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포트워싱턴)
26시간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금요일 밤 11시쯤에 뉴욕을 출발하여 루레이 동굴과 쉐난도 국립공원을 돌아보고 일요일 새벽 1시쯤에 돌아왔다.
이번 여행은 순전히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나와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는 이정근 집사가 지난번 노동절 연휴 때에 쉐난도 국립공원으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었다. 여행을 가겠다는 이 집사를 내가 만류했었다. 노동절에는 교회에서 야유회를 가기로 했으니 쉐난도에는 가을에 나
랑 같이 가자고.
이 집사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나면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들었다. 금요일 밤에 출발하여 토요일 밤에 돌아올 것 같지가 않았다. “형님, 하루 더 있다 갈까요?”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럴까?” 하고 내가 맞장구를 칠 것이 뻔했다. 목사님을 모시고 가기로 했다.
기왕에 가는 것, 자동차의 좌석을 채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김종두 집사가 같이 가기로 하였다.
금요기도회를 마치고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운전은 이 집사와 김 집사가 교대로 하고, 나는 앞좌석에 앉아 길을 안내하고 목사님은 말벗을 겸한 상담역이 되어주시고... 캄캄한 밤중이라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네 사람 모두 마냥 행복한 표정들이었다.
한국 최고의 재벌그룹의 중역으로 근무하다 자의로 회사를 그만두고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김목사님,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살던 분이 교회를 개척하여 전체 교인이라고 해야 서른명도 안되는 작은 교회를 지켜 나가려니 왜 답답함이 없겠는가?
이 집사도, 김 집사도 가슴에 담아두고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이 쌓여 있겠는가?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어댄다.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보다는 지금의 아픈 이야기가 더 많았다.
누가 들을까, 누가 흉이나 잡아내지 않을까 염려되어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꺼내어 놓는다. 같은 아픔들이다. 이 집사의 아픔이 김 집사의 고통이고, 김 집사의 고통이 나의 설움이며, 나의 설움이 목사님의 답답함이었다.“너무 좋습니다” 김 집사의 말이었다. 토요일에 근무를 해야 하는데 직장을 쉬고 우리를 따
라나선 김 집사,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운전해 가면서도 얼굴에는 만족감이 넘쳐 흐른다. 하고 싶었던 말을 해버린 데서 온 홀가분함이 가져다 준 평안함이었을까? 아니면 자기 혼자만 겪는 어려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였을까?
우리의 삶 자체가 여행이다. 어머님의 몸 속을 출발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긴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인생 여정이 평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인생 여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출생이라고 하는 출발지와 죽음이라고 하는 도착지는 아무도 변경할 수 없다. 같은 곳을 출발하여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여행을 같이 할 동행인이다. 여행의 동반자는 각자가 선택할 수 있다. 여행이 즐겁고 아니고는 어디를 가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여행을 같이 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여행의 동반자를 만난다. 그 동반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 동반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 여정의 모습도 달라진다. 포근하고 따뜻한 동반자를 만난 사람들의 얼굴엔 늘 미소가 감돈다. 날카롭고 사나운 동반자를 만난 사람들의 얼굴엔 늘 긴장감이 배어 있다.인생 여정의 가장 긴 항로를 동행하는 사람은 배우자이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오랫동안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하는 사람이 남편이고 아내이다.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른 경우가 많이 있다. 평생을 같은 길을, 같이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이 왕왕 다투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늘 다투기도 한다.
단 하룻밤을 같이 여행했던 우리 네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다툼이 없었고 생각의 차이도 없었다. 그런데, 같은 이불을 덮고 잠을 자는 사람들 사이에는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사람들 사이에는 다툼도 많고 생각의 차이도 많다.
남과 가족이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가족이기에 더욱 더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차피 평생을 같이 걸어가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여정이다. 그 여정을 즐겁게 만들어가야 할 책임이 우리 각자에게 있다. 그 책임을 동행인에게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나랑 같이 걸어가는 사람이 나로 인하여 즐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로 인하여 나의 동행인이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동행인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 그 사람이 멋진 동행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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