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조기입학 비결 들어봤더니…
“책 많이 읽으니 시험 쉬워져”
중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한인 학부모들에게 “어떻게 하면 내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하는 것만큼 절박한 사안은 없다. 그래서 한밤중까지 과외, SAT, 예체능학원에 자녀를 ‘뺑뺑이’ 돌리는 한인 학부모들이 많다. 요즘은 아버지들의 교육열이 굉장해 치맛바람도 무섭지만 바지바람은 더 무섭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자녀 교육의 모든 것이 ‘좋은 학교 진학’에만 맞춰진 요즘 세상에 한인학생 3명이 학교수업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하고, 시험점수보다는 학문을 통한 배움에 중점을 둔, 어찌 보면 평범하기만 한 방법으로 미국 최고 명문 대학들에 조기합격해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학원은 ‘떠먹여 주는 지식’
혼자 공부해야 자신감 생겨
칼리지 서머스쿨도 큰 도움
다이애나 장 펜실베니아대(밴나이스고교)
<장양은 쌍둥이 여동생의 선생님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들은 엘리자베스 우(17), 다이애나 장(18), 대니얼 하(18). 팔로스버디스 페닌슐라 고교 12학년인 우양은 올가을 동부 사립명문인 코넬 대학에 진학한다. 밴나이스 고등학교 수학/과학 매그닛 프로그램 12학년 재학 중인 다이애나 장양은 또 다른 명문인 펜실베이니아 대학(유펜)으로 진학, 정치학과 경제학을 복수 전공하게 된다. 역시 팔로스버디스 페닌슐라 고교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대니얼 하군은 시카고 인근 노스웨스턴 대학으로부터 조기입학 허가를 받았다. 다른 명문대학들을 제쳐두고 자신과 ‘궁합’이 맞는 학교를 과감히 선택한 이들의 진학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공교육에 충실
이들의 공부 방법은 학교→과외→SAT학원→예체능학원으로 빽빽이 짜인 전형적인 것과는 거리가 조금 멀다. 스스로들 “많이 놀았다”고 겸손해 한다. 밤새도록 공부하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이나 그 부모들이 들으면 ‘약이 오르는’ 대답이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비결은 있다.
세 명의 공통점은 사교육보다는 공교육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남가주에서 상위권 학생들이 모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이 유난히 많은 곳. 학교 수업만으로는 안심이 안 돼 학생 대부분이 학원에 다닌다.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교육을 무시하는 공부법에는 고개를 흔든다. 스스로의 공부의 줄기를 잡고 않고는 학원에서 떠먹여주는 공부를 자기의 지식으로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란 것이다.
장양은 “밴나이스 매그닛 스쿨에도 우수한 선생님들이 너무 많고, 특히 김순진 카운슬러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공립학교 교사와의 만남이 진학 설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하군은 SAT학원을 아예 다니지 않았다. SAT학원 공부는 원리와 맥락을 가르치기보다 문제풀이만 반복해 노력한 만큼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래서 서점에서 구입한 SAT 예상문제집을 가지고 자습했다. 문제를 풀고 난 후에는 예상문제집 뒤편에 있는 정답과 맞추어 보았다. 맞춘 문제는 왜 맞았는지, 틀린 문제는 왜 틀렸는지 분석했다. 정답면에 실린 문제풀이 해석을 꼼꼼히 읽었다. 문제집에 실린 모든 예상문제를 이런 식으로 풀고 분석하다보니 SAT 문제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찾아낼 수 있었다.
우양은 학원을 잠시 다녔다. 부족한 마음에 SAT 학원을 찾았지만 돌이켜보면 별로 얻은 게 없다고 한다. 학원에서 배웠다고 생각했던 것을 나중에 다시 혼자 해보면 학교에서 배운 것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혼자 다시 공부하고, 학교 교사에게 질문하며, 다시 혼자 공부하면서야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했다.
엘리자베스 우 코넬대(페닌슐라고교)
<우양은 아버지 우재형씨의 둘도 없는 친구다>
# 커뮤니티 칼리지 적극 활용
이들은 커뮤니티 칼리지 시스템을 적극 활용했다.
하군은 “여름 방학 때마다 엘카미노 칼리지에 다녔다”고 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이점 때문이다. 하군은 “커뮤니티 칼리지의 서머스쿨 6주 수강으로 받은 20학점은 고등학교 4학기 동안 받는 학점과 같다”고 말했다.
우양도 9학년 때부터 LA하버 칼리지에서 화학, 정치학 등을 수강했다. 고등학교 수업보다 더 깊이 있는 강의를 통해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한 것은 물론 학점도 더 많이 따냈다. 우양은 “A를 받으면 고등학교 GPA에 큰 플러스가 되지만 낮은 점수를 받을 때는 마이너스가 된다”며 “A 를 받을 자신이 있는 클래스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려서 부터 독서습관 몸에 배
과외활동은 중구난방보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야 도움
# 효율적 시간 활용
이 학생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효율적인 시간 관리와 집중력이다. 방과후 활동이 많은 엘리자베스 양은 보통 5시께 귀가해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한 뒤 10시30분께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밤을 새도 시간이 모자랄 수험생이 11시전에 잠을 자?”라고 물을 사람들이 많겠지만 엘리자베스는 피곤할 때는 쉰다는 ‘상식’에 따랐다. 대신 일찍 일어났다. 보통 기상시간은 새벽 5시. 조용한 시간인 만큼 집중력이 높아져 예습을 중심으로 한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 어려서부터 기른 독해력
이들은 책을 많이 읽다보니 시험이 쉬어졌다는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책이 인생만 바꾸지 않고 성적도 바꾸는 것이다.
