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질문 자체가 새삼스럽다. 정답은 교과서에 다 나와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질문이다.
‘경건의 모양 갖추기 경선에서는 민주당 후보들이 이겼다’-. 한 달 전쯤이었나. 뉴욕타임스가 내린 판정이다.
힐러리가 기도하는 모습이 뉴스위크에 크게 실렸다. 남가주의 한 ‘메가 처치’의 초청을 받은 오바마도 매스컴을 탔다. 매케인이나, 줄리아니가 진지하게 설교를 듣는 모습은 그러나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대선주자들의 이런 행보와 관련해 민주당 승리 판정을 내렸던 것. 물론 조크다. 그런데 한 가지를 말해 준다. 진보쪽 대선주자들이 얼마나 종교 갭에 민감한가 하는 것이다.
진보 하면 아무래도 종교와 거리가 멀다. 때문에 대선시즌이면 그 갭을 극복하기 위해 진보세력 후보들은 더 경건의 모양을 갖추고 교회를 찾는다. 미국적 현상이다.
진보와 보수의 구분법에서 종교는 주요 참고사항이다. 사회주의를 말할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말도 있으니.
그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적어도 유럽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그 한 케이스가 ‘히잡’(hijab · 가리개)을 둘러싼 공방이다. 이슬람권의 여성 박해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히잡’이다.
이 ‘히잡’을 페미니스트 등 유럽의 진보세력들은 지지하고 있다. 단순 지지 정도가 아니다. 이슬람 여성의 인권문제로 비화시키면서 그 착용권리를 옹호하는 유럽연맹이 생길 정도다.
독일에서는 유대인 학살사건을 부인하면 형사법으로 다룬다. 벨기에에서도 이와 비슷한 법 제정 움직임이 있었다. 과거 오토만 터키 제국의 150여만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을 부인하는 것 자체를 불법화하자는 내용이었다.
그 움직임이 시들해졌다. 공동 제안자인 사회당이 발을 뺐기 때문이다. 증거가 불확실하고, 더 조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인권에, 인류애를 항상 주창하는 진보세력이 ‘히잡’을 옹호한다. 인류 학살의 역사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왜. 진보 중의 진보를 자처하는 유럽의 좌파세력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동지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이 무너지는 정도가 아니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여성 해방, 종교로부터의 자유, 평화주의, 거기다가 동성애자 권리옹호에서 포르노의 자유까지 주창해 온 그들이다. 이를 위해 지난 수십 년간 투쟁해 왔다.
그런 유럽의 좌파가 여권을 짓밟고, 비(非)회교도는 아예 인간으로 보지도 않고, 동성애자는 목을 잘라도 옳다는 전 근대적인 회교 원리주의와 동지적 관계를 맺다니….
그러나 이는 새로울 게 없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지적이다. 본래 좌파의 속성이 그렇다는 것으로, 뭐랄까, 전체주의에 대해서는 항상 약한 게 서방세계 좌파의 진짜 모습이라는 거다.
그 전통이 상당히 오래다. 1920년대 버나드 쇼 등 유럽의 좌파는 소련을 동경했다. 60년대에는 모택동이 그 모델이었고, 오늘날에는 이슬람 전체주의가 그 대상이라는 분석이다.
하기는 냉전시대 내내 한 번도 소련을 비판한 적이 없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좌파는 거기다가 한 가지 병리현상까지 보이고 있다는 일부의 비난이다. 가해자와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현상 말이다.
인질로 잡혔다. 그 상황이 오래다 보니 자신이 처한 상황은 잊었다. 오히려 인질범의 주장에 동화됐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가해자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그들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그런데 결코 낯설지 않다.
세계 평화를 걱정한다. 이라크인들의 질고는 바로 우리의 질고라는 식으로. 그런데 북한인권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다문다. 그러면서 여전히 제 3세계의 인권을 들먹인다.
핵 문제도 그렇다. 약속을 깬 건 김정일 체제다. 그리고 그 핵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아니다. 중국도 아니다. 남쪽이다. 남한이 핵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김정일이 마치 영웅이라도 된 것 같다.
미국이 세계 전략차원에서 북한문제에 다소 숨통을 틔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퍼주기다. 나오는 얘기는 남북정상회담이고. 김정일을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이라도 되는 듯이.
그 병증세가 한나라당에도 번졌다. 허겁지겁 북한정책을 바꾸고 있어서다. 혹시 표를 잃을까 하는 조바심과 함께 좌파를 뒤따라가지 못해 부화뇌동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달리 진단이 나오지 않는다. 중증의 ‘스톡홀름 증후군’이 만연됐다는 것 외에는.
sechok@koreatimes.com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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