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처음 만나 결혼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두 아이가 훌륭한 직장인이 되어 당신과 나 모르게 우리 두 사람의 은혼식을 어떻게 할까 의논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깜짝 놀라 할 말을 잊어 버렸다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은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왜 몰랐단 말이요. 아마도 당신의 현재 모습이 결혼할 당시 처녀 때와 같이 변함없이 아름다워 내가 세월 가는 것을 잊었나 봅니다. 세월이 유수(流水)라 했는데 2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당신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려. 여전히 당신은 나의 아름다운 공주요, 우리 가정의 왕비랍니다.
25년 전 그러니까 1981년 12월 20일 우리의 첫 만남이 맞선이라는 것을 통하여 서로 상면하게 되었고 두 번째 만남을 갖게 되었을 때 당신과 함께 식사하면서 당신의 먹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그때 내가 결혼을 결심한 것 같아요. 세 번째 만남을 당신 집에서 만나자고 하니 당신은 이상한 마음이 든다고 하면서도 기꺼이 허락하고 장인어른 앞에 따님과 결혼하고 싶다며 절하는 나의 모습에 살짝 토라진 듯한 당신을 옆 눈으로 볼 수 있었소. 그날 저녁 당신을 달래며 정식으로 청혼하는 나에게 그만 당신은 모든 것을 내게 의지 하겠다고 약속 했지요. 나보다 더 급한 우리 어머니는 다음날 1월 18일로 날을 받아 왔지요. 당신의 가족들은 날짜가 보름밖에 없는데 어떻게 결혼준비를 할 수가 있느냐며 날짜를 다시 정하자고 하였지만 나는 급하고 급한 마음에 양보를 하지 않았지요.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그리도 급하게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을 가서야 이제 당신을 나의 평생 반려자로 만들었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 쉴 수가 있었답니다. 이제부터 당신과 나 두 사람 힘을 합쳐 세상을 마음껏 뛰어보자고 첫날밤에 약속 했는데 벌써 25년이란 세월이 지나 갔네요.
함께 살아오는 동안 힘들었던 일, 좋아 했던 일, 당신과 함께 있어서 웃을 수 있었던 일들이 갑자기 주마등처럼 새록새록 생각나는군요.
첫 아들을 낳고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로 집으로 돌아오던 당신, 복에 복을 더하듯이 곧바로 둘째아이를 가지고 땡 잡은 사람처럼 기뻐하면서도 부끄러워하던 당신,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삶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듯이 우리의 삶도 행복한 날보다 힘들었던 날이 더 많은 것 같아요.
25년을 살아오면서 언제나 그랬듯이 당신에게 짐만 짊어지게 하였건만 당신은 힘들다는 내색 한마디 없이 묵묵히 내 곁에서 나를 도와주었지요. 어려운 일을 결정 할 때도 당신은 저 만치 멀리서 당신의 의견을 감추고 나의 올바른 결정을 기다려 주었던 것을 나는 알고 있었소. 행여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어쩌나 조바심을 내며 기다려 주던 당신. 그래도 꼬집을 때는 정말 아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곡을 찌르는 의견을 내게 제시하던 당신, 정말 그때는 당신이 피도 눈물도 없는 야박한 사람인 것 같아 많이 야속 했답니다.
그러나 당신과 결혼하고 한 번도 우리의 결혼을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이제 처음으로 지면을 통해 당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소이다.
왜 내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놀림을 당하면서도 당신에게 사랑한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내가 하면 당신이 꼭 나도 사랑해요 라는 말을 해주니 그 말이 듣고 싶어서라도 나는 당신의 전화를 기다리고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곤 한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서 마누라 자랑만 하는 팔푼이 라는 놀림을 많이 당하고 있지만 나는 당신이 있어 늘 행복하답니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25년이라는데 그 정도면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정말 눈 깜짝 할 정도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의 금혼식까지는 앞으로 25년이 남았지만 지나온 25년 세월을 보면 또 눈 깜짝 할 정도로 지나가 버리겠지만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왔듯이 남은 세월 그렇게 살아간다면 당신과 나 최소한 삶에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당신의 자랑을 하자들면 만리장성을 쌓아도 모자라는데 앞으로 살아가면서 지금처럼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며 당신은 나를, 나는 당신을 의지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황혼이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하오. 그리고 우리의 재산인 두 아이가 결혼을 해서 그 열매인 손자와 손녀를 품에 안고 은혼의 향기를 맡으며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남은 인생을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시간까지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해요. 그리고 함께 살아줘서 고마워요.”
박용수 <저먼타운,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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