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명 여가수가 북한의 여자 무용수와 만난다. 손을 잡는다. 함께 춤을 춘다. 음악의 볼륨이 커지면서 통일 한국을 상징하는 깃발이 화면 가득히 펼쳐진다’-. 뉴욕타임스 보도다.
서울에서 북동쪽으로 불과 190마일 떨어진 곳에서 핵실험이 강행됐다. 그러나 분노의 소리는 없다. 그 가운데 ‘남과 북은 하나’라는 커머셜이 아무 저항감 없이 방영된다. 이 현상을 놀라움으로 새삼 바라본 것이다.
“한국인들은 가상의 위협에 무기력한 반응을 보인다. 어른들은 무의식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콘크리트 블록 속에서 배터리로 작동되는 병아리 같이 길러진 젊은이들에게는 무지가 약이다. 그들에게는 컴퓨터 게임의 전쟁이 훨씬 더 리얼하다.” 한 서방관측통의 전언이다.
핵구름에 온통 가려 있었다. 그러다가 하나 둘 사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평양만 클로즈업됐다. 그 다음은 베이징이다. 그리고 서울이다. 노무현 정권이 어떤 대응에 나설까. 관심은 동시에 한국민에게도 쏠린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국가적 위기다. 6.25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이 위기의 상황에 ‘대통령은 부재중’이다. 말이 매일 달라진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어느 방향으로 나라를 끌고 간다는 것인지. 도통 알 길이 없어서다. 그 와중에 정치는 실종됐다. 그리고는 계속 우왕좌왕이다.
본래가 대량학살 체제다. 평화 시에도 수백만을 굶겨 죽였으니. 그 김정일 체제가 핵실험을 했다. 민족공멸을 불러올 수도 있는 또 다른 대량학살무기를 손에 넣은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민들은 무덤덤하다. 화를 내다니. 화를 내는 사람을 이상히 여기는 분위기다.
혼란이다. 모순덩어리다. 북의 핵실험 3주가 지난 오늘 외부에 비쳐지는 한국의 모습이다. 이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한국형 내셔널리즘이란 프리즘을 통해 보면 그 실상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게 아닐까. 핵실험 이후 한국을 바라보는 외부 시각은 점차 이쪽으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피터 마아스가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주장한 내용이다. 그에 따르면 한반도는 본래 내셔널리즘의 온상이다. 한반도에서 진행된 냉전도 그렇다는 거다. 따지고 보면 내셔널리즘에 뿌리를 둔 두 체제간의 대립이었다는 말이다.
한쪽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한다. 다른 한쪽은 스탈린주의의 전체주의 체제다. 그러나 근본에 있어 두 체제 모두가 민족주의를 지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분단도, 한국전쟁도 따라서 그는 이 민족주의라는 원자의 분열로 파악한다.
대립상황에 있던 남과 북의 내셔널리즘이 공통분모를 찾기 시작했다. ‘햇볕’이후 한국에서 일고 있는 현상이다. 북을, 김정일 체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진실은 많은 한국인들이 김정일 체제의 영속을 바라고 있다는 데 있다. 김정일 체제의 붕괴는 경제적 희생을 요구한다. 그게 싫은 것이다.” 로버트 카플란의 지적이다.
대놓고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본 한국은 민주체제와 천박한 물질주의가 혼합된 그런 사회다. 진정한 의미의 인권, 자유 등의 가치관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런 진단과 함께 그는 질문을 던진다. 한국민은 폭정체제에 갇혀 있는 북한 동포를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해방시킬 각오가 돼 있을까. 그가 내린 답은 ‘아니다’로 기운다. 왜. 그 답을 그는 ‘햇볕’으로 위장된 뒤틀린 내셔널리즘에서 찾는다.
‘햇볕’은 억압 받고 있는 북한주민에 빛을 비추는 정책이 아니다. 반대로 김정일 체제의 영속을 추구하는 정책이다. 따라서 북한체제의 붕괴는 결코 바라지 않는다. 그러면서 남과 북은 하나를 외친다. 한국이 보이고 있는 혼돈과 모순의 출발점은 여기에 있다.
이 ‘햇볕’에 중독된 한국의 모습을 케이토연구소의 더그 밴도우는 이렇게 묘사한다. “한국은 미국의 보호를 요구한다. 동시에 미국의 과거의 죄를 비난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이해에 반하는 정책을 추구한다.”
‘주체’의 찬가가 울려 퍼진다. ‘자주’의 노래가 화답한다. 그 주체와 자주가 만나면서 핵실험이 강행되고 ‘민족끼리’의 구도가 완성됐다. 이 ‘민족끼리’를 보는 외부의 시선이 그러나 차갑기 그지없다. 한국의 진실은 도대체 뭔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벌써 여러 얘기가 들린다. 현대와 삼성의 대북사업을 조사하는 의회청문회를 열어라. 미군을 철수시키고 한국에서 손을 떼라 등등.
“한국은 위기 상황이다. 한국의 입장이 뭔지 확실히 알려야 한다. 100년 전 구한말의 경험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한 친한파 외국관측통의 충고다. 이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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