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주필)
한국의 인기 드라마 ‘주몽’에서는 새로 일어나는 고구려와 망해가는 부여의 이런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부여에서는 백성들이 살기 어려워 나라를 떠나가고 있는데 고구려로 발전하는 계루에는 유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부여에서는 군사를 풀어 국경을 막고 탈출하는 백성들을 잡아다가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장면도 나온다.
물론 이 이야기는 드라마로 꾸민 내용이지만 현실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기도 하다. 사람은 살기 어려운 곳에서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옮겨가기 마련이다. 한 나라안에서 이동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국경을 넘어서도 이동할 수 있다. 역사상 이런 이동이 가장 심했던 때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로 당시 중국인들은 전란을 피해서, 또는 학정을 피해서 이웃나라로 옮겨 다녔고 공자의 예에서 보듯이 관리나 장수 등 지도층들도 나라를 바꾸어 섬기기도 했다. 오늘날 이민도 그런 예이며 멕시코 국경의 감시를 피해 미국에 밀입국하는 사람들은 보다 살기좋은 곳을 찾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예이다.
우리는 국가의 3대요소로 국토, 국민, 주권을 꼽는다. 이 세가지를 구비하지 못하면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이 세가지가 강하면 강대국이고 약하면 약소국이라고 할 수있다. 국토가 크고 더우기 비옥한 땅과 지원이 풍부하면 강대국이다. 인구가 많으면 또한 강대국이고 남의 나라의 영향력을 받지 않고 오히려 남의 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면 강대국이다. 반대로 국토가 작고 인구가 적고 다른 나라의 영향아래 있으면 약소국이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가 강대국이고 어느 나라가 약소국인 것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동서고금의 모든 나라들은 이 세가지 요소를 강화하는데 온갖 힘을 쏟아 왔다. 과거에는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넓히면서 인구도 늘렸다. 오늘날에는 이와같은 침략전쟁이 어려운 상황에서 인구의 이동이 국력의 변화에 큰 변수가 된다. 예를 들어 요즘 어떤 나라가 세계의 유수한 기업체를 끌어들이고 고급두뇌를 이민으로 많이 받아들인다면 좋은 부국강병책을 삼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어떤 나라에서 떠난다면 그 나라는 서서히 망해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그 나라가 나빠서 사람들이 떠나는 것인데 사람들이 빠져 나감으로써 그 나라가 더욱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근년에 들어 북한을 탈출하는 탈북자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995년부터 심화된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속출하면서 먹고 살기위한 탈북러시가 줄을 이었고 2000년부터 남북관계 개선으로 식량사정이 어느정도 완화되었으나 지금도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의 수는 약 9,000명 정도라고 하며 아직도 중국등지에 숨어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숫자가 5만내지 1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북한은 국졍지대에서 탈북을 저지하는 한편 중국에서 탈북자를 체포송환하여 중형에 처하고 심지어는 공개처형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보는 부여의 사정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런 탈북자에 대해 한국은 너무나 냉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반 탈북자는 고사하고 엄연한 한국인과 한국인의 가족에 대해서도 보호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사실이 최근 밝혀져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지난 10월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가족 9명이 중국 선양의 한국 총영사관에 한국행을 요청했으나 영사관측이 제대로 보호하지 않아 중국 공관에 체포되어 북한에 송환된 사건이 그 예이다. 이 선양 총영사관은 지난 연말 납북 어부 최욱일씨가 탈북하여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불친절하게 대응했었다고 한다. 지난 1998년에는 국군포로 장무환씨가 탈북하여 주중대사관에 전화로 “도와줄 수 있어요?”하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여직
원이 “아, 없어요.”라고 매몰차게 거절한 「대사관녀」 사건도 있었다. 정부는 정부대로 남북관계만 생각해서 탈북자를 골치거리로 여기고 관리들은 관리들대로 귀찮은 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북을 탈출한 사람들이 갈 곳이 어디겠는가. 한국이 받아주지 않는다면 중국을 떠돌다가 북송되어 처형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인도주의를 내세우는 한국이 동족을 이렇게 대한다면 더 이상 민족이니 통일이니 하는 소리는 꺼내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그 뿐아니라 만약 남북통일이 이루어진다면 탈북자들의 역할은 어느 누구보다도 커지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모든 시스템에 익숙해진 탈북자들은 앞으로 통일된 북한사회를 재건하는데 중심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시대에 해외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해방후 한국사회의 구심점이 된 것과 흡사한 경우이다.
그러므로 탈북자는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탈북자 대책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뿐만 아니라 민족문제의 해결책이란 점에서도 한국정부의 최우선 과제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북한에서 예기치 못한 돌발사태가 발생할 경우 더 큰 탈북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제는 탈북자대책을 민간단체의 활동에만 맡기기 보다는 정부에서 전담기구와 전문인원, 예산을 확보하여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고 탈북자외교를 강화해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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