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친구들과 오랜만에 LA 근교로 여행을 갔다왔다. 최근 몇년동안 나만을 위한 여행을 한 적이 없어서인지, 짧은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론 여행을 자주 하리라 굳게 다짐 할 만큼, 아니 생각 같아선 아예 그런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살고 싶을 만큼, 정말 새롭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언젠가 꼭 짬을 내서 집에서 한 번 벗어나 보리라 벼르고 있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그동안 너무 ‘방콕’에만 만족해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아이들이 사춘기일 때는 함께 부대끼기가 싫어 이리저리 핑계를 대면서 밖으로 맴돌았고, 아이들이 커서 집을 떠난 후엔 텅빈 집을 ‘적막’이 아닌 ‘평화’로 느끼며 만끽하고 살았던 것 같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 또 늘어나는 순간이다.
그 전에도 여행을 하면서 자연을 마주할 때면 아무 것도 감출 수 없이 발가벗겨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아주 상쾌하게 말이다. 특히 낯선 곳에서 자연을 대하게 되면 더욱 그랬다. 아마 내 마음을 빼앗길 복잡한 일과 물건들이 없어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연은 이런 나를 더욱 부추긴다. 익숙한 환경 속에 있는 이미 익숙할대로 익숙해진 내 모습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모습인 자연의 기를 받아 나 자신 또한 새롭게 느껴진다. 나 자신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질 정도다.
일상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들은 대부분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했을 경우일 때가 많다. 문제란 모름지기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여기다가, 언젠가 문제는 단지 무언가 배울 것이 있다는 신호일 뿐이라는 글을 읽은 후에는 문제가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그 글귀를 되새기곤 했다.
그러면서 삶이란 배움의 연속이고, 문제란 것도 귀중한 배움의 기회라는 것을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마음을 조리는 나를 보면 문제를 해결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깨달아가는 일이 그다지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반면 자연은 아주 편안하고 쉽게 나 스스로를 대면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번 여행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가슴으로 시원하게 들어오는 상큼한 공기와 맑고 따스한 햇살이 내 머리와 가슴을 씻어 내리고 편안하게 그 모습들을 드러나게 했다.
그런데 그렇게 투명해진 나 자신을 즐기는 것도 잠시, 종종 나 자신을 향해 직업의식이 발동하는 평소의 버릇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나 자신에 관해 마치 도서관 자료목록을 정리하듯 정리를 해보는 버릇 말이다.
도서관의 정리 업무는 자료의 내용과 형태를 이용자들이 잘 이용할 수 있도록 기록하는 일이다. 여러 형식의 도서목록이 그 한 예인데, 이 목록은 이용자에게 자료를 알리는 수단이 되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저자와 이용자들간의 교류가 일어나도록 하는 중요한 매체가 된다.
이 정리 임무를 수행할 때 자료에 대한 명확한 파악이 중요한 것처럼, 스스로 투명하게 느껴지는 이 순간이 나 자신을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만이 아는 나, 남들만이 아는 나, 나와 남들이 다같이 아는 나, 그리고 나도 남들도 모르는 나… 이렇게 나 자신을 네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에 대한 카테고리를 시작점으로 삼아 정리하는 버릇이 고개를 들면서 머리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한참 정보정리에 열중하다보니 왠지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고 답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홀연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굳이 이렇게 스스로 생각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끌어내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즐기며, 자연처럼 편안하게 나 자신을 드러내며 사는 맑고 투명한 자연인이고 싶다는 소망이다. 생활을 잊고 자연과 잠시라도 온전히 함께 일 수 있는 이 행복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구나 싶었다. 그런 아쉬움이 혼탁해진 나를 자주 자연으로 떠나게 만들 것 같다.
김선윤 USC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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