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품종·지리·양조법따라 차이
장기 보관때 부패 방지 역할
많으면-날카롭고 단단한 맛
적으면-밋밋하고 향 오래 못가
19세기 중반 프랑스 황제 루이 나폴레옹은 와인을 수출할 때 장기 선적으로 인해 맛이 변질되는 경우가 잦아들자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국가 경제에 막대한 지장을 주기 때문이었다. 신맛을 내게 하는 사과산을 젖산으로 바꾸어 맛을 순화 시켜주는 2차 발효용 박테리아들이 와인 속에 남아 아예 식초 맛으로 바꿔 놓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미생물학자 파스퇴르를 불러 해결책을 물었다. 파스퇴르는 2년간의 연구 끝에 ‘저온 살균법’을 개발해 냈다. 끓이지 않고 섭씨 85도(화씨로는 150도가량)로 1분간 가열하면 열에 약한 2차 발효용 박테리아들이 고스란히 죽어 버린다. 요즘은 양질의 필터를 이용해 열을 가하지 않고도 박테리아를 걸러 내지만 당시 만해도 이 저온 살균법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와인의 신맛은 음식과의 궁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입안을 상쾌하게 해주고 식욕을 돋워주기도 한다>
와인이 전쟁에서 소독약과 음료수로 보급됐던 유럽에서는 더더욱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와인은 사기진작용 기호품이 아니라 주식이며 약이었던 것이다. 전쟁터의 식수가 오염되기 쉬워 와인을 음료수 대신 지급했다. 2차 세계 대전때 프랑스 군대의 와인 소비량은 1급 비밀이었다. 와인의 양이 공개되면 주둔군들의 숫자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험난한 와인 고지 정복을 위해 꼭 알아두어야 할 기초 상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와인에 포함돼 있는 신맛, 즉 산도(Acidity)이다. 산은 어떤 음식에 어떤 와인이 어울리는 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뿐더러 와인을 장기 보관할 때 부패를 방지해주는 역할까지 맡는다.
와인의 맛은 태닌(tannin)과, 알콜, 당분과 산도가 결정해 준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상식이다. 떫은 맛을 내는 태닌은 레드와인의 대들보 같은 존재이지만 화이트 와인에는 거의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산은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모두에 들어 있다.
산이 많은 와인은 입안에서 날카롭고 단단함을 느끼고 너무 적으면 밋밋하고 향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레드와인의 맛과 밸런스는 ▲태닌 ▲산도 ▲알콜이 결정해 주고 화이트 와인은 ▲산도 ▲알콜, 스와트 와인은 ▲당도 ▲산도 ▲알콜이 결정한다. 따라서 산은 모든 와인의 밸런스를 유지해주는데 중요한 뼈대 역할을 해준다. 산도가 낮은 와인은 장기 보관이 어렵다. 물론 신맛의 정도는 포도 품종, 지리적 여건, 양조 방법등에 따라 다 다르다.
▲ 단맛과 신맛은 반비례
설익은 과일을 한입 베어물면 입안에 침이 샘솟을 정도로 시다. 그 과일이 수확기에 들어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단맛이 가득 고인 잘 익은 열매로 결실을 맺는다. 하지만 수확기에 찬바람이 불어 더 이상 익을 수 없다면 단맛 보다는 신맛이 더 많을 것이다. 와인도 그렇다. 포도는 마지막 수확기 몇 주 사이에 당분이 급속 생성되는데 날씨가 추워지면 설익게 되므로 당도가 떨어져 신맛이 강해진다.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를 예로 들어보자. 프랑스 북부 한랭 지역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산도가 높고 당도가 떨어진다. 프랑스의 샤블리스 지방은 날씨가 춥다. 이곳 포도에는 산이 많고 당분이 적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재배되는 포도들은 기온이 따듯해 프랑스 것과 같은 품종이라도 당도는 높고 산도는 낮다.
샤블리스 지역 포도 농가의 고민거리는 포도에 당도가 충분히 축적될 수 있도록 햇볕을 더 많이 받는 방법을 강구하는 일이다. 결국 고안해 낸 방법이 ‘chapitalization’으로 기후가 좋지 않아 당도를 확보하지 못하는 해에는 설탕이나 포도주스를 넣어 알콜 발효를 도와주는 것이다. 프랑스는 이를 합법화시키지만 캘리포니아에서는 금하고 있다.
▲레드와인의 태닌과 신맛 구분
레드와인에는 태닌과 신맛이 모두 들어있어 와인의 골격을 유지해 준다. 와인을 마실 때 태닌 성분과 신맛 성분을 구별 하기가 쉽지 않다. 와인을 한모금 삼킨 후의 입안 느낌에 주목해라. 산이 강하면 침이 고일 테고 태닌이 많으면 입안이 드라이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사람의 침은 알칼리성이다. 산이 들어오면 침이 고여 이를 중화시키려는 인체의 생리작용이 작용한다.
▲신맛
와인의 신맛은 포도 속의 4가지 주요 산중에서도 타르타르산(tartaric acid)과 사과산(malic acid)이 결정한다. 이중 사과산은 신맛의 근본으로 발효과정서 일부가 부드럽고 우유 맛이 나는 젖산으로 변하게 되므로 잘익은 와인의 맛은 순화돼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박테리아의 증식이 심해지면 젖산이 많아져 쉰 맛을 내게 하는 원인이 된다.
화이트 와인의 산도가 강하면 드라이하면서도 산뜻하고 짜릿한 느낌마저 준다. 또 중간 정도이면 드라이한 기분은 없고 산뜻하고 짜릿한 느낌을 준다. 산도가 낮으면 달콤하고 원숙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와인뿐 아니다. 일본의 사케도 산도의 영향을 받는다. 산도는 사케를 마실 때 경쾌함을 가져다 준다. 산이 많이 들어 있으면 물론 신맛이 날테고 낮으면 약간 단맛을 느끼게 해준다.
<산은 화이트 와인의 밸런스를 유지해 주는 골조와도 같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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