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나는 방학이 끝나 서울로 올라가기 전날 밤은 대단히 바빴다. 고향친구들과 밖에 싸돌아다니다가 섭섭한 마음으로 집에 밤늦게 들어오면 어머니는 그때까지 내 짐을 꾸리고 계셨다. 짐이라면 딱 질색이었던 나는 어린 마음에 불만스럽게 쳐다보았지만 어머니는 보낼 감 하나, 밤 하나를 그 많은 것 중에서 고르고 계셨다. “서울에도 좋은 게 많은데 돈으로 주면 되지…”하면서 나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사실 짐을 들고 상경하는 것이 그 당시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오리정도 걸어서 버스 정거장에 가야하고, 기다렸다가 짐을 가지고 버스를 타고. 버스를 내려 기차역까지 가야하고, 또 기다렸다 짐들을 들고 기차를 타야하고, 어쨌든 서울역에 내리면 밤이다. 서울에서 또 버스를… 이렇게 어렵게 가지고 간 우리 집 감이나 밤을 서울에 풀어 놓으면 맛은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동대문 시장을 따라가서 그 곳에 있는 감이나 밤을 보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가장 좋은 감이나 밤은 서울에 다 모인 것 같았다. 역시 서울은 ‘부자’들이 사는 곳이었다.
지난 70년 초 대학에 입학해 미국문화센터에 출입할 때 그 곳에서 만난 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크리스탈 제품을 물어 봤다. 그 당시 두산이 크리스탈 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때인데 그들 얘기가 뉴욕에서 한국 크리스탈이 좋아서 한국에 와서 크리스탈 제품을 사려고 했더니 미국보다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그들의 질문을 의아하게 여겼던 기억이 난다.
크리스탈 제품이 좋은 것과 질이 떨어지는 두 종류가 있고, 좋은 크리스탈은 10달러, 질이 떨어지는 크리스탈은 5달러라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크리스탈을 뉴욕으로 수송하는데는 1달러가 든다고 해 보자(질에 관계없이). 그러면 한국에서 좋은 크리스탈 10달러, 질이 떨어지는 것은 5달러 하는 것이 뉴욕에 수출된 후에는 좋은 크리스탈이 11달러, 질이 떨어지는 것이 6달러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 좋은 크리스탈 값은 질이 떨어지는 크리스탈 값의 두배이다.
반면 뉴욕에서는 좋은 크리스탈 가격이 질이 떨어지는 크리스탈 가격의 1.67배에 불과하다. 서울보다는 뉴욕에서 좋은 크리스탈 가격이 질이 떨어지는 크리스탈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진다. 따라서 뉴요커들이 서울사람들 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진 좋은 크리스탈을 질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많이 살 것이다. 뉴욕 상점들은 좋은 크리스탈을 서울 상점보다 더 많이 캐리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좋은 크리스탈이나 질이 떨어지는 것이나 운반하는 데 같은 비용이 드는데 이왕이면 좋은 크리스탈을 가져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좋은 사과는 워싱턴 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뉴욕에 있다’ 나, ‘최고급 가죽제품은 이태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뉴욕이나 로스 엔젤레스에 있다’, 혹은 ‘이태리에서 가죽제품을 살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왜냐하면 이태리에는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가죽제품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도 흔히 듣는 말들이다.
‘좋은 쌀은 다 서울에 있다’도 서울 사람들이 부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산지에서 서울로 쌀을 수송하는 경우 서울에서는 좋은 쌀의 가격이 질이 떨어지는 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지보다 싸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좋은 쌀들이 서울로 올라오는 이유이다. 비슷하게 한국의 좋은 감과 밤도 산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울 동대문 시장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어머니께서야 자식 위하는 심정으로, 철없었던 나는 짐을 들고 가기 귀찮아(즉 ‘운송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부렸던 투정이었지만 합리적(?) 행동인 셈이었다.
반면 우리는 ‘좋은 랍스터를 먹으려면 메인 주로 가라’는 이야기를 흔히 한다. 신선도 있는 산물을 사려면 산지로 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왕 메인까지 갔으면 좋은 랍스터를 먹어야 할 것이다. 돈을 들여 메인 주까지 가게 되면 좋은 랍스터의 상대 가격이 질이 떨어지는 랍스터에 비해 파격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귀한 영광 굴비를 사기 위하여 일부러 전남 영광까지 갔으면 최고급 영광 굴비를 사 올 것이다. 관광객들이 상대적으로 고급 제품을 많이 쇼핑하는 것 역시 합리적 행동인 셈이다.
<정요진>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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