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목회학박사)
“폭설이다. 앞이 안 보인다. 자동차엔 개스가 이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 그래, 차라리 그곳에서 떠나지를 말았어야 하는 건데...이미 지나간 일이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자신만 믿었던 것이 너무나 경솔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폭설에 갇히면 죽는다. 무조건 자동차가 가는 곳까지, 개스가 떨어질 때까지 몰아 인가나 동네를 찾을 수밖에 없다. 진퇴양난이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들어선 것 자체가 바보 같은 판단의 실수였다. 조금 더 빨리 가려고 지름길을 택한 것도 실수. 고속도로가 폭설로 자동차 운행이 중단됐다. 고속도로 주변에 늘어선 차량들.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 있는 동네에 들어가 밤을 지낸 다음 날이 밝은 후 떠나라 했다.
그러나 하루라도 빨리 가야 하는 일정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지도를 보니 지름길인 국도가 있었다. 국도는 차량통행을 금지 하지 않고 있었다. 무조건 내달렸다.
몇 시간이나 갔을까. 어둠은 칠 흙 같이 드리우고 국도는 길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렵게 폭설은 쏟아진다. 자동차 앞 5미터 이상은 도저히 보이질 않는다. 지나가는 차량 하나 없다.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이러다가 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것 아닐까. 갇히는 것 까지는 좋다. 얼음덩어리로 발견되어지는 건 아닐까.”
오기가 생긴다. 그러나 그 오기도 잠시 뿐. 저절로 절대자를 향한 간구가 흘러나온다. 얼마나 헤매었나. 그래도 동네가 나타나질 않는다. 돌아갈 수도 없다. 눈은 점점 쌓여간다. 4기통의 작은 자동차는 주인과 함께 사경을 헤맨다. 불행 중 다행은 바람이 폭풍처럼 불었다.
폭풍 같은 바람으로 인해 아스팔트 국도위의 눈들이 쓸려나가며 길은 조금씩 트였다. 시속 5마일 정도의 간격으로 운전은 계속할 수 있었다. 개스 계기가 밑 둥에 걸려 있다. 바닥이 난 것 같다.
꼭 10년 전 일이다. 1996년 4월 뉴욕에서부터 캘리포니아 L.A. 클레어몬트로 가는 여정. 혼자서 크로스컨트리를 하기는 세 번째. 1만 피트가 넘는 4월의 록키 마운틴. 이 산맥만 넘으면 된다. 그러면 길은 평탄하다. 마지막 박사 논문을 통과하기 위한 정리를 위해 클레어몬트신학교로 향하던 발길. 주임교수가 논문 패스의 결정이 될 것 같다는 가능성을 알려와 직장엔 휴직계를 내고 무작정 자동차로 다급히 길을 떠난 것.
얼마나 헤맸을까. 내 정신이 아니다. 저 멀리서 불빛이 들어왔다. 집이다. “휴, 이제 살았구나! 감사합니다” 저절로 감사가 나왔다. 제일 먼저 나타난 집에 무작정 들어갔다. 눈이 허리까지 올라온다. “길을 잃었습니다. 어디 가까운 곳에 동네가 있는 곳을 알려 주시지요” 다행히도 그 집에서 얼마 안 가 동네가 나타났다. 개스부터 넣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한 한인 젊은이(제임스 김)가 가족을 살리려 폭설에 갇힌 자동차를 빠져나와 산 속을 헤매다 결국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지난4일 실종 9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서른 살 된 아내 캐이티와 네 살 된 딸 피널롭과 7개월 된 딸 사빈. 자동차가 산악에서 폭설로 갇히자 7일 동안 이들은 비상식량과 아빠가 따온 나무열매로 연명하며 구조를 기다렸다.
그러나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등, 구조될 기미가 전혀 안 보이자, 아빠(35)는 가족들을 살려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자동차를 벗어 나왔다. 허나 그는 자동차로 되돌아오지 못한 채 결국 가족이 구조된 지 사흘 후 실종 12일 만에 차디찬 사체로 발견됐다. 이들은 지난 달 17일 추수감사절 연휴를 틈타 스테이션왜곤을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25일 포트랜드의 친구를 만난 뒤 골드비치로 향하던 중 42번 도로를 놓쳤다. 그리고 시스키유 국립공원의 빠른 길로 들어섰다 비가오자 다음날 떠나기로 했으나 비가 밤사이 6피트나 되는 폭설로 변해 갇혀졌다.
겨울. 산행을 하는 사람들도 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모두 조심해야 할 계절. 전문가들 말에 의하면 자동차 여행 시 폭설이 내려 고립될 때는 절대로 차 주변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상책이라 한다. 비상음식과 비상약품 및 두꺼운 담요와 재킷도 준비해야 하는 것은 필
수. 날씨를 체크하고 스노체인을 준비해야 한다. 눈에 갇혔을 때 우산 등 밝은 색 물건에 ‘SOS’ 사인을 표시해 눈에 뛰도록 하며 자동차에 개스가 남아 있을 경우 1시간에 10분 정도 히터를 틀어 차내 온도를 유지해 몸의 체온을 유지케 해야 한다고. 제임스의 부인 케이티는 타이어에 불을 붙여 온기를 유지, 두 딸과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폭설 속에 갇혀 길을 헤매던 ‘아찔했던’ 10년 전의 일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자연환경은 우리를 감싸줄 때도 있지만, 우리의 생명을 가차 없이 거두어 갈 때도 있다. 가족을 살리려다 먼저 간 한 아빠의 죽음, 너무나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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