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하원 장악’‘럼스펠드 경질’‘의회 민주당 손에’- 8일, 9일, 10일 LA타임스의 1면 전단 제목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 다시 말하면 공화당 정권에서 ‘민심이 떠났다’는 말이 된다. 사람들의 마음이 떠나면 정권이 바뀌는 매직 - 민주주의의 매력이다.
“잘못 하다간 우리 생애에 민주당이 집권하는 걸 영영 못 보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그동안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 없지 않았다. 물론 과장 섞인 농담이지만 행정부, 의회를 12년이나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 정권이 철옹성처럼 버틸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부시 정부가 잘 하고 있다는 평가가 아니었다. 이라크 전쟁이 잘못된 전쟁인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고, 부패와 섹스 스캔들로 공화당 이미지는 만신창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는 공화당이 이기면 어쩌나 하는 우려였다. 선거는 선거 나름의 메카니즘을 갖고, 그 메카니즘을 귀신처럼 잘 다루는 칼 로브가 걸리는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 정치고문인 로브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요리하는 데 천재적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어떤 유권자들을 표적으로, 어떤 이슈를 들고나오면 표가 쏟아지는 지를 정확히 알아낸다는 것이다.
지난 몇 번의 선거에서 동성애자 결혼문제, 낙태문제가 필요 이상으로 크게 대두된 것이 좋은 예. 그는 개인적으로 동성애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이슈들을 들이대면 백인 보수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펄펄 뛰면서 하나가 되어 몰표를 공화당에 던진다는 사실을 그는 잘 파악하고 있었다.
민심이 돌아선 것이 자명하던 이번 선거에도 그는 승리를 장담했었다. 선거가 전국의 표로 판가름난다면 모를까 각 지역구를 하나씩 이겨 나가면 되는 것이니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의 비장의 무기는 시골의 보수 백인들. 진보주의자들이 집권하면 동성애·낙태 판치고, 불법이민자들이 일자리 다 차지하며, 테러는 급증하고 … 결국 세상은 말세가 될 것이라는 식으로 그들의 편향된 고정관념을 자극하면 이번에도 표는 몰려올 것으로 그는 기대했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이유는 하나이다. 자만이다. 운동이든 운전이든 처음 배울 때는 거의 사고가 없다. 너무 겁이 나서 온 신경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자신이 붙으면 부주의해지기 시작하다가 한창 자신이 넘칠 때쯤 사고가 나곤 한다. 자신감까지는 괜찮은데 오만이 합쳐져 자만이 되면 문제이다.
우리 삶의 성공은 누군가의 마음을 얼마나 잘 얻어내느냐에 달려있다. 유권자들의 마음, 표심을 얻으려 온갖 전략을 짜는 정치가들만의 일이 아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고 밤잠을 설치고, 비즈니스 하는 사람은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고심을 한다. 직장인들은 상사의 마음·인정을 얻고 싶고, 상사는 부하직원들의 마음·존경을 얻고 싶어한다.
그런데 살면서 보면 영악하게 똑똑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귀신같이 잘 쟁취해 내는 사람들이 있다. 목적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누군가의 마음을 얻어내는 데 천부적인 재질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대개는 더 빨리 출세하고, 더 빨리 성공하는 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자만심이 종종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몇 년 전 한국의 4칸 시사만화에 이런 말이 있었다. 정부의 고위급 인사가 발표되고 난 직후 이를 꼬집는 만화였다 - “실력 있는 사람이 운 좋은 사람을 당할 수 없고, 운 좋은 사람은 아부 잘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
당시 최고 실력자로 꼽히던 인사가 이후 초라한 죄수복 차림으로 법정을 드나드는 모습을 보면서 ‘아부’로 얻는 성공의 한계를 실감했다. 실력·성실성 같은 본질보다는 아부라는 편법으로 초고속 승진을 하는 동안 자만이 찾아들고 자멸에 이른 케이스이다.
쉽게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아부하고, 겁주는 전략도 한계가 있다. 보수 기독교 표가 썰물처럼 공화당에서 빠져나간 것이 좋은 증거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다른 방도가 없다. 진실뿐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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