장양의 어머니 제인 장(45)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항상 책을 손에 달고 다녔다”고 말했다. 판단력이 없는 초등학교 때는 부모가 권장하는 책을, 중학교 때에는 영어 고전문학책을, 상급학년이 되고 나서는 스스로 장르를 골라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군은 자신의 독해력 실력은 “아침저녁 한 장씩 읽은 성경 때문에 길러졌다”고 말했다. 서양 문학사를 장식하는 수많은 명작들 중 최고 고전으로 손꼽히는 성경을 매일 읽으면서 책 읽는 능력이 길러졌고, 독서의 힘은 공부와 특히 광범위한 장르에서 뽑아낸 예문을 사용하는 SAT 독해력 시험에 직접 도움이 됐다.
우양은 부모들이 “불 끄고 그만 자라”고 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 속에서 플래시 라이트를 켠 채 계속 책을 읽었다. 책 속의 활자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즐거움 때문이었다고 했다.
우양은 “고학년이 될수록 책 읽은 시간이 자꾸 줄어든다”고 불평했다.
대니얼 하 노스웨스턴대(페닌슐라고교)
<하군은 태권도를 통해 공부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 방과후 활동
각 대학들이 주요 입학 선정 기준으로 삼는 요소들 중 하나는 과외활동이다. 이들 세 명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중구난방의 과외활동보다는 집중된 것, 특히 본인이 좋아하고 즐기는 분야를 선택했다. 대학을 가기위해서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열정이 담긴 과외활동을 한 것이다.
장양은 토론 클럽인 JSA(Junior States of America)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매년 3,000~4,000명이 모이는 컨벤션에 참가했고, 10학년 여름방학 때는 예일대에서 열린 JSA서머스쿨에 참가했다. 물론 학교 JSA클럽의 회장도 지냈다. 입학 에세이의 주제는 당연히 JSA였고, 입학 사정관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현직 판사의 감독 하에 학생들이 모의재판을 준비하고 진행해 사법제도의 핵심을 터득하는 ‘틴 코트’에도 3년 간 참여했다.
우양은 ‘베스트 버디 클럽’을 이끌었다. 베스트 버디 클럽은 일반 학생들이 신체장애 학생들과 1대 1 결연을 맺어 보살피는 클럽이다. 지능지수가 낮거나 신체장애가 있어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힘든 이들을 같은 학생들이 보살피는 눈물겹고 정겨운 장면들 연출해낸 것이다. 몸이 불편한 학생, 사람들에 대한 우양의 애정이 진솔하게 담긴 대학 입시 에세이를 읽었던 주변인들은 에 사정관들의 심금까지 울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군은 태권도 3단의 무술 유단자다. 주먹만 쓰는 것이 아니라 비올라, 클라리넷, 기타까지 다룰 줄 안다.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와 클라리넷을 연주하기도 했다.
# 부모 헌신
자식 잘 키운 비결을 들려달라는 질문에 이들의 부모들은 한결같이 “공부할 때 힘내라고 먹을 것을 열심히 만들어 준 것 외에는 특별한 비결이 없다”고 말했다.
대니얼의 어머니 하은숙(47)씨는 “아침은 꼭 챙겨 먹였다”며 “도시락도 싸서 보냈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의 어머니 우경자(51)씨는 “체력 없이는 공부를 할 수 없다”며 “잘 먹이려고 많이 애썼다”고 털어놓았다. 다이애나의 어머니도 “살 빼고, 다이어트 한다며 잘 안 먹으려 할 때는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하군의 어머니는 “모두 학원에 보내고 족집게 과외를 한다는데 사실 불안했지만 공교육에 대한 믿음과 신앙으로 버티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명문대 입학 자녀를 둔 부모에게 기대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마치 한국에서 대입시 후 수석 입학자의 한결같이 꾸민 듯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했습니다.” “학원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잠은 충분히 잤습니다.” 시시하지만 사실 그것이 정답인 것이다.
세 학생의 부모들은 공부는 습관이고, 습관은 훈련으로 얼마든지 길러질 수 있다며 공부도 음식처럼 맛있게 하게 해야 효과가 좋다고 귀띔했다. 아이의 말과 행동에 항상 눈과 귀 열어두기, 싫증을 내면 즉각 그만두게 하기, 스스로 선택하게 하기, 학교수업 예습 복습 철저히 하기 등 어찌 보면 아주 평범하기만 한 나름의 비결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특히 학교 선택에 관해서 이들은 “자녀가 가고 싶은 학교를 가게 하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대니얼의 어머니는 “스탠포드를 보내고 싶었는데, 본인이 꼭 노스웨스턴을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할 수 없었다”며 주변 시선을 의식한 부모 고집보다 자녀의 의견과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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