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인 여성의 눈물겨운 수기
젊은 한인 여성이 의료보험 없이 위암과 싸워온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글을 기고해 화제가 되고 있다. 뉴욕의 존 제이 대학에서 심리학 석사를 마친 그녀는 고향인 오렌지 카운티로 돌아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책을 저술하고 있다. <편집자 주>
2005년 9월, 어머니의 구토증세는 점차 악화되어 갔다. 58년 삶을 살아오면서 감기 한번 앓지 않으셨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결국 진단결과, 어머니는 위암 판정을 받으셨다.
한국에서 이민 오신 나의 부모님은, 아버지는 페인트공으로, 어머니는 한국 식당에서 일하시며 세 자녀를 기르셨다. 두분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렇기에 어머니에게는 의료보험이 없었다. 게다가, 65세가 되신 아버지는 노인들을 위한 정부 의료지원(Medicaid: Medical in California)의 수혜자가 되셨지만, 어머니는 평소의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인해 질병의 위험이 낮다고 판단되어 수혜 대상에서 보류되었다. 사실, 나의 부모님과 같은 중저소득층의 미국인, 특히 이민자들에게 의료보험은 일종의 사치로 느껴져왔다. 법적으로 필수라고 자동차 보험은 들고, 자신의 건강을 돌보기 위한 보험은 들지 못하는 어려운 선택인 것이다.
어머니에게 의료보험이 없었던 탓에, 암과의 투쟁은 눈물과 난관의 연속이었다. 끝없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더하여, 재정적 걱정이 주는 압박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보험이 없었기에, 처음 우리는 현금을 받아주는 작은 동네 교포 의원을 찾아갔다. 초기 진단에만도 700달러의 현금이 필요했는데, 보험이 있었다면 10달러면 될 일이었다. 처음 암으로 판명났을때, 우리는 다가올 검사와 수술, 심지어는 화학치료마저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암 등 큰돈 드는 중병
예고 없이 찾아온다
곧바로 우리는 Mecicaid에서 제공하는 저소득층 대상의 응급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했으나, 승인을 얻는데 두달에서 여섯달 소요된다는 답변 뿐이었다. 암과 관련된 저소득층 대상 자선단체를 찾아 보았지만, 역시 서류심사를 거치는데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했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의 암은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필요한 현금은 점차 바닥나고 있었다.
Medicaid의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차선책으로 지역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이마저도 지인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얻은 것이었다. 진찰을 받는데만도 1회에 250불에 달했고, 각종 검사와 병원 이용료로 7000달러를 더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이 그렇듯, 병원에는 현금 지불 고객을 위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각각의 진찰과 검사는 특별 케이스로서, 컴퓨터 시스템이 현금지불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병원 관계자들이 직접 자필로 영수증을 작성해 주어야 했다.
희망을 갖고, 나는 의료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선 모금을 캠페인을 시작했고, 내 누이는 모교인 존스 홉킨스 병원의 외과의가 어머니를 환자로 받아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 의사는 종양 제거를 위한 수술을 제안하였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지불할지는 막막했지만, 우선 어머니의 치료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부푼 희망을 안고 동부로 향했다.
적어도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어머니의 암이 이미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진행되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우리의 희망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그리고, 의사는 두달에서 석달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했다.
나와 누이는 어머니가 암 판정 받은 후로 대학원을 휴학하고 집으로 돌아와 시간을 함께 했다. 보험 없이는 병간호를 위한 비용을 댈 수 없었으므로, 나와 누이는 돌아가며 늘 어머니 곁에 있었다. 종종 산책을 즐기시던 어머니는 곧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고, 통증이 심해짐에 따라 거동이 어려워졌다. 그리고 어느날 아침, 응급실로 옮겨진 어머니는 우측 신경이 마비되어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모두 신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지쳐가고 있을 때 쯤, Medicaid의 응급 지원이 승인되었다. 신청한지 5개월 만에 얻은 지원이었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Medicaid로 부터 얻은 것은 침대 하나와 일주일 간의 휠체어 임대, 두번의 병원치료가 전부였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했던건 야간 병간호 지원마저도 일손 부족으로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2006년 3월, MediCal 지원을 받기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어머니는 59세로 숨을 거두셨다. 처음 암을 발견한지 6개월만의 일이었다.
가끔 나의 어머니가 의료보험을 들었더라면, 어머니가 정기 검진을 받았더라면, 아니 혹은 둘중 하나라도 우리가 미리 권고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나는 오늘도, 의료 보험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위태로운 한 목숨을 보는 것 같아 슬픈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최고의 의료기술을 갖춘 나라에 살고 있는지는 몰라도, 중요한 것은 아직도 의료지원을 받을만한 형편이 되지 못하는 나의 어머니와 같은 사람들은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basket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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