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스 워드가 미국에서 자랄 때는 경쟁에 불리한 ‘언더독’(underdog)이었지만 한국에서 태어났을 때는 ‘버림 받은자’(outcast)였다.” ESPN 방송은 수퍼보울을 앞두고 지난주 방영한 하인스 워드 특집을 이런 멘트로 시작했다. CBS도 수퍼보울 당일인 지난 4일 워드와 모친 김영희씨의 인간승리 스토리를 내보내 많은 미국인들을 감동시켰다. 특히 CBS는 이브닝 뉴스 앵커 케이티 커릭의 목소리를 통해 “워드 방한 이후 혼혈인도 군대에 갈 수 있게 되는 등 차별이 상당부분 해소돼 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연 그럴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워드 방한 후 당장이라도 국회를 통과할 것 같았던 ‘혼혈인 차별 금지법’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세인들에게 잊혀지고 있다. 입법이 표류하면서 해를 넘겼고 통과는 기약없는 상태이다. ‘냄비근성’의 또 다른 사례로 남을 것 같다.
한국사회의 자랑스럽지 못한 단면이 워드 스토리를 통해 드러난 이상 CBS 보도대로 정말 달라졌거나 달라져야 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의식의 요요현상’이 우려된다. 곧 될 듯한 호들갑과 망각을 몇차례 반복하다 보면 논의 자체가 아예 없었던 것보다 더 무기력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사실 혼혈인의 지위가 법률 몇 개로 하루아침에 높아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차별의식의 뿌리가 너무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은 집단 속에서 서열을 만들어 가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다. 계급이 아니라면 이런 저런 근거로, 하다 못해 나이로라도 위·아래를 만들어 간다.
그런 가운데서 자기 자신은 가장 낮은 서열로부터 탈출시키는 교묘한 의식을 작동시킨다. 얼마전 작고한 언론인 이규태는 이것을 ‘하향 억제의식’이라고 불렀다. 과거 소와 돼지를 잡던 백정들조차 “나는 적어도 개는 안 잡는다”는 식으로 서열화를 시도했던 것이 이런 의식의 발로라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피부색이야말로 얼마나 좋은 서열화의 대상이 되겠는가. 그런데 우스운 것은 혼혈가운데서도 피부색에 따라 철저한 서열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피부색이 검을수록 더 많은 편견과 설움에 시달린다. 그런데 같은 백인 혼혈도 미국서 태어난 사람은 한국말을 더듬거려도 연예계 등에서 크게 활약하는 반면 한국서 태어나 한국어만 잘하는 백인 혼혈은 다른 혼혈과 별반 다름없는 차별에 시달린다.
이런 차별의식의 근저에는 ‘단일혈통 민족’이라는 허구가 자리잡고 있다. DNA 검사를 해보면 한국인의 60~70%는 북방계열이고 30~40%는 남방계인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사람들은 순혈이 아니다.
같은 의식의 뿌리에서 자란 사람들인데 미국에 건너 왔다고 크게 달라질까. 한인들이 다른 소수민족을 함부로 대하고 깔보는 일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런 서열화 의식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얼마전 한인 컨트랙터에게 지붕공사를 맡겼던 한 한인은 공사중 한인업주가 히스패닉 인부들에게 계속해 한국말로 욕설을 해대는 바람에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2년전 한인들 밑에서 일하는 히스패닉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히스패닉 종업원들이 먹고 살기 위해 복종은 하지만 속으로는 한인업주들을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심지어 한인들을 자신들보다 열등한 민족으로 여기는 히스패닉 종업원들이 절반이 넘었다. 다른 소수민족은 우리의 성공과 우월감을 확인시켜주는 소도구가 아니다. 다른 인종을 마구 대하면서 우리가 받는 차별에는 목소리를 높인다면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이 조사 결과를 접하면서 떠올린 것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이었다. 이 교훈은 먼지가 켜켜이 앉아 있는 케케묵은 종교적 가르침이 아니다. 로마 황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이 교훈을 금으로 써서 벽에 걸었다는 설화 때문에 ‘황금률’이 된 것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 넘는 통시적인 보편성을 담고 있어 그렇게 불리는 것이라 봐야 한다.
거의 모든 문제들,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인종적인 것이든 황금률에 대입시켜 보면 바로 처방이 나온다. 탈무드는 이것을 약간 뒤집어 이렇게 표현한다. “네가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마라. 법은 이 하나로 완전하다.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이다.” 여기에 차별이 앞자리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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