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취재 에필로그
경찰은 무엇으로 사는가
세상은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 그리고 착한 이들과 악한들의 대결구도로만 비쳐졌던 어린 시절, ‘수사반장’과 ‘형사 콜롬보’를 보며 그들이 범인을 검거해 가는 과정에서 묘한 쾌감을 느끼곤 했던 것 같다.
이후 성장을 해가며 현실은 드라마 같지는 않다는 것과 좋고 나쁨, 선과 악의 경계 또한 때론 극명하지 않다는 현실을 자연스럽게 깨달아갔지만, 이번 동행 취재를 통해 경찰 역시 실제론 우리가 생각해 왔던 것 이상으로 많은 노고와 위험 부담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 수 있었다.
우선 도넛츠와 커피를 연신 먹어대며 너스레를 떨던 영화속 경찰의 모습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면이 많아 보였다. 10시간의 일일업무 시간 가운데 그런 한가로운(?) 여유 따위는 별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본부로부터의 무전을 수신하며 언제라도 수저를 놓고 뛰쳐나갈 준비를 해야만 했다.
아울러 이틀에 걸친 10시간,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경찰의 업무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이들이 ‘사회의 굳은 일을 담당하는 해결사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다른 운전자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교통법규 위반 차량 단속에서부터 주민 신고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일, 버스에 타 행패를 부리는 취객을 끌어내리는 일, 심지어 차도로 뛰어든 사슴 가족을 안전하게 쫓는 일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업무를 통해, 사회 시스템이 평안히 돌아갈 수 있는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애로사항 또한 이번 취재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순찰중 잠도 쫓을 겸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잠시 S커피샵을 들리려다 성 경관이 갑자기 “저 쪽 주유소에서 파는 커피도 맛있다”며 인근 주유소로 방향을 틀었다. 알고보니 예전에 마약 혐의로 구속했던 백인 여성이 그곳 커피샵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 성 경관 입장에서야 떳떳하지 못할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정면으로 마주치기가 찜찜한 듯 했다. 또한 일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마음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배려도 엿보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가족들과 수퍼마켓이나 식당 같은 곳에 함께 있는데 누군가 아는 척을 할 경우 우선 긴장하게 된다고 한다. 직업 특성상 그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이 ‘좋은 일’로 만났던 사람일 확률이 극히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또한 경찰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뚜렷하게 갖고 있었다. 카운티 셰리프국의 경우 여타 경찰국보다 관장하는 업무가 폭넓기 때문에 다양한 업무를 선택할 수 있으며, 대우 또한 첫 연봉이 7만 5천 달러 가량으로 높은 편이다. 여기에 의료보험료, 연금 등을 셰리프국에서 별도로 지원하고 있어, 이를 모두 합산할 경우 연봉은 12만 달러를 훌쩍 넘어선다.
물론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은 그만한 위험과 노고를 감수해야 된다는 뜻일 것이다.
이번 동행에서 특별한 강력범죄는 다행히 발생하지 않았지만, 하다못해 교통법규를 어긴 차량을 멈춰세우더라도 사뭇 긴장이 됐던 것은 사실이다. 뒤에서 봤을 때 운전자가 남자 같았는데 알고 보니 여자였으며, 아줌마인줄 알았는데 아저씨인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만큼 멈춰세운 차량에 탄 사람의 동태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총기 소지가 비교적 자유로운 이 땅에서 위험은 이처럼 항상 도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잠든 시각에도 이들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샐 수 있는 것은 높은 연봉과 같은 외형적 조건만이 아니라 ‘사명감과 자부심’이 없이는 가능치 않음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인 공직진출 많아져야
실리콘밸리 한인타운의 중심이자 많은 한인업소들이 밀집돼 있는 산타클라라시의 경찰 당국은 지난 5월 본보에 한인경찰 모집 광고를 게재하고 한인 응시자들을 위한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한인 경찰의 채용을 의욕적으로 시도한 바 있지만,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었다.
한인업소 업주들을 비롯한 지역 한인들도 “많은 한인업소들에서 꽤 많은 세금을 시에 내고 있는데 치안을 비롯한 다방면에서 그만한 혜택은 못보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각종 애로사항을 ‘속 시원히 풀어줄’ 한인 경찰의 탄생을 오래도록 갈구해 왔으나, 아직까지 이렇다할 대안은 없어 보인다.
이는 적은 인구수를 감안하더라도 한인들의 경찰, 소방관 등 공직 진출 비율이 극히 미비함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경찰 내에서 인사 관리 책임자가 될 비전을 지니고 있는 성 경관의 말에서 한인들의 공직 진출이 보다 많아져야 될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셰리프국 경찰로 근무하며 한인이나 아시안이 문화적 차이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면서 “앞으로 타민족계 간에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시키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새벽 2시를 기해 섬머타임이 해제됨으로써 실제로는 11시간의 근무를 서야 했던 이날. 순찰을 마치고 사건 조서를 꾸미기 위해 셰리프국 사무실로 향하는 릭 성 경관의 뒷 모습에서 든든함을 느끼며, 그의 안전과 건강을 다시 한번 기원해 본다.
◆ 본 취재를 위해 협조해준 릭 성 경관 및 산타클라라 카운티 셰리프국(국장 Laurie Smith)과 셰리프국 서부지소(캡틴: Terry Calderone)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진
릭 성(오른쪽) 경관과 동기생인 앤디 하월 경관이 밤 9시 30분경 쿠퍼티노 옛날짜장 식당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음주운전자의 송치를 위해 들린 산타클라라 카운티 교도소 입구에서 불응하는 한 흑인여성을 산호세 경찰국 소속 경찰들이 제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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