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미국과 비교된다. 한국의 교육제도가, 시민생활이, 그리고 정치상황이 그렇다. 대체로 이런 식이다. 미국은 이렇고 저런데 한국은 그만 못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중간선거가 공화당의 대패로 끝났다. 부시 대통령이 성명을 냈다.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인 것이다. 동시에 국방장관을 경질했다. 선거에 나타난 여론을 반영한 조치다.
이 부시의 태도가 노무현식 고집과 비교됐다. 부시는 승복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반면 지난해 이후 각종 재·보선에서 40 대 0의 참패를 기록했으면서도 여전히 딴소리를 하는 한국의 대통령. 그는 민심을 외면하고 있다는 질타다.
그 국민에 그 지도자라고 했나. 한 나라의 지도자란 결코 일반 국민의 수준과 동떨어진 인물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을 부시와 비교한다는 게 무리다. 미국과 한국의 정치 토양은 애당초 다르다. 민주주의 성숙도에도 큰 차이가 있다.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갑자기 어딘가 간질간질하다. 그래서인가. 바로 튀어나오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한국은 분명히 미국이 아니다. 그렇다고 쳐도 지지율 10%를 맴도는 대통령이 어쩌면 저처럼 오기를 부릴 수 있는 것일까. 그 믿는 구석이 무엇일까.
조지 버나드 쇼. 장 폴 사르트르. 해롤드 라스키. 로망 롤랑…. 많이 듣던 이름들이다. 그 공통점은 무언인가. 20세기의 지성, 문화인…. 뭐를 같다 붙여도 어울린다.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하나 같이 스탈린을 찬양했다는 점이다.
“죽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사람이 없어지면 문제도 사라지는 것이니까.” 스탈린의 신조였다고 한다. 이 원칙에 충실했다. 그 결과 2,000만의 인명이 희생됐다. 이 반(反)인류의 죄악상은 보지 못했다. 안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스탈린 찬양에 열을 올렸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모택동 치하에서 희생된 인명은 7,000만 정도로 집계됐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사르트르는 파리의 아늑한 카페에 앉아 모택동 정권의 도덕성을 찬양했다.
거대한 악은 선에 가깝다. 고대 현인의 말이다. 바로 이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내재하고 있는 잔혹상은 보지 못하고 그 체제를 동경한 훗날의 좌파 지성인이라는 사람들의 착시현상을 향한 비웃음으로 들린다.
이들은 ‘쓸모 있는 바보들’로도 불린다. 진보를 외친다. 반미를 주창한다. 그러면서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된 학살의 만행에는 침묵한다. 아니, 음으로 양으로 그 체제를 돕는다.
앞서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 그 믿는 구석은 무엇일까’-. 그 답의 실마리는 문화전쟁이란 단어에서 찾아지는 게 아닐까 싶다.
한국사회의 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80년대의 기억과 유산이다. 한 한국 내 논객의 진단이다. 광주사태의 상처와 함께 진보와 민중, 반미와 민족이라는 담론이 한국의 시대정신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문화 헤게모니는 좌파에게 넘어갔다. 교육계를 장악했다. 방송 미디어를 점령했다. 출판시장은 좌파 서적의 홍수를 이루고 있다. 문화계를, 문화 권력의 90% 이상을 이들이 차지한 것이다. ‘쓸모 있는 바보들’이 때를 만난 것이다.
수백만을 굶겨 죽인 김정일 정권의 범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끔직한 핵 재앙을 위협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그 북한 체제의 실체를 실감하지 못한다. 악을 악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아니, 그 코드에 맞추지 못해 스스로 안달이다.
북의 핵실험을 규탄하면 전쟁세력으로 몰릴 지경이다. 동시에 386 간첩사건은 흐지부지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보통의 한국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모른다. 문화를 장악한 세력의 언어 헤게모니에 알게 모르게 세뇌된 결과다.
왜 초조해하지 않는가. 문화전쟁에서 이미 승리를 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흐름은 여전히 80년대의 시대정신으로 본다. 진보와 좌파가 여전히 모든 것의 기본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한두 차례의 선거 패배는 대세에 지장이 안 된다는 판단이고, 문화전쟁 승리의 여세를 몰아 오히려 정권 재창출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맞는 지적일까. 무리수에 무리수를 두어가며 KBS 사장을 연임시키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설이 꼬리를 문다. 내년 대선 전략차원에서 기획하고 있다는 거다.
아무래도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또 평화세력이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꾸며나가는 인상이다. 국민의 여론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오연한 자세로.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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