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아이였다. 너무나 조용해서, 손님이 들락날락할 때마다 띵-똥- 울리는 차임벨이 없었다면 언제 들어왔다 언제 나갔는지도 모를 아이였다. 눈이 크고 동그스름한 얼굴이 같은 나이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더 앳되어 보였다.
처음 그 아이가 마켓에 들어 왔을 때 꼭 나만한 키에 멜빵을 매고 있었는데 그 멜빵을 보는 순간 가위로 싹뚝- 잘라주고 싶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오척 단신인 이유는 어린 시절 내내 매고있던 멜빵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었다. 저 아이도 나처럼 멜빵에 눌려 키가 크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들자 어떤 친밀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날부터 나는 그 아이가 오면 키가 좀 자랐는지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그 아이는 멜빵의 무게와 구속을 전혀 못 느끼는지 하루가 다르게 마구 커가는 것이었다. 그 아이의 키크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급기야는 고개를 90도로 꺾어 그 아이를 쳐다보아야 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아이의 옷차림이나 행동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멜빵을 풀어서 손목에 칭칭 감고 헐렁한 바지는 엉덩이 저 아래에다 걸쳐 입고는 사내녀석들과 계집아이들을 한 떼거리로 몰고 와서는 마켓 안을 휘집고 다녔다.
그날 밤 늦게 그 아이가 대여섯 명의 제 또래들과 마켓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서는 순간 아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켓에서 단련된 나의 직감은 무섭다. 그때 나는 한 손님과 이야기 중이었는데 아이들이 몰려 들어오는 순간 나는 백개의 눈이 달린 거인이 되어 녀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네 명이 그 아이 앞으로 몰려들고 녀석이 무엇인가를 바지 속으로 집어넣는 순간, 나는 벼락치듯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바지 속의 물건을 냅다 낚아챘다.
한번만 더 이딴 짓을 하면 손목아지를 분질러 버리겠다고, 너같은 놈은 마켓을, 아니 지구를 떠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흥분한 순간부터 나는 순 우리말로 떠들어댔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멍- 해졌다.)
손님도 가고 아이들도 모두 가고난 뒤 나는 흥분된 마음을 수그러트리며 그 아이가 사라진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왜 나는 필요이상으로 그 아이에게 거칠게 대했을까. 그럴 마음은 전혀 아니었는데.
다음날 나는 하루종일 아이를 기다렸다. 그러나 오후가 다 지나도록 아이는 오지 않았다. 아이가 오지 않자 나는 더 초조해지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저녁 한가한 무렵, 나는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 아이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It,s me. It,s me.” 그 아이가 나보다 더 떨고 있는 것을 눈치채는 순간 나는 아주 여유있게 아이더러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아이는 쭈빗쭈빗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아이의 한 손이 호주머니 속에서 무엇인가를 꽉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나의 온몸이 긴장으로 저려오기 시작했다. 손안에 들어오는 아주 작은 총. 단 한 발이 장전되어있는. 총 소리도 크지 않은. 10대의 어린 갱들이 갖고 다닌다는 그 총.
그 아이가 손을 꺼내는 순간 나는 황야의 무법자 클린트 이스트우드 보다 더 빠르게 캔디 진열대 뒤로 몸을 굴렸다. 아이가 손바닥을 활짝 펴 보였다. 하얀 알약 두 개가 보였다.
아이는 자기가 지금 신경쇠약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으며 어젯밤에는 한 잠도 못 잤다고, 그래서 학교에도 못 갔다고,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나는 옷에 달라붙은 먼지를 대충 털어내고는 의젓하게 아이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괜찮다고, 언제든지 다시 와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아이가 겁먹은 눈으로 혹시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는지를 물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의 등을 도닥거렸다.
아이가 1달러를 꺼내더니 캔디를 사고 싶다고 했다. 이제 막 14살이 된 안토니가 허리를 굽혀 캔디를 고르는 동안 나는 멜빵끈에서 해방되어 키만 훌쩍 커버린 아이가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지나가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힘내, 안토니, 그깟 일로 떨긴, 쨔아식-.”
이윤홍 시인·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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