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회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은퇴한 한인 김모씨. ‘책상물림’으로만 30여년 지내온 그는 제2의 커리어로 주택 리모델링 사업을 준비하던 차에 지난 여름 지인으로부터 집의 방을 하나 더 늘려달라는 공사 의뢰를 받았다. 아직 컨트랙터 라이선스가 없는 터라 필리핀 컨트랙터를 고용해 공사에 들어갔던 김씨는 당초 3개월이면 마무리될 것으로 여겼던 일이 해를 넘기는 바람에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필리핀 업자는 아무 말도 없이 며칠씩 나타나지 않기를 밥 먹듯 했다. 추궁하면 “급한 일이 있어 필리핀에 다녀왔다”고 둘러대고 뙤약볕에서 일한 인부들에게 임금도 제때 지급하지 않아 공사가 진척되지 않는 등 사람 한번 잘못 썼다가 호된 속앓이를 해야 했다. 안되겠다 싶어 컨트랙터를 해고하고 자신이 직접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선 김씨는 우여곡절 끝에 이번 달에야 겨우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어정쩡하게 아는 사이인 집주인이 공사중 추가로 해 온 이런저런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는 바람에 그는 손에 한푼의 이익도 쥘 수 없었다. 속이 숯덩이가 된 것은 물론이다.
“화가 나 밤잠을 이루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러다 어느 날 새벽 문득 내 마음을 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더군요. ‘돈 좀 더 남기겠다고 엉터리 컨트랙터를 고용한 것도, 공사를 오케이 한 것도 넌데 왜 그토록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에 사로잡혀 있는가’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순간의 각성이었지만 마음이 한층 차분해 지더군요. 바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공사를 통해 얻은 것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컨트랙터가 안겨 준 깨달음, 묵묵히 자신을 따라 준 히스패닉 인부들을 통해 확인한 인간에 대한 신뢰, 게다가 엉터리 컨트랙터를 만나는 바람에 혼자 공사하느라 도면을 읽을 수 있게 된 것 등 얻은 게 적지 않더라는 것이다. 김씨의 경우처럼 어떤 상황, 어떤 사람에게서도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다. 마음가짐이 문제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김씨는 현명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때 ‘정크본드의 제왕’으로 불렸던 마이클 밀큰은 요즘 자선사업을 많이 벌이는 금융인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밀큰은 그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과 오랜 대화를 즐기는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노인, 어린아이들, 그리고 하잘 것 없는 직책의 사람 등 소위 힘없는 사람들과 흉허물 없이 몇시간이고 대화를 나누곤 한다. 주변 사람들이 이유를 물을 때마다 그가 인용하는 문구가 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어느 면에서 나보다 훌륭한 점이 있으며 그런 점에서 그들은 나의 스승”이라는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이다.
신은 모든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그들의 목에 두 개의 주머니를 달아 준다는 내용의 우화가 있다. 사람들은 앞가슴의 주머니에는 다른 이들의 실수와 단점을 집어넣고 등에 짊어지는 주머니에는 자신의 실수와 단점을 담는다는 것이다. 이 우화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남의 눈의 티끌은 잘 보면서도 자신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속성을 비유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맑은 창’뿐 아니라 나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 또한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마주치는 모든 이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아무리 살펴보고 곰곰이 생각해 봐도 그에게서 나보다 나은 점을 못 찾겠거든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로 삼으면 된다. 그런 모습이 바로 당신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반면교사’는 이런 거울을 통한 가르침을 뜻한다. 공자는 “3명이 길을 떠나면 그 가운데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했다. 2명이 아니고 왜 3명이라 했는지 평소 의아해 했는데 혹시 ‘맑은 창’이 되는 스승과 ‘거울’이 되는 존재를 함께 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견딜 수 없는 것으로부터 인내를, 수다스러움으로부터는 침묵을, 불친절로부터는 친절을 배우라”고 권고한 것은 독일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였다. 이런 마음가짐은 현인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가름해 주는 대단한 도덕적 기준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을 마모시키는 미움과 분노를 비켜가는 작은 지혜일 뿐이다. 바라보는 시선만 조금 바꿔도 주변은 크게 달라 보인다. “모든 이들은 나의 스승”이라고 반복해 되뇌어 보자. 그러면 당신 몸과 마음에서 부정적 에너지가 서서히 빠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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