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는 진공상태를 혐오한다. 파워의 공백지대란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 있을 수 없다. 역사는 어찌 보면 끊임없는 파워에의 경쟁이다. 독일의 사학자 랑케의 역사관이라고 한다.
이 파워의 전환이라는 게 그렇다. 상당히 드물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거의 예외가 없이 비(非)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독일이, 또 일본이 새로운 파워로 부상했다. 그 결과는 양차 세계대전이었다. 뒤이어 소련이 등장했다. 동서냉전이 뒤따랐다. 20세기의 역사다.
세계의 파워가 서에서 동으로 옮겨지고 있다. 새삼 주목 받는 게 아시아이고, 그 중에서도 중국이다. 벌써부터 꽤나 심각한 질문이 제기된다. 아시아를 축으로 한 새로운 파워의 전환이 과연 평화롭게 이뤄질까 하는 것이다.
왜 그토록 비관적 전망인가. 아시아를, 특히 중국대륙을 휩쓸고 있는 내셔널리즘 때문이다.
‘문화적 중국’(cultural China)이란 말이 있다. 중국의 학자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신조어다. 중국을 지리적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역사적으로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은 문화적 의미에서 모두 중국이란 개념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상당히 교묘하게 들린다. 해석에 따라 한자(漢子) 문화권인 동아시아 전체가 중국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현대판 천하국가(天下國家), 다시 말해 ‘중화(中華) 내셔널리즘’의 개념이 그 말 속에 숨어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내셔널리즘은 글로벌리즘과 상치되는 개념이다. 세계화의 물결에 전통적인 사회 통제장치가 더 이상 작동이 안 된다.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구조적 변화가 일면서다. 이 때 방어적 기제로 흔히 등장하는 게 내셔널리즘이기 때문이다.
새삼스레 대두되고 있는 중화 민족주의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모순으로 점철된 사회다. 모순은 계속 증대되고 있다. 천 가지도 넘는 내부적 모순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게 공산당 일당독재는 유지하면서 10년 이상 경제성장을 거듭해온 중국의 오늘의 상황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하나가 부의 편재다. 사회동란을 유발할 수준이다. 지니계수(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가 0.47로 나타났다. 위험경계선인 4.0을 훨씬 초과한 것이다.
정보와 권력의 분배요구도 날로 커가고 있다. 네티즌 인구가 1억을 넘는다. 블로거만 3,000여만을 헤아린다. 그리고 외부에 알려진 반정부조직도 100개가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중산층들은 연일 시위에 나서고 있다. 공산당 일당체제가 한계에 이른 것이다.
이 산적한 내부문제를 일거에 잠재우는 묘수가 없을까. 여러 방안이 모색된다. ‘지식계급의 관변화’가 그 하나다. 또 다른 방안은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지적하고 넘어갈 부문이 있다. 혁명 4세대로 불리는 후진타오 지도체제의 중국의 지향점이다. 그건 다름 아닌 중화민족주의다. 먼저 일본이 그 타겟이 됐다. 위험할 정도로 반일감정을 선동해온 것이다. 그 뒤를 따른 게 반미정서의 확산이다.
동시에 전개되어 온 운동이 ‘아무 아무 공정’(工程)으로 불리는 역사의 정치 도구화다.
공산주의 이념은 퇴색된 지 오래다. 사회적 분열요소는 확산일로에 있고. 이 상황에서 추진된 게 단대공정(斷代工程)이고, 동북(東北)공정이다. 이 공정을 추진하는데 결정적으로 힘을 실어준 게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한 혁명 4세대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이다.
중화민족주의는 시간적으로 고대국가인 하(夏) 상(商) 주(周)에서 시작됐고(단대공정), 공간적으로는 만주와 한반도 이북(동북공정)도 포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동북동정을 통해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의 입을 다물게 하고 전체 중국을 하나로 묶는다는 계획이다.
“민족주의는 단순한 허상만은 아니다. 긍정적 기능도 있다. 그러나 감성에 호소함으로써 차가워야 할 머리를 뜨겁게 하는 민족주의를 정치인들이 악용하는 것이 문제다.” 민족주의 연구의 세계적 석학으로 알려진 베네딕트 앤더슨의 말이다.
중국의 공산정권은 체제의 정당성을 상실했다.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은 따로 없다. 중화민족주의의 뒤로 숨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민족주의를 고창하는 거다.
중국의 위대함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선동적인 글이 난무한다. 그 인터넷에 어느 날 갑자기 혐한(嫌韓)의 메시지가 넘쳐난다. 한국 쇼트트랙 여자선수들이 장춘 동아시안 게임에서 벌인 백두산 세리머니 이후 중국 네티즌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마치 중화민족주의와 한국 민족주의가 충돌이라도 한 것 같은 양상이다.
중국은 강해서가 아니라, 약해서 더 위험하다. 누가 한 말이던가. 작은 해프닝에도 발끈하는 중국, 결코 수퍼파워의 모습은 아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더 위험해 보인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