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부터 에이브러햄 링컨을 존경하며 그를 닮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물론 홍보용이었지만 대선 직전에는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라는 책까지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대통령이 되면 링컨처럼 낮은 사람으로서 겸손한 권력, 강한 정부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불우한 어린시절을 극복하고 역사 속에 위대한 인물로 우뚝 선 링컨을 롤모델로 삼고 싶어한 것은 그의 어려웠던 성장기를 감안하면 십분 이해가 간다.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인물은 쉽게 동일시의 대상이 되는 법이니까.
노무현대통령은 결국 원하던 자리까지 올랐으니 링컨과 절반은 닮은 셈이다. 그렇지만 지난 4년간 그가 보여준 혼란의 리더십을 고려할 때 “링컨이 되고 싶다”던 그의 염원과는 달리 ‘짝퉁 링컨’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힘들 것 같다.
2008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나선 일리노이주 흑인 연방상원의원 배럭 오바마 역시 링컨을 캠페인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는 링컨이 1860년 대통령선거 때 캠페인 본부로 사용했던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의 옛 주의회 건물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링컨과 같은 연고를 갖고 있는 점을 부각시켜 최대한 정서적인 반사이익을 얻으려 한 듯 하다. 오바마의 계산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대선주자로서 첫 무대는 적절하게 연출한 셈이다.
정치인들, 특히 대권도전에 나선 사람들에게 링컨은 벤치마킹 1순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링컨에게는 역사학자들이 매긴 ‘가장 훌륭한 미국대통령’이라는 성공레이블이 붙어있다. 또 교회 설교와 자기 계발서에 자주 예화로 등장할 만큼 잇단 실패로 점철됐던 그의 삶은 대중들에게도 호소력을 지닌다. 그러니 정치인뿐 아니라 보통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서로가 앞다투어 링컨을 닮고 싶다고 말들 하지만 정작 그의 이미지는 지나치게 ‘노예해방’과 ‘역경극복’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그가 지닌 위대함의 본질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링컨을 진정 위대하게 만들고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지난 2005년 역사학자 도리스 컨스 굿윈이 출간한 링컨에 대한 기념비적 전기의 제목인 ‘팀 오브 라이벌스’ (Team of Rivals)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라이벌은 ‘같은 냇물’이라는 뜻의 라틴어 ‘리발’에서 파생된 말이다. 강을 뜻하는 ‘리버’와 같은 어원의 말로 같은 강가에 살면서 같은 물을 마시며 살아가는 이웃을 뜻한다. 정치를 흔히 ‘적과동지’의 구분으로 규정하는데 라이벌은 어원으로 보자면 적보다는 동지에 가까운 개념이다. 실제로도 라이벌은 죽고 죽이는 관계가 아니라 선의의 경쟁을 통해 같이 성장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링컨은 라이벌들로 팀을 구성해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했다. 자신을 ‘긴팔 원숭이’라고 놀리며 극도의 경멸감을 나타냈던 에드윈 스탠튼을 전쟁부 장관으로, 가장 강력한 맞수였던 윌리엄 시워드를 국무장관으로, 경선에서 패한 뒤 자신을 끊임없이 깎아 내렸던 새먼 체이스를 재무장관으로, ‘링컨은 무능의 상징’이라고 험담을 일삼던 에드워드 베이츠를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역사가 증명하듯 링컨의 라이벌들로 구성된 내각은 ‘드림팀’이 됐다. 그들은 모두 링컨의 팬이 됐으며 특히 스탠튼은 링컨이 암살되자 “이제 그는 모든 시대에 남을 인물이 됐다”고 애도했다.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무성하다. 수많은 다른 풀들과 경쟁하면서 자라기 때문이다. 링컨이 정적들을 기용하자 그의 조카가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자 링컨은 “말을 달리게 하는 것은 잔등에 붙어 있는 벌레들”라며 “벌레가 없는 말은 그냥 어슬렁거릴 뿐”이라고 대답했다. 링컨은 ‘라이벌’이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기에 ‘포용의 리더십‘과 ‘큰 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
말 잔등의 벌레처럼 거끄럽고 불편하다며 밀어내고 제쳐 놓는 것은 ‘협량의 리더십‘이다. 이런 리더십으로는 통합과 역량의 극대화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지금 이곳저곳에서 목도하고 있는 리더십은 대부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든 조직이든 교회든 예외가 없다.
최근 한나라당 내에서 ‘검증’이니 ‘네거티브’니 하면서 유력대선 주자들간에 감정싸움이 번지고 있다. 라이벌간의 건전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서로가 성장할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긴 창으로 상대 몸을 쿡쿡 찔러 상처 내기에 안달인 형국이다. 생산적인 라이벌 관계를 만들어갈 능력조차 없는 것 같다. 후보군에 속한 인사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정품 링컨 리더십‘을 기대하기는 애시당초 틀린 것 같고 그저 최악의 선택만 면하면 다행일 것 같은 암울한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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