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교육가)
정초는 좋은 계절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덕담을 주고 받는 좋은 계절이다. 상대편이 잘 되기를 비는 인사말이 덕담이니 말 중에서도 좋은 말이다. 영어로 흔히 들을 수 있는 ‘해피 뉴 이어’와 달리 개성이 있고 정감이 흐른다. 그런데 이 덕담 중에 ‘새해 부자 되십시오’라는 말이 눈에 띈다.
‘부자’는 살림이 넉넉한 사람을 뜻하니까, 부자가 되라는 말은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되라는 기원이니 반가운 인사말이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고 큰 의문이 생긴다. 그것은 세상이 경제 중심으로 흐르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하는 점이다. 현재는 세계도, 나라도, 개인도 경제를 지나치게 외치는 형편이 되었다. 이토록 경제가 만능일까.
행복의 조건이 시대와 더불어 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재물이 넉넉함’이 빠지는 일은 거의 없다. 재물이 넉넉해야 하는 것은 필수 조건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차례’이다. 이것을 몇 번째로 생각하는 가에 따라서 생활의 양상이 달라진다.재물이 풍족하면 생활이 편리하다. 재물이 넉넉하면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재물이 넉넉하면 때로는 사람의 마음조차 바꿀 수 있다. 때로는 생명도 연장시킬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재물이 넉넉함은 만능 선수이고 모든 일의 해결사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결코 ‘행복’ 자체가 되거나, 첫째 조건은 될 수 없다. 재물은 결코 생명이나 사랑은 아니다. 생명을 연장할 수 있더라도 끝없는 생명력이 아니고, 사랑을 담을 수 있더라도 따뜻한 마음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그러니까 재물은 어디까지나 어떤 표현이나 방법으로 이용되어 어느 정도 염원을 변질시킬 수 있지만, 그 본질을 완전히 바꾸는 힘은 없다.
아무도 내 자신에게 ‘부자가 되세요’라는 인사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쯤은 듣고 싶다. 그 인사말을 듣고 반문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부자요?’ 만일 ‘부자’라는 말에 구체적인 설명이 따르면 그것은 정다운, 고마운, 아름다운 덕담이 되는 것이다. 바로 그 말이 듣고 싶다.예를 들면 자녀 갖기를 갈망하는 이에게 ‘아기 부자 되세요’, 가게 갖기를 원하는 이에게 ‘가게 부자가 ~’, 책 출판을 계획하는 이에게 ‘책 부자가 ~’, 친구가 적은 이에게 ‘친구 부자가 ~’, 시간이 없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이에게 ‘시간 부자가 ~’, 자기 집 마련을 꿈꾸는 이에게 ‘집 부자가 ~’, 학교 경영자에게 ‘학생 부자가 ~’라고 한다면 부자의 내용이 구체성을 띠게 되며 정다운 격려가 되지 않겠는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행복의 조건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그 내용이 개성적이고 구체성을 가지게 되는 것을 좋은 경향이라고 본다. 그 때문에 주고 받는 덕담 역시 개성적이고 구체성을 띠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해피 뉴 이어’는 새해 인사법의 도장이고, 카드에 사용되는 일반화된 말이고, 누구에게나 맞는 물맛과 같은 덕담이다. 그래서 널리 활용되는 장점이 있어 애용되는 것이다.여기에 덧붙여서 한국적이고 개성적인 덕담을 교환한다면 비단 위에 꽃을 보태는 뜻의 ‘금상첨화’격이 될 것이다.
‘부자가 되세요’의 덕담에는 반드시 ‘어떤’ 부자가 되기 바란다고 분명히 말한다면 마음이 가득 담긴 덕담이 될 줄 안다. 그리고 덕담의 교환을 정초에 한정하지 않고, 일년 내내 정을 나누는 교량으로 삼는다면 더 좋겠다.미국 어린이들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세 가지 말이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 말들이 ‘고맙습니다’ ‘실례합니다’ ‘미안합니다’임을 그들에게 알리고, 일상 생활에서 반복하여 이를 실천에 옮기도록 교육 받고 있다. 유치원에서 배운 이 말들을 어른들이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에서 흔히 듣게 되는 말들이 된 것이다. 인사말이란 이처럼 가족, 친구, 이웃, 지역사회, 나라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윤활유인 것이다.
새해의 덕담 나누기가 사소한 일이 아니며, 서로 서로 우정을 나누고 새해를 명랑하게 하는 연결고리가 됨은 물론이고 한국문화 전승의 길이 되는 것 또한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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