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포화 조직화 광역화
지난 3일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한 나이트클럽 앞에서 벌어진 한인청소년들의 엽기적 폭력만행(본보 9일자 A1면 보도)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공공연히 확산돼온 일부 한인청소년들의 현주소를 명백히 보여준 사건이다. 또 이같은 행태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삼가고 조용히 넘어가려 하는 한인사회의 관행이 더이상 미덕일 수도 없고, 문제의 해결책일 수도 없음을 웅변적으로 증명한 사건이다.
특히 이같은 사건이 발생할 경우 본인은 물론 상당수 부무들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치유하는 것보다는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거나 어쩌다 한번 발생한 우발적 사건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강변해온 것, 더욱이 살인을 서슴지 않는 갱단의 활보를 막연히 베트남계나 중국계의 일로 치부하는 등의 태도로는 제2, 제3의 유사사건 재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인청소년들이 가공할 범죄의 주체이자 대상일 수 있다는 뼈아픈 자각이 없으면 근본대책 모색은 또다시 일과성 성의표시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한인청소년들도 이같은 범죄에 많이 노출이 돼 있고 상당수는 적극적인 가담자로 활동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산호세 산타클라라 등지의 경찰국에서 흘러나온 자료를 종합하면 한인청소년들 중 적어도 수십명이 여러 조직범죄단(갱)에 가담돼 있고, 단순 불량배로 분류된 숫자만도 100명을 넘는다. 나이 분포는 10대 중반부터 20대 후반까지 다양하다.
이들 문제아들이 저지르는 범죄의 특징적 양상은 이번 사건에서 보듯 흉포화다. 웃자란 영웅심에서 비롯된 세과시용으로 공연히 상대에게 시비를 걸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과 같이 안면도 없고 숫적으로 절대 열세인데다 저항 의지도 능력도 없는 무방비 상태의 상대를 잔인하게 유린하고 두개골 함몰로 쓰러진 피해자에게 다시 위해를 가하는가 하면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 인터넷에 버젓이 자랑까지 하는 등 인면수심 폭력극은 드물었다. 용서받지 못할 범죄를 자랑스런 전투쯤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행위다.
또다른 특징은 조직화다. 서넛만 모이면 무슨 모임을 만드는 등 범죄자 및 범죄예비군들이 집단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인청소년 갱단의 숫자나 명칭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당국은 베이지역에만 서너개는 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 주동자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번 사건 주도자들의 신원이 어느정도 파악되자 경찰이 몇명의 실명을 대며 산호세를 중심으로 암약하는 갱단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음지의 관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근들어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광역화다. 이는 두 갈래로 나뉜다. 우선 다른 지역 갱단과 개별적 집단적으로 연계에 활동하는 문제아 및 문제조직의 경우다. 이들은 대개 LA 한인타운을 무대로 하는 범죄조직과 어두운 유대관계를 형성, 주도자들이 서로 왕래하거나 연락을 주고받으며 상호간 범죄학교 구실을 한다는 것이 당국의 진단이다. 또 하나는 다른 커뮤니티(주로 소수계) 갱단과의 연계하는 경우다. 몇몇 범죄조직은 한편으로는 다른 지역 한인갱단과, 다른 한편으로는 베이지역 등 북가주의 이웃커뮤니티 갱단과 종적 횡적으로 연계돼 있다고 한다. 타커뮤니티의 연계대상 갱단은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안팎에서 각축하는 중국계 갱단과 베트남계 갱단, 살리나스에서 오클랜드에 이르기까지 분포된 히스패닉계 갱단이라고 한다.
연계대상의 색깔도 각기 다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살리나스-오클랜드를 축으로 하는 히스패닉 청소년갱단의 경우, 성인갱단이 남부파(수드파)와 북부파(노르테파)가 나뉘어 쟁탈전을 벌이는 것과 궤를 같이해 남부파의 자녀들이 한편을 이루고 북부파의 자녀들이 또 한편을 이뤄 서로 중고교 교실까지 쳐들어가 잔인한 살인극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살리나스에서는 한때 매주 금요일 방과후에 다운타운에서 정기적 난투극을 벌여 경찰이 일제소탕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런 조직에 한인 비행청소년들이 끼어들기도 하고, 반대로 한인조직의 세확장 과정에서 그들과 잦은 충돌을 빚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게다가 일부는 인터넷 스포츠도박 등 이권사업의 청부업자 노릇을 하거나 마약밀매나 총기류밀매에 손을 대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성인 갱단이나 마피아와 선이 닿게 돼 있어 그 거미줄에 걸리면 아차 실수를 깨닫고 빠져나오려 해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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