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세월과 더불어 나를 약혼자 같이 챙겨주었다. 나의 아파트가 불이 났을 때도 아름다운 노랑 장미 한 다발과 누구보다 많은 액수의 금일봉을 보내주었다. 그가 입은 T-셔츠가 너무나도 멋있어서 약혼자 것은 왜 안 샀느냐고 하면 남자 것 밖에 없었다고 마음에 걸리기도 했던 정 많은 나의 황태자, 약혼자. 그는 그 아름답고 비싼 시계를 정동영을 닮은 나의 연인 백화점에 가서 아낌없이 구입했다. 이 사건의 시초는 백화점 부부와 약혼자 부부와 함께 바닷가 식당에서 만찬을 즐기던 날 밤에 생긴 일이었다.
“이게 무슨 시계죠?”
그의 손목에서 반짝이는 시계를 보고 놀라서 던진 내 말에 그는 즉각 시계를 풀어 나에게 채워 주었다. 어찌나 무겁던지 나의 가는 손목이 아래로 쳐졌다.
“이렇게 대단한 시계를 차고 약혼자에게는 선물 안 해요?”
맹세코, 성경에 손을 얹고 말 할 수 있다. 장난이었다. 그런데 그가 답했다.
“가져요, 그 시계….”
무게 때문에도 도저히 내가 찰 수 없는 시계였다. 값으로도 짐작컨대 내 차의 몇 배가 될 것 같았다.
“이건 너무했고, 백화점 친구 집에 가서 제일 큰 남자용 ‘RADO’정도 구입하면 어때요.”
이렇게 시작된 농담이었다. 부인까지 찬성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내 친구들의 부인은 남편이 나와 함께 있다고 하면 재미있게 놀아라, 맛있는 것 사들여라 였다. 물론 남편들도 부인이 나와 함께 있다면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나는 이 부인들과 남편들이 그리고 부모들의 넉넉하고 예쁜 마음들에 고맙기만 하다.
커피가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 북 가주의 연인들이 더욱 더 그리워졌다. 그리고 나의 출생지로 가려는 내 마음을 내 생의 종착지인 북 가주가 계속계속 나를 불렀다. 나의 장례식에서 눈물로 나를 보내줄 친구들, 쌩쌩하게 뛰고 나르는 내 앞에서도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냐고 미리 울고 있는 나의 사랑들. 나의 죽음이 상상이 안 된다고, 아마도 자기들을 다 보내고도 혼자 살아 있을 거라고 하면서도 우는 친구들이다. 하지만 그대들은 모른다. 나의 남은 소망 하나가 그대들 앞에서 지상을 떠나는 것임을. 그대들의 배웅 속에서 댄싱레이디 꽃같이 예쁘게 발레를 하며 천국에 먼저 가서 그대들의 자리를 마련하고 느긋이 기다릴 것임을. 한 사람, 한 사람씩 때가 되어 올 때까지. 커피를 좋아하는 연인들을 위해서는 카페를, 술을 좋아하는 연인들을 위해서는 빠를 예쁘게 만들어 놓고 기다릴 것이다. 취향대로 준비해 놓고 맞이 할 것이다. 나는 맞이하고 맞이하는 역활을 담당 할 것이다. 떠나 보내고 떠나 보내는 역활은 나보다 이성적인 그대들이 맡으라고. 나도 지상에 오래 머무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말했고 나도 알고 있는 삶, 생명의 고마움과 소중함과 위대함과 감격스러움을 철저히 알고 있다 . 얼마나 축복이고 얼마나 황홀한 삶인가를. 얼마나 놀랍고도 경이로운가를. 살아있음 그 자체로 경이요, 감격이요, 황홀이요, 축복인가를. 살아있다는 이 경탄할 만한 축복 속에서 더 많이 느끼고 보듬고 감격하고 사랑하며 베풀어야 할 것을. 아름다운 삶의 축제.
나는 RADO를 보며 살아있는 나의 연인들의 북 가주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이 RADO는 나에게 두 번째 RADO시계다. 첫번 것은 가장 작은 여자 용으로 캐나다 몬트리얼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기차로 횡단한 기념 선물인데 작가 일행 중 한 명이 내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 작가의 일생에서 가장 큰 금액을 지불한 것이라고 어깨를 쫙 펴고 준 선물인데 불이 났을 때 타버렸다. 그리고 역대 대통령 이름의 시계는 줄줄이 있으나 누구 것도 생명력과 사랑이 없어 차지 않았다. 내 방에 진열된 물건들의 대부분은 사실로 물건이 아니었다. 생명과 사랑이 있다. 친구들이 내게 준 것들로 그들의 얼굴이었고 나와 항상 함께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들은 내가 무엇이 갖고 싶은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고 또 묻는다. 이렇게 북 가주에서 사랑의 대 가족을 이루고 있음을. 엄마요, 누나요, 연인이요, 약혼자로.
