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철(목사/수필가)
1884년 민영익, 서광범 등은 우리나라 외교관으로는 처음으로 구주(歐洲)에 간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개인 여권으로 파리에 간 유학생은 홍종우가 처음이었다.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홍종우는 2년 남짓 파리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자유주의에 흠뻑 물들어 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그는 춘향전 등의 한국 소설을 불어로 번역하여 해외에 소개한 최초의 한국인이기도 했다. 역시 개화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그러한 그가 왜 김옥균을 암살했는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일설에는 그가 민영익에게 매수 당했었다고 전해진다.
1894년 3월 28일 그가 샹하이에서 김옥균을 죽였을 때, 김옥균은 10년이란 긴 세월을 일본의 외진 곳에서 유배생활을 했었다. 나라를 뒤흔들었던 풍운아의 모습을 그에게선 이미 찾아볼 수 없었던 때였다. 10년의 세월이면 웬만한 원구(怨溝)쯤은 다 메꾸어질 만한 세월이다. 그럼에도 그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공로로 홍종우는 홍문관 교리와 경사(京師)의 사택까지 하사 받았으며 훗날엔 제주 목사가 되어 세도를 누렸던 것을 보면 김옥균은 이만 저만한 거물이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홍종우는 김옥균을 암살한 것이 나라를 위한 애국심에서였다고 변명했다.
그렇지만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키고 일본에 기대려했던 것도 애국심에서였음은 매일반이라 하겠다. 이들의 동기는 조금도 부정할 수 없는 애국심이었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에 있어서는 동기만이 가치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동기가 좋았다 해도 그 결과가 나쁘면 결코 좋은 평가를 받기가 어려운 것이다.“목적이 수단을 신성시 한다”는 말이 있지만, 매사가 다 그런 것만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더우기 역사적 사건의 참된 동기를 가려낸다는 일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고 본다. 특히 정
치인들에 있어서는 밖으로 내세우는 동기란 대부분이 표리부동한 거짓으로 차 있기 때문이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러 놓고도 ‘애국’이라는 미명으로 포장해버리기 때문에 그 좋다 못해 거룩하기까지 한 ‘애국’이 안타깝게도 마구잡이로 남용되고 도용되고 있음을 가슴아프게 여기는 바이다.애국심! 인간의 심정 가운데 이처럼 아름다운 것도 없으려니와 또 동시에 이처럼 의심쩍은 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것은 흔히 다른 감정의 가면이 되기가 쉽기 때문이다.
‘애국’이라는 미명 하에 가장 많은 ‘비애국’의 사건들이 연출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홍종우의 가장 큰 잘못은 또 다른 데 있었던 것이다.당신이 알고 있는 최악의 정치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은 클레망소(Clemenceau, 프랑스 정치가, 1841~1929)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최악의 정치가를 정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이×이야말로 최악이라고 여기는 순간, 더 나쁜 ×이 나타나니 말이다”.김옥균을 최악의 정치가로 보았던 것도 잘못이었겠지만 김옥균만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더 큰 잘못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보다 더 나쁜 정치가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도 한결같이 ‘애국’이란 간판을 내세우고 있으니 도대체 애국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리송해 서글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근자에 듣자하니 우리 고국을 선양하는 차원에서 매년 잘 치러져 오고 있는 퍼레이드 행사를 놓고 이러쿵 저러쿵 험집을 내는데 이 또한 ‘애국’에 먹칠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으면 하는 의구심이 앞선다.좋은 목적과 함께 쉽지 아니한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에 우리 교민들이 일심 동체가 되어서 밀어주고 이끌어주는 가운데 좋은 열매가 맺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공명심과 이해관계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고 하는 것은 보기에 역겹고 추하다 하겠다.
종종 National Geography에서 보여주는 동물의 생태를 볼 것 같으면 가장 악하고 추한 짐승은 하이에나이다. 무한한 욕심꾸러기이면서도 정작 자신은 사냥을 하지 않고 다른 짐승이 잡은 먹이를 악착스럽게 빼앗는 짓을 일삼는다. 추악한 짐승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인간으로서 그같은 일을 일삼는다면 이미 인간 이하의 동물로 스스로를 격하시키는 일이 아니겠는가?
아무쪼록 좋은 목적으로 시작된 일이 아름답게 결실하여 명실공히 ‘애국의 행사’가 되기를 염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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