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행사에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아들인 현 대통령이 함께 참석했다고 하자. 두 대통령을 지칭할 때 ‘President Bushes’라고 해야 할까,‘Presidents Bush’라고 해야 할까?
답을 모른다고 빈곤한 영어실력을 한탄할 필요는 없다. 미국의 최고 엘리트들도 헷갈린 문제이다. 6년전 현 부시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전현직 대통령이 한 집안 식구인 특수상황이 발생하자 부시 측근들이 고민하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때 한 친지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어놓았다. 41대 대통령인 아버지 부시는 ‘41’, 43대 대통령인 아들 부시는 ‘43’으로 부르는 것이다. “41 is here”하는 식이다. 그래서 두 사람을 함께 지칭할 때는 ‘84’가 된다. 바바라 부시여사 회고록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2008년 대선을 앞두고‘한 집안 두 대통령’의 속편이 가능할지가 큰 관심사이다.‘President Clintons’나‘Presidents Clinton’혹은 ‘42’와 ‘44’의 탄생 여부이다. 힐러리 클린턴 연방상원 의원이 과연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될지가 수년전 부터 관심거리이다.
힐러리가 구비한 조건들은 보면 사실 대통령이 못되는 게 이상하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나보다 나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추켜세울 정도로 탁월한 업무능력, 막강한 자금 동원력과 조직력, “이제는 미국에도 여성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되었다”는 사회적 분위기, 게다가 부시행정부와 공화당에게서 등 돌린 민심 까지 - 이보다 나은 조건을 가진 후보는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힐러리를 백악관으로’식의 대세몰이는 좀처럼 형성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진보적 성향의 비영리 시사잡지 마더 존스가 지난 주 이 문제를 심층 보도했다. 원인은 한마디로 너무 잘난 여자에 대한 반감이라는 것이다.
여권운동으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남성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은 ‘어떤 두려움’을 힐러리가 자극한다는 분석이다. 아내가 남편 울타리 안에서 행복을 찾지 않고 관심이 커리어로만 쏠려 돈도 더 벌고, 지위도 더 높아져서 자신을 위축시키면 어쩌나 하는 남성들의 무의식적 두려움이다.
여성의 ‘능력’과 관련, 우리 사회의 시각은 아직 이중적이다. 여성이 장관, 장군, 대법관, CEO 등 어느 분야건 능력만 있으면 진출하는 이 시대에 여성들은 가끔 정반대의 경험을 한다. 능력으로 대접받는 데 익숙하다가 어느 순간 바로 그 능력이 부메랑이 되어 뒤통수를 치는 경험이다.
힐러리의 백악관 초기 생활이 좋은 예이다. 처음 클린턴 부부는 자신만만했다. 퍼스트레이디가 기존의 수동적 역할에서 벗어나 능력을 발휘하면 그만큼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고 국민들도 환영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힐러리가 전국의 의료시스템을 개혁하겠다고 나서자 국민들은 냉소적이었다.
변호사로 활동할 때는 찬사를 받던 그의 능력이 퍼스트레이디가 되니 반감의 근거가 되었다. 대통령의 부인이면 부인답게 조용히 뒤에서 내조만 하라는 것이 국민들의 정서였다.
‘잘난 여성’에 대한 이중적 시각은 가족 관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드러난다. 잘난 딸은 자랑스럽지만, 잘난 며느리는 거북하고, 잘난 아내도 불편하다.
한인 2세 여성검사를 만났을 때였다. 결혼을 하고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고 본래의 성을 그대로 쓴다고 했다. 친정부모가 성을 바꾸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부모에게 검사가 된 잘난 딸은 너무 자랑스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면 변호사, 의사, 박사 등 능력 있는 여성들이 신붓감으로 인기가 있느냐 하면 꼭 그런 게 아니다. 미국에서 자란 1.5세, 2세 남성중에도 “잘난 여성은 부담스럽다”며 기피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잘난 여성’은 이기적이고 잘난 체하고 남을 무시한다는 등의 편견이 해소되지 않은 결과이다.
여성의 능력에 대해서 가장 열린 시각을 가진 사회는 스칸디나비아 3국이다. 여성들이 각계의 수장으로 포진하면서 전쟁이나 폭력적 의사 결정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여성의 능력을 보는 시각이 이젠 좀 성숙해질 때도 되었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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