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전까지는 하루 10~20분 정도 읽기 숙제 정도면 충분하고, 고등학생이라고 할지라도 과목당 숙제시간이 45분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미 전국 명문학교들이 최근 숙제를 줄이고 있는 이유다. 숙제는 학생들에게 학습습관을 길러주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는 의미에서 효과적이라는 견해가 강하지만 최근 미국학교들이 숙제 양을 과다하게 증가시켜온 데 대한 교육계와 학부모들의 반발이 강하게 일어나자 몇몇 교육구와 명문학교들이 이를 이유 있다고 받아들여 숙제를 줄이는 분위기이다. 월스트릿 저널이 최근 ‘숙제 줄이는 이유’에 대해 보도했다.
초등 2학년까지 10~20분, 3~6학년 30~60분 적당
숙제, 성취와 연관 적고 너무 많으면 학습효과 되레 줄어
하버드-웨스트레이크 등 유명 사립학교들‘줄이기’확산
전문가들“고교생도 하루 90~150분 넘지 않도록 해야”
현 부모세대는 방과후 TV 스포츠 중계를 보거나,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던 틴에이저였다면 개스값이라도 벌기 위해 아이스크림 샵에서 일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 고교생들은 미적분, 화학, 세계사 AP클래스와 영어 아너 클래스 숙제하느라고 매일 밤 몇 시간씩 씨름해야 하고 그 중간에 시험공부 하느라고 또 며칠 밤을 꼬박 새기도 한다. 부모세대에는 익숙하지 않던 AP클래스를 너도나도 듣기 시작하고 주립대학에라도 발을 들여놓으려면 그 많은 숙제를 꼬박 꼬박 해서 평균 학점을 높여놓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학생들이 다른 경쟁국가의 학생들보다 테스트에서 수학과 과학점수가 월등히 더 높은 것도 아니다. 스포츠나 음악, 여가를 위한 시간이 줄어들어 학생들의 삶에 균형이 깨지고 가정마다 스트레스가 늘어간다는 소리만 높아가고 있다.
이에 애틀랜타의 웨스트민스터 스쿨,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군 고교, 로스앤젤레스의 명문사립 하버드-웨스트레이크, 뉴욕의 리버데일 컨트리 데이 스쿨 같은 엘리트 스쿨들이 앞장 서서 숙제를 줄이고 있다.
■숙제 줄이고 있는 학교들의 분위기
<과다한 숙제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며 일부 유명 사립학교에서는 숙제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매서추세츠 웰레슬리에 소재한 웰레슬리 고교: 올해 처음으로 중간고사를 없앴다. 여태까지는 숙제로 내줬던 논술 쓰기를 올해부터는 역사시간에 10일 시간을 내서 학과시간에 하기로 했다. 사회과목 디렉터 다이앤 헤몬드는 “학생들의 저녁시간이 좀 더 자유스러워졌고 다른 공부를 더 정확하게 하게 됐다”고 말한다.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군 하이스쿨: 수학 숙제를 내줄 때 반복시키는 것보다 복습시키는 것에 중점을 둔다. 같은 문제를 계속 풀어보게 하지 않기 위해 중복되는 개념의 문제수를 줄인다. 수학교사 데이브 데믈리어는 “같은 문제를 반복시키는 것은 더 높은 차원의 사고력을 저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하버드-웨스트레이크 중고교: 한과목당 한 주의 숙제시간이 3시간을 넘지 않도록 조정한다. 코스마다 읽어야 하는 책 수도 줄였다. 이 학교는 속독과 다독보다는 천천히 읽어도 깊이 있게 읽기를 권장하고 있다.
△코네티컷주의 뉴 헤이븐에 소재한 홉킨스 스쿨: ‘5문제만 풀어보면 개념이 파악되는 사안에 대해서 15문제를 내주지 않는다’는 방침.
■과다한 숙제에 대한 비난
10세 소녀 삼리 마르덴은 매일 숙제 때문에 울었다.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은 것을 예습삼아 내줬기 때문에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숙제를 줄인 요즘 놀 시간도 더 많고 울 건수도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저학년의 숙제에 대해 연구해온 스파혹스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인 베타니 넬슨은 “초등학교 저학년 숙제는 부모들의 솜씨 경합이나 마찬가지다. 부모들이 너무 많이 도와주므으로써(그건 아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과제물을 내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함) 오히려 아이들의 정리, 정돈 및 관리하는 습관마저 저해시킨다”며 초등학교 저학년 숙제에 대해 강도 높은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미소아과의사협회가 작년 10월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2001년 부시 행정부가 시행한 ‘낙오자 없는 교육’(No Child Left Behind Act 2001)에 의해 교사와 부모들이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숙제를 강요하다보니 아이들의 자유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는 어린 학생들의 정서발달을 저해하고 있다.
■계속 늘어온 숙제
AP클래스와 주 표준시험 때문에 학교들은 숙제를 계속 늘여왔다. 미시간대학이 2004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의 6~17세 학생은 일주일에 거의 4시간을 숙제에 할애하고 있다. 이는 주중에는 매일 거의 50분씩 숙제에 매달려 있다는 의미인데 1981년에 비해 숙제시간이 51% 늘어났다.
숙제에 관한 한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가에 대한 논란은 계속 이어져 왔다. 19세기 숙제의 거의 전부가 암기 및 암송이었던 시절, 1800년대 말에 과다한 숙제는 신체발달마저 저해한다는 숙제 유해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학교들이 숙제는 학교에서 교사 참관 하에 하게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주선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린 후 미국 교육계가 발칵 뒤집히면서 숙제가 늘기 시작했다가 1960년대부터 다시 줄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테스트 점수가 일본에 비해 뒤진 1980년대부터 또 숙제가 늘기 시작했다.
■숙제와 테스트 점수와의 상관관계
듀크대학의 신경과학 및 심리학 교수인 해리스 쿠퍼에 의하면 초등학생의 경우 숙제가 학습 습관과 연습을 통해 발달되는 기술, 읽기 등에 도움이 되지만 그 이후에는 숙제와 성취에는 크게 상관관계가 없다. 따라서 그는 중학생의 경우 하루 90분, 고교생의 경우는 하루 90~150분이 넘으면 그 이상은 효과가 줄어든다고 밝히고 있다.
실례로 하룻밤 4시간 이상씩 숙제를 하는 학생이 5%인 미국은 수학 점수가 504인 반면 1%인 한국과 일본은 각각 587점과 569점이다. 또 3%인 네덜란드도 536점으로 미국보다 높았다. 반면 24%인 레바논은 434점, 아르메니아는 478점, 22%인 루마니아는 474점, 역시 22%인 사우스 아프리카는 266점으로 나타나 숙제를 많이 한다고 해서 시험점수가 더 올라가는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펜스테이트 대학에서 41개 국가의 숙제와 시험점수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일본, 체코공화국, 덴마크 같은 점수가 높은 나라가 그리스, 태국, 이란 등 점수가 낮은 나라보다 숙제를 덜 내주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숙제, 얼마만큼이 적당한가
미 전국 PTA와 미 전국교육협회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킨더가튼~초등학교 2학년인 저학년은 하루 10~20분을 넘지 않아야 효과적이며 3~6학년까지는 30~60분이면 적당하고 그 이상 학년은 과목마다 다르다.
한 18세의 고교 시니어는 어떤 날은 5시간이나 공부에 매달리고 그 외에도 트랙 연습, 교내 신문과 학생회에서 일한다. 그는 한 가지 얻는 것은 “시간 관리 기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석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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