 그 생각은 싹 가시고 “로프(밧줄)도 없이 너무나 준비가 부족한 산행을 했다”하는 반성이 들었다. 자칫 스테블라이저가 미끄러질 경우, 혹은 얼음이 깨어져 나갈 경우 ‘어어어~~’하다 떨어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날의 그 위험했던 산중턱의 얼음 길 통과는 전혀 예기치 않았던 상황에서 벌어졌기에 누구의 잘못도 없다. 처음 올라간 산의 지리를 미리 알 수 있을 방법이 없잖은가. 다행은, 무사히 산행을 마친 후 다시 집으로 귀환하였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산을 탄다고 하는 것은 특히 초행산길은 이토록 언제나 위험이 뒤따른다. 조심,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좋은 일과 나쁜 일 등 수많은 일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빌딩들을 보며 “사람은 사라져도 저 빌딩들은 그대로 서 있겠구나” 생각하는 것도 살아있는 동안의 생각과 경험 중 일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얼음길 위를 무사통과 살아남았듯이 오늘을 살아남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빌딩들. 그 사이로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들. 빌딩은 그대로 서 있을 것이고 세상은 세상대로 잘 돌아갈 것이다. 매 주 토요일의 산행. 오늘은 잘 다니던 산을 올라야겠다. 감사하며, 눈을 감고도 오를 수 있는 산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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