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센트럴 커네티컷주립대 경제학 교수)
전후 태생이며 작년 9월 52세의 최연소 나이로 취임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민자당의 보수파 지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중대한 발언을 하였다. 즉 지난 3월 1일, 제 2차대전 당시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월남, 버마를 위시하여 네덜란드 출신까지 근 20만의 여성을 강제로 징집하여 ‘군용 성노예’로 학대한 사실을 부인하였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군부가 강제로 시행했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아무런 증거가 없고, 어디까지나 민간단체가 주관한 것이다”라고. 이웃나라에서는 즉각적인 반대 시위를 시작하였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서는 이를 규탄하는 국제회의까지 주최했었다.이에 앞서 1993년 일본정부는 발견된 자료에 의하여 군부가 이를 주동했고, 군인을 위하여 여성들에게 소위 ‘위안부’가 되기를 강요한 사실을 시인하였었다. 1995년에는 민간 기금으로 보상에 나섰지만 불과 285명이 받았을 뿐, 대다수는 이것을 거절하였다. 왜냐하면 공적인 보상도 아니요, 정식 사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미국 하원에서는 일본이 시행한 성적 노예 행위를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마이크 혼다 의원은 엄연한 증거가 실존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부인하는 아베 총리는 “이들 피해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밖에 안된다”고 하였다. 만약 의안이 결의된다면 일본에 대해서 피해국 여성들에게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도록 법안을 고려 중이다.
일본과의 외교관계에서 좀 주저스러운 안건이지만 총리의 발언으로 더욱 심각하게 다룰 형편이 된 듯하다.
전쟁이 끝난디 62년이 지났어도 일본정부는 줄곧 역사적 사실을 왜곡, 또는 부인을 계속하고 있다. 참다 못하여 1991년 12월, 당시의 피해자 3사람이 일본정부의 사죄와 보상 청구의 목적으로 동경 지방재판소에 제소하였다. 많은 일본인들에게 충격을 준 이벤트였다.특히 역사학을 전공한 요시미 요시아끼 교수가 동년 11월 28일에 일본에 증인으로 가기 직전 김학순 할머니와의 NHK 인터뷰를 들었다. “일본군에 짓밟히고 인생을 비참하게 지낸 사실을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사실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라고 언명한데 대하여 큰 감동을 받았고 종군위안부에 대해서 철저히 연구하기로 결심, 실천하게 되었다.
비록 정부가 전쟁 직후에 여러가지 불리한 자료나 증거물을 태우거나 인멸하였고, 아직도 공개하지 않는 많은 자료가 있지만 온갖 노력으로 조사하였다.먼저 그는 1992년에 ‘종군위안부 자료집’을 출간하고 1995년 4월에는 ‘종군위안부’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필자도 출판 직후에 읽어보았고 지금 다시 읽어도 깊이 파고 들어간 연구와 자료가 담긴 귀한 책이다. 이 책 끝에 공개된 참고문헌이 무려 9페이지나 된다.요시아끼 교수는 계속해서 여러 곳을 방문,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자료를 발굴하였고 억울하게 끌려가서 혹독한 경험을 겪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모았다. 그리고 참전한 일본 장병도 면접하고 그들의 일기나 수기까지 찾아서 참고로 하였다.
그는 위안부 제도가 여성들을 희생시켜 성폭행을 공인하는 짓이 되었고, 그들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행위라고 용감히 단정한다. 그 당시 일본의 육군 형법 제 86조 2항에 “부녀를 강간했을 때에는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함”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점령지에서 법을 어긴 일본 병사들은 범죄의 추궁을 두려워하여 강간 후에는 바로 부녀자들을 살해한 것도 적지 않다고 보고하였다.따라서 일본 군부가 적극적으로 위안부 제도를 추진한 것은 군인들의 사기 향상과 군기(軍紀)의 유지 및 약탈, 강간, 방화, 포로 학살 등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성병의 방지도 포함했었다.
하지만 많은 처녀들을 희생한 이 제도는 일본 군인들이 오히려 성병을 더 만연시킨 결과가 되어버렸다. ‘29’에 ‘1’이라는 표현은 여자 한 사람에 29명의 군인이 달려든 은어라고 한다.생존한 여성들은 온갖 치욕을 겪었기 때문에 그 후유증이 막심하다. 각종 성병, 자궁질환, 자궁 적출 수술, 불임증 등의 신체적 질병과 함께 신경증, 우울증, 남자 혐오증, 언어장애, 불면증, 자기 비하 등의 정신병과 끝내 자살까지 하는 현실이다. 설혹 결혼을 했어도 과거를 알게된 남편들의 학대와 함께 이혼도 당했다.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 사회, 배상,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해 주지 않는한 피해 부녀자들의 고통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고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요시아끼 교수는 절규하고 있다.이런 역사적 사실과 호소를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부인하고 있는 아베 총리의 정책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것은 뉴욕타임스의 사설(3월 6일자)에까지도 논의될 만큼 심각하며 3월 8일자의 기사는 더욱 구체적으로 보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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