“행복해 하실 겁니다.”
황태자 약혼자가 시계를 구입하며 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결국 이 시계 역시 물건이 아니었다. 우정이 있는 생명체였다. 이렇게 삶은 감격이고 축복인데, 우리 모두는 떠나게 되어있다. 다만 떠나는 날의 선택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런 날 이렇게 떠나고 싶다. ‘별들만 노래하고 지상엔 모든 음향이 일제히 정지 했을 때’가 아닌, 잠든 뿌리가 봄 비로 깨어나는 봄, 죽은 땅에서 라일락이 자라는 봄, 온갖 새들이 노래하는 화창한 4월의 오후에, ‘베토벤’의 ‘황제’를 들으며 내 방의 물건들 그 주인들의 얼굴이 나를 둘러 싼 가운데 의자에 기대어,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며 ‘그대들이 존재해서 행복했노라’고, 감사와 감사의 송별사를 끝으로 하직하고 싶다. 그리고 영원의 나라로 향해 나그네 인생 길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꽃 속을 넘나들며 꿀을 빨아 먹고 사는 허밍버드 같은 생이었지만, 실은 얼마나 힘든 날개 짓이었는지. 아, 바람 같이 쳐야 하는 날개 짓의 고달픈 삶. 비록 독을 간직한 채 꿀을 모으는 벌과 같은 삶은 아니었지만, 꽃과 꽃 속을 날라 들며 꿀을 먹고 사는 허밍버드의 아름다운 몸치장 뒤에는 날개 짓의 힘든, 엄청난 댓가가 있었음을, 그 댓가의 비밀을 홀로 간직한 채 떠날 것이다.
내 생애에 기억되는 최초의 눈물을 흘리게 한 기차. 외삼촌을 태우고 예산을 떠난 기차를 타고 나는 예산으로 가고 있었다. 처절한 가을비 같이 흘러 내리던 기억을 안고 마음의 타임머신을 타고 기차에 앉아 있었다. 이별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어린 꼬마에게 예산 역의 잔디는 월드컵 구장만큼 넓고 넓었었다. 지금, 추억 여행을 하는 기차에는 외삼촌이 함께 탔다. 이병주는 예산으로 가보라 했고, 그리고 이제는 외삼촌이 동석했다. 나는 확인 했다. 살아서의 관계는 사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을. 물리적으로만 옆에 없을 뿐 언제나 함께함을. 그러나 보고 싶다. 지금도 외삼촌과의 최초의 이별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살아서의 이별이었는데도. 그 날의 기차, 기적소리와 바퀴 굴러가는 소리는 역 앞을 지나던 말 발굽소리와 함께 슬픔에 겨운 나를 잔디에 쓰러트렸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어쩌면 그리도 애절하고 슬펐던지. 자연도 슬펐고 말도 슬펐고 인생이 슬펐다. 그 후로 기차는 누구를 태우고 떠날 때만 아니고 내가 타고 있어서도 구슬펐다.
바퀴소리, 기적소리, 정차하고 떠나는 소리, 기차와 관련된 모든 소리는 이별의 소리였다. 티부론의 작곡가 친구는 두릅 따는 소리에서 환상적인 천상의 음을 들었다고 했다. 요한 스트라우스는 비엔나의 숲 속을 지나다가 들려오는 소리, 연인을 태운 배가 떠나는 다눕강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전 세계인의 귀와 뇌와 가슴을 살맛 나게 만든 음악을 남겼다. 덩컨은 테크닉을 통해서가 아닌 베토벤, 쇼팽, 바그너의 음악에서 영감을 통해 인간 정신의 신성한 표현을 찾아 냈다고 했다. 물론 그들 못지 않게 니체도 춤의 스승이었다고 했다. 니체의 철학 속에서도. 때문에 덩컨은 소위 아리스토텔레스적 개념의 카다르시스의 경지에 까지 고향 시켰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덩컨을 묘사한 작가들은 말한다. 덩컨은 음악을 들을 때면 음악의 광선과 진동이 자신의 속에 내재한 이 하나의 빛의 샘으로 흘러 들어감을 발견했다고.
위대한 예술가들은 소리를 들으며 고도의 아름다운 작곡도 하고 춤도 춘다. 나는 기차 바퀴 돌아가는 소리나 들으며 비애에 젖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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