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한 가족의 이야기가 지난 한주 우리를 사로잡았다. 그 가족을 위해 애를 끓이고, 기도하고, 환호하고, 그리고는 다시 초조한 기다림과 마침내 드러난 비극적 종말을 지켜보며 한주를 보냈다.
샌프란시스코의 제임스 김씨 가족 실종 사건이 가슴 저미는 슬픔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여행 중 길을 잃어 오리건의 험준한 산속에 고립되었던 이들 가족은 폭설로 오도가도 못하다가 부인과 두 딸은 9일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되고, 구조 요청하러 혼자 나섰던 김씨는 그 이틀 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가족과 친지들만의 관심사였던 이들 가족의 실종과 구조과정은 그가 편집장으로 일하던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알려지고, 네티즌들의 폭발적 반응에 주류 미디어들이 동참하면서 지역과 국경을 넘는 관심사가 되었다. 웹사이트를 통해 그 단란한 가족을 만나고, 그 가족이 내 가족처럼 친근해지면서 우리 모두에게 김씨는 더 이상 남이 아니었다. 평소 그를 알던 그의 삶의 이웃들, 이번 사건으로 그를 알게 된 수많은 마음의 이웃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서 그가 어느 눈 덮인 산모퉁이에서 지친 상태로, 그러나 장난기 어린 웃는 모습으로 불쑥 나타나기를 애태우며 기다렸다.
결과는 반대였다. 그는 혹한의 계곡 물에 반듯이 누워서 우리 곁을 떠났다.
엘레노어 루즈벨트 여사는 여성을 티백에 비유했다. 홍차의 맛은 티백을 뜨거운 물에 넣어봐야 알 수 있듯이 여성도 역경에 처해봐야 얼마나 강인한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이 비유를 굳이 여성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람은 어려움에 처할 때 진면목이 드러난다. 여건이 좋을 때는 누구나 좋은 사람이지만 곤경에 처해 중압감에 짓눌릴 때 보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김씨 부부는 사랑과 용기로 아름다웠다. 추위와 배고픔, 공포와 절망감에 시달리면서도 캠핑 온 듯 밝은 분위기로 아이들을 건강하게 돌봤고, 더 이상 앉아서 구조를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될 때 김씨는 목숨을 담보로 모험 길에 나섰다. 가족들을 위해 마지막 모닥불을 지핀 후 그는 며칠씩 굶은 몸으로, 혹한에 맞서기에는 너무도 허술한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오로지 가족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극한의 사투를 벌였지만 어느 순간 그는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대신 그가 몸을 움직여 눈밭에 찍어놓은 발자국이 헬기의 눈에 띄어 가족 구출의 단초가 되었다.
타 존재를 위해 나를 내어놓는 희생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위대한 정신이 있어서 이기심과 욕심으로 눈멀기 쉬운 인류에게 등불이 되어왔다.
해양국가인 영국에는 ‘버큰헤이드의 전통’이라는 고귀한 전통이 있다. 1852년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이드 호는 사병과 그 가족들을 태우고 남아프리카로 항해하던 중 암초에 부딪쳐 두 동강이 났다. 구조선은 60인승 3척뿐인데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은 630명. 그중 130명은 아녀자들이었다.
풍랑은 점점 심해지고 죽음의 공포가 모두를 덮칠 때 사령관 시드니 세튼 대령은 병사들에게 전원 집합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은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갑판 위에서 열병식을 하듯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 사이 아녀자들은 구명정에 태워졌다.
배는 침몰하고 그때까지 의연하게 서있던 병사들은 가족들이 애타게 지켜보는 가운데 같이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뒤늦게 구조선이 나타났지만 이미 사령관을 포함, 436명이 수장된 후였다.
배가 해상에서 조난될 경우, 어린이와 여자들을 먼저 구조하는 아름다운 전통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전까지는 저마다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혼란으로 필요이상으로 희생되었지만 이 전통으로 수많은 인명을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유명한 타이태닉 호가 조난당했을 때도 전통은 이어졌다.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기이다. 처형의 장치인 십자가가 사랑의 상징이 된 것은 그 위에서 일어난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 때문이었다. 가족에 대한 가없는 사랑으로 죽음을 맞은 제임스 김씨 사건은 사랑의 사건으로 기억되어져야 할 것이다. 짧았지만,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했던, 사랑으로 아름다웠던 그의 삶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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