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연개소문’등 역사 드라마가 인기이다. 전에는 사극 하면 주로 조선이나 고려시대가 배경이었는데 요즘은 고구려가 단골 무대로 뜨고 있다.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욕심, 동북공정이 몰고 온 반작용이다.
덕분에 금와, 유화부인, 소서노, 대소, 우태 등 고대사의 인물들을 미국에 사는 우리까지도 친근하게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동안 그들은 2,000년의 시간적 거리를 뛰어 넘어 살아 숨쉬는 생생한 인물로 되살아난다. 드라마의 힘이다.
반면 그런 막강한 드라마의 힘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 있다. 역사 드라마는 ‘역사’가 아니라 ‘드라마’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이 망각하는 것이다. 고구려 건국 즈음의 역사적 자료는 다 모아봐야 두세 페이지 정도인데, 그 빈약한 사료에 의존해 드라마를 만들자니 허구가 풍성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시대에 대한 예비지식이 부족한 일반 시청자들은 극적 재미를 위해 첨가하고, 변형시키고, 과장한 픽션을 저도 모르게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사극을 둘러싸고 역사왜곡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1살짜리 소녀의 경험을 토대로 한 자전적 소설 ‘요코 이야기’(So Far from the Bamboo Grove)가 한인 학부모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이나 한일관계에 대해 예비지식이 없는 미국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이 소설은 ‘역사’로 이해될 위험이 있다.
저자인 요코 가와시마 와킨스는 매서추세츠에 사는 70대 중반의 일본 여성이다. 정부관리였던 아버지를 따라 이북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종전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 성장한 후 미공군기지에서 근무하다 미국인과 결혼했다. 1950년 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1976년 평생 잊지 못할 어릴 적 피난 경험을 회상하며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특별히 반한 감정으로 이 책을 썼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11살짜리 소녀가 눈앞의 사건들을 11살짜리의 시각으로 이해하고 서술한 이 소설은 당시 상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엉뚱한 이미지를 남길 수가 있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자녀를 키우며 걱정하게 되는 것은 민족적 자긍심 문제이다. 백인이 주류인 이 사회에서 소수 중의 소수인 코리안으로 자라면서 아이들이 기 죽고 상처 받는 일이 생길까봐 부모들은 항상 신경이 쓰인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알게 모르게 소수민족으로서의 설움을 겪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백인과 다른 눈 모양과 피부색 때문에 당한 놀림을 시작으로, 못된 급우들의 따돌림, 인종차별적인 교사로부터의 미묘한 차별을 우리 자녀들 대부분은 경험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자신감을 얻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요코 이야기’가 코리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초래해 우리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부모들의 지적은 그런 면에서 일리가 있다.
우리 자녀들이 민족적 자긍심을 갖고 자라도록 돕기 위해서는 두가지가 필요하다. 한국에 대해 무지한 미국인들을 교육하는 일, 한국에 대한 편견이 생기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미국인들이 한국을 얼마나 모르는 지는 깜짝깜짝 놀랄 정도이다. 대학 강의실에서‘한국문화는 중국문화의 아류’라고 가르치고, 전문서적에 ‘한국 불교는 일본에서 전파되었다’고 기술되는 오류가 여전하다.
이번 ‘요코 이야기’논란은 한인부모들이 목소리를 냈다는 점, 그래서 주류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국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보스턴 글로브 등 신문은 관련 보도를 하면서 36년 일제의 잔혹한 식민통치에 대한 언급을 했다. 한일관계에 백지상태인 미국인들에게는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아마존 웹사이트에 가보면 이 책에 대한 반대 의견들이 줄줄이 달려 있다. 많은 이름들이 한국이름이다. 한인들의 목소리가 그만큼 커졌다는 말, 미국의 교육 시스템에 그만큼 적응을 했다는 말이 된다.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는 우는 아기가 젖을 먹을 뿐이다. 우리 자녀들이 미국사회에서 가만있어도 민족적 자긍심을 가질 정도가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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