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조차 모르던 동방의 이민자 소년에서
공부 운동 리더십 등 수퍼A 사관생도 눈앞
미 육사 최우등 지명합격생이란 용어에서 연상되는 선입견과는 달리 문상원(영어이름 크리스, 밀브레 밀스하이 12학년, 사진) 군은 좀 호리호리해 보였다. 키 6피트/몸무게 160파운드. 얼굴이 뽀얀데다 이따금 그 뽀얀 얼굴에 홍조가 띠었다. 쑥스러운 듯 슬며시 웃을 때면 두 볼에 살포시 보조개까지 패였다.
칼리지 가는 걸 갖고 무슨 인터뷰냐며 안하겠다 못하겠다 버티다 겨우 성사된 일요일(28일) 오후 인터뷰가 슬근슬근 피치를 올리자 그는 달라졌다. 걸림없는 웅지를 펼쳐보였다. 한국어로도 거의 막힘이 없었다. 인터뷰는 부모가 운영하는 벌링게임의 덴탈랩 쪽방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ABC도 몰랐던 초등학교 4학년생
1989년 4월20일 서울 태생. 초등학교 3학년이던 98년 가을 부모를 따라 북가주에 왔다. 미국식으로는 4학년. 그러나 영어회화는 고사하고 ABC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상태였다. 학기제가 맞지 않아 6개월 놀다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공부 이전에 영어 따라잡기에 헉헉대야 했다. 5학년 끝무렵에야 ESL 족쇄에서 풀려났다(2년만에 ESL을 마친 것은 실은 매우 빠른 편이다).
영어도 못하고 놀림도 많이 받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정말 힘들었죠.
그의 영어 봇물을 빨리 트이게 한 것은 ESL 같은 공부 말고 또 있었다. 스포츠였다. 친구들이랑 많이 놀면서 운동 덕분에 영어를 더 일찍 배웠어요. 특히 미들스쿨 때는 거의 농구 때문에 친구도 사귀고 영어도 배우고.그는 요즘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체육관에 나가 웨이트 트레이닝, 러닝(평균 3-4마일), 수영 등 2시간-2시간30분 운동땀을 흘린다.
◆공부 운동 학생활동 ‘만능 고교생’
뻐끔영어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시절 영어공부와 친구만들기에 자신감이 붙은 그의 잠재력은 밀스하이에 들어가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9학년 때 학생회장으로 뽑히고, 한국문화클럽 신입생 대표가 됐다. 이후 12학년까지 4년 내리 학생회장 선거에서 당선돼 졸업반인 현재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다. 그 사이 한국문화클럽 부회장(04-05)을 거쳐 05년부터 2년 연속 회장을 맡는가 하면, 서비스 커미션 리더(06-07)도 겸하고 있다. 또 스쿨 커뮤니티 서비스 튜터단의 일원으로 영어 수학 과학을 후배들에게 지도하고 있다.
수영 러닝 등 스포츠를 즐기는 것 이외에도 밀스하이의 명물로 꼽히는 드래곤 댄스팀(중국 전통 용춤)의 공동회장을 맡는 등 과외활동에도 열성적이다. 그는 드래곤팀과 함께 지난 2년동안 음력 설날 즈음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서 열리는 차이니스 페스티벌에 참가했으며 올해도 2월 하순 구정축제에 참가해 거리의 용춤을 선보인다.
공부는 말할 것도 없다. 거의 올A다. 9학년 때 일찌감치 GPA 3.5 이상만 가입되는 캘리포니아 스칼라쉽 페더레이션 멤버가 돼 지금껏 이어오고 있고, 미 전역에서 리더십과
학업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의 집합체인 내셔널 아너 소사이어티에 10학년 때부터 가입돼 있다. 지난해 6월에는 가주 전역 각 고교에서 1명씩 뽑아 주정부와 주의회의 이모저모를 1주일동안 체험케 하는 아메리칸 레종 캘리포니아 골든 보이스 스테이트에 밀스하이 대표로 참가했다.
◆면접관들도 기립박수를 친 호연지기
왜 그랬는지는 선뜻 짚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9학년 때부터 육사진학을 꿈꿨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책을 좋아하고 역사비디오 같은 걸 좋아해요.주몽 대조영 연개소문 이런 비디오도 재미있게 봤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나중에 이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싶다는 좌표는 더욱 굳어졌고 당찬 로드맵까지 그려놓았다. (졸업후) 5년동안 유럽에서 (복무)하고 CIA에서 일하고 나중에 높이 돼 가지고 한국에 돌아갈 거예요.
당돌하기까지 한 그의 포부는 지난해 11월1일 육사 졸업생들로 구성된 입학전형위원들 앞에서도 전혀 꿀림이 없었다. 이날의 가주12지구 방문면접에서 그는 졸업후 희망을 묻는 질문에 “CIA 국장이 되고 나중에 국방장관이 되겠다”고 응답하는 등 자신과 신념에 찬 답변으로 일관, 제출서류를 꼼꼼히 훑어본 전형위원들이 일어서 악수를 건네고 박수를 치며 “너는 능히 할 수 있다”고 덕담을 건넸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 문 군에 대한 면접은 다른 지원생들보다 서너배쯤 길어져 1시간을 넘겼다고 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어머님께 감사를”
문 군의 허들극복과 꿈만들기가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뤄진 건 아니었다. 독실한 신앙심이 등불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상항중앙장로교회(담임 권혁천 목사)에 다니는 그는 간절한 기도와 믿음생활로 자신을 다잡는 한편 주보나눠주기 등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지난해 말 랜토스 연방의원으로부터 축하전화를 받은 뒤로는 육사의 공식 합격통보를 받을 때까지 새벽기도를 했다.
이번 영광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이라고 허리를 낮췄다.
그가 한없이 감사하는 또다른 이는 어머니 문연희 씨. 영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린 초등생 시절 더불어 기도와 자상한 격려로 힘을 불어넣어주며 한발한발 황소걸음 전진을 도왔다. 그는 존경하는 장군이나 군인을 묻는 질문에 “장군이나 군인보다 어머니”라고 대답을 할 정도였다.
문 군의 부모는 아들의 육사 최우등 지명합격을 대견해하면서도 조용히 지냈으면 하는 아들의 뜻을 존중해 별도의 인터뷰는 물론 코멘트를 극구 삼갔다. 문 군의 누나 둘은 각각 UC어바인과 UC버클리에 재학중이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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