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센트럴커네티컷주립대 경제학교수)
지난 5월 서울에 있는 대학 동창회의 간사 일을 맡고 있는 윤가현 동문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금년이 우리가 대학을 졸업한지 제 50주년이 되니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 있는 동문들에게도 연락하여 뜻깊은 모임을 10월에 갖게 되었으니 꼭 오라는 부탁이었다.
공식 청첩장에는 “제 10회 졸업생 중 지금 살아있는 동문들의 참가를 바랍니다”라고 명시되어 있어 유머 감각도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끝에 친필로 “지금 만나지 못하면 앞으로는 더욱 다시 만나기가 힘든다”라는 주석을 달아주었기에 용기를 내어 가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 보내온 “졸업 50주년 기념사진 회원 명부”에는 살아있는 회원들의 최근 사진과 주소 등이 기록되어 있어 반가웠다. 하지만 명부의 4분의 1이 넘는 부분은 ‘앞서 가신 벗들’의 사진과 명단이 있어 어쩐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가 졸업한 것은 1956년이다. 모두가 일제시대에 초등학교를 거치고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제 2차대전의 와중이라 소위 보국대에 강제로 동원되어 공부는 제대로 못했었다. 배급해 주는 곡식으로 연명하기가 힘들었었다.이름은 강제로 일본식으로 고쳐야 했었고, 매일같이 신사참배, 그리고 교회에 나가는 것도 통제했었다. 일본 천황의 권위에 위배되는 찬송가는 모두 먹으로 지워버린 것을 사용했었다.한글과 민족의 말살정책으로 어찌다가 우리말을 했으면 일본선생들이 가차없이 벌을 주었다. 따라서 지금도 9-9나 물건을 세는 것은 일본말로 하는 세대이다.
해방 이후는 한글을 배우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었다. 그러나 물자의 부족으로 공책이나 연필을 구하기가 힘들었고 국산 연필이 있어도 잘 부러지는 시기였다.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었을 때 6.25를 겪었다. 대학 입학시험은 피난 중에 큰 도시에서 나누어 치루었으며 신입생은 모두 부산의 가교사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콩나물 강의실이었다.
휴전 이후 서울에 복구하고 나머지 2년을 공부했었다. 당시에는 볼포인트 펜이 없고 만년필을 사용했다. 겨울철에는 온방장치가 없어서 만년필 속에 있는 잉크가 얼었고, 입김으로 녹혀가면서 필기를 했었다. 시간강사로 오는 교수 한 명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의 특강을 매주
하였다. 중간에 휴식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점심을 굶고 그대로 강의실에 앉아있었다. 그 교수는 우리와 마주보고 앉아서 가지고 온 삶은 달걀을 톡톡 깨어 혼자서 맛있게 먹는 것을 군침을 흘리면서 지켜보기도 했었다.
기숙사에서는 방안에 있는 달걀이 얼어서 돌같이 된 시절이다. 대학생들의 제복은 모두가 미군 군복을 염색한 것이었다. 약 40명쯤 되는 남학생들의 신분증 사진은 양복과 넥타이가 예외없이 모두 동일하였다. 기숙사 학생 중 한 학생만이 양복과 넥타이가 있어서 사진관에 갈 때 모두가
빌려서 입고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넋두리가 아니다. 10회 졸업이기에 매년 고국에 있는 동문들은 10월 10일에 모였고 금년도 예외가 아니었다. 50년만에 만난 동문들이 모두가 고희를 넘긴지도 최소 3년이 되었고 건망증이 있었지만 과거의 삶은 잊지 않고 나눈 얘기들이다. 공통점은 백발이요, 대머리가 많았다.
하지만 얼굴의 주름살 만큼 고생과 수고를 하였고 장관에서 선생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로 고국의 경제발전에 최선을 다한 일꾼들이다. 동문 중 세 사람은 얼마 전 심장수술을 하고 다시 거동을 하게 된 상태였다. 다시 말해서 건강이 가장 으뜸가는 화제였다.
대부분 비상용으로 자동차 안에 빈 병을 가지고 다닌다는 당뇨병 환자들의 독백도 있었다. 고국에서 들은 새 단어에 노인을 ‘귀차니스트’라고 한다는데 어쩐지 ‘정신적 고려장’ 같은 인상을 받았다. 젊은이들이 미구에 자기들도 노인이 되는 것을 명심해 주었으면 좋겠다.
공교롭게도 50주년 기념 모임이 있는 하루 전에 북한에서는 핵무기를 실험한 때였다. 세계 제 2차대전과 일제 하의 탄압을 직접 체험했고 6.25를 겪으면서 온갖 고생을 감수하고 물심양면의 희생을 감수한 세대, 이제 또다시 이북의 사태로 불안이 가중된 것을 목격하였다.
50년만에 처음으로 동문들을 만났을 때 감회가 깊었다. 하지만 언제 다시 만나게 될런지? 다년간 동창회를 위해서 수고한 간사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출국하였다. 발걸음은 무거웠고 기약없는 이별이었다. 동문들의 특별한 건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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