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목회학박사)
벌써 2월이다. 세월이 빠르다. 지난 한 달이 화살처럼 지나갔다. 정해년. 황금돼지해. 사람들은 60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해라 한다. 사실은 60년 만에 돌아오는 붉은 돼지해인데. 부풀려도 좋다. 올해만큼은 그 어느 해 보다도 더 큰 복을 받기를 원하는 인간 특유의 바램이 들어있기에 그럴 것이다. 애교로 봐줄 수 있다.
그런데 지난 한 달 동안 황금돼지해를 맞아 복들을 많이 받았는지가 의문이다. 복. 복이란 좋은 것이다. 복의 반대 단어는 화다. 화는 나쁜 것이다. 복을 좋다, 화를 나쁘다 하는 그 자체는 단순한 의미에서의 해석이랄 수도 있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란게 있다. 나쁜 화가 변하여 좋은 복이 된다는 말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 늘 복만 받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반면 늘 화만 당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복을 받을 때가 있으면 화를 입을 때도 있다. 복과 화가 사람의 생에 늘 같이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복을 받는 사람과 화를 입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복이 화가 될 수도 있고 화가 복이 될 수도 있다.
복을 화로 만드는 사람은 부정적이고 매사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이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러나 화를 복으로 만드는 사람은 매사 긍정적이고 ‘잘 될 것이다’라는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러니 복이 따로 있고 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복을 짓고 화를 지으며 살아가는 주인공이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긍정적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복을 지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방법론이 문제다. 긍정적인 태도가 되려면 비교의식을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 비교의식도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다. 좋은 것은 남을 의식해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고 나쁜 것은 남을 의식해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다.
나쁜 비교의식을 발동케 하는 것 중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한국 사람들의 불치병인 ‘체면’치례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체면이란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을 말한다. 왜 떳떳이 살지 못하고 남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가야 하나. 형편이 있을 것이다.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습관일 수도 있다.
옆집 사람이 비싼 차타고 다닌다고 똑 같이 비싼 차타고 살아갈 필요는 없다. 비싼 차 아니더라도 편리한대로 싼 차 탄다고 누가 화를 내거나 욕을 할 사람은 없다. 자신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되 긍정적인 비교는 아무리 해도 상관없다. 부정적인 비교를 통해 자신을 비하시키고 학대하며 자포자기할 때 문제는 생기고 화가 된다.
지난달 31일자 신문에 폴 월포위츠 세계은행총재가 구멍 뚫린 양말을 신은 것이 사진을 통해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바 있다. 그것도 양쪽 양말이 다. 그는 터키를 방문해 에디르네의 셀리미예에서 이슬람 사원을 참배하기 위해 구두를 벗었다. 참배 후 나오는데 그의 양말 양쪽 엄지발가락 있는 곳에 구멍이 뚫려 있음이 기자들에 의해 포착됐다.
이 사진을 보고 부정적이고 화를 불러오는 사람들은 “어이구 창피해라. 세계은행총재가 양말도 없나봐. 저게 무슨 망신이람. 해도 너무 했구만. 아내가 없나. 아내가 없어도 그렇지. 양말 하나 제대로 챙겨 신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세계은행총재란 말인가. 정말 부끄러운 일이야!”하며 그른 힐난하며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진을 보고 긍정적이고 복을 불러들이는 사람은 “야, 멋있다. 어떻게 세계은행총재가 구멍 뚫린 양말을 신고 다닐까. 얼마나 바쁘게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저렇게 양말 갈아 신을 여유도 없을까. 부럽다. 양말이 구멍이 뚫렸다고 그의 양심이 구멍 뚫린 것은 아니잖아. 남의 눈치 전혀 안보는 너무 멋있는 사람이다!”라고 오히려 그를 두둔했을 것이다.
복을 짓던 화를 만들던 모두 자신에게 달려 있다. 상황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인 원인은 자신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리고 결과로 이어진다. 화가 복이 되는 전화위복의 상황은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오늘을 감사하고 내일에 소망과 희망을 두는 사람은 화도 변하게 하여 복을 짓는 사람이다. 오늘을 불평하며 내일에 소망을 두지 못하는 사람은 복도 변하게 하여 화를 짓는 사람이다. 어제는 오늘을 만들고 오늘은 내일을 만들어간다. 황금돼지해의 남은 11개월 동안 복을 많이 짓는 동포들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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