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업(필라델피아)
수년 전 시카고에서는 1961년 퓨리처상 수상작품인 하퍼리의 ‘앵무새 죽이기’라는 책을 일정기간 전체 시카고 주민이 동시에 읽는 행사를 벌였다고 한다. 이 책은 열살 어린이의 눈을 통해 인종차별의 실상을 고발하고 아름다운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채로운 인물과 사건을 통해 사려깊은 여성으로 커간다는 내용의 장편소설이다.
시카고는 이 기간 동안 도시 전체가 이 책에 대한 토론과 평가로 시끌벅적했다는데 정말 신선한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행사는 책의 문화와 책을 사랑하는 문화가 바탕에 깔려있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는 행사일 것이다. 이 행사를 우리나라에서 벌인다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행사가 성공할 가능성마저 희박할 뿐만 아니라 성공한다 하더라도 책의 선정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 뻔한 일이다.
한편 일본에서도 수년 전 ‘우동 한 그릇’이란 책이 나와 이것을 읽은 국회의원도 울고 학생도 울고, 회사원도 울고 주부도 울어 일본 전체가 우동 한그릇에 비친 인간애, 가정의 소중함으로 눈물바다가 된 적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은 독자는 기억하리라.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책 읽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내 삶을 바꾼 한 권의 책’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독서와 책의 중요성을 외치는 목소리가 요란하다.“책을 읽자”라는 구호는 대다수 사람들이 초등학교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까지 지겹도록 한국에서 들어온 식상한 말이다.한국은 인구 대비 도서관 수는 OECD 회원국 중 중국을 제외하고 최하위권으로 전락했으며 말레이시아나 몽골보다도 낮은 수준인 것을 국제투명성기구(TI) 자료에서 볼 수 있다.
최근 ‘도서관 콘텐츠 확충과 책 읽은 사회 만들기’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경희대 도정일 교수의 지적에 의하면 우리나라 중앙정부의 도서 구입 예산이 약 50억에 비해 하바드는 275억, 대략 1/5의 수준.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400개인데 비해 월드컵을 공동주최한 일본은 2,500, 독일은 6,313개, 미국은 8,964개이다.
인구 대비 도서관 수로 보면 핀란드의 경우 도서관 하나에 3,000명, 독일은 3,900명, 일본은 4만8,000명인데 한국은 11만5,000명, 이런 비율로 따지면 도서관이 가장 많은 서울이 전국 최악의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실정에서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본부는 다음과 같은 기자회견을 가졌다.
첫째, 공공도서관은 국민의 알 권리와 평등한 정보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 인프라이다. 둘째, 공공도서관의 시설 확충과 투자는 정치, 사회, 문화의 중요성에 비추어 국민의 세금을 받는 국가가 당연히 이행하여야 할 의무사항이다. 셋째, 현재의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의
현실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비참하고 열악한 수준이다.
21세기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공공도서관의 건립과 시설 확충이며 이를 위해 정부는 장,단기 대책을 마련하고 이에 필요한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선정해야 한다.곳곳에서 ‘책의 위기’ ‘문학의 죽음’ ‘출판의 종말’ ‘인문학의 실종’을 운운하는 불길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TV와 영화의 등장으로 책은 이미 낡은 것으로 치부되고, 컴퓨터와 인터넷의 출현으로 젊은이들마저 점점 독서를 멀리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책을 읽는 행위를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것으로 은근히 경멸하는 시각이다. 전자책이라는 강력한 매체의 출현으로 전통적인 종이 책은 끝내 종말을 고할 것인가. 책의 무덤으로 전락한 우리나라 도서관 문화의 현실은 언제쯤 개선될 것인가.과연 인터넷은 모든 것이 빠르고 알차고 무제한적으로, 게다가 공짜로 제공되는 마법상자일까?
그렇다면 인터넷이나 정보 인프라가 우리보다 더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왜 매년 도서관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도서관 예산을 해마다 높게 책정하고, 책의 전산화와 더불어 더욱 많은 종이 책들을 구입하는 걸까? 참으로 한국문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미국 국회도서관을 찾아야 한다
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강대국이나 선진국들은 한결같이 책을 끊임없이 읽고, 이것이 일상화된 국민이 많은 나라들이다. ‘책을 읽지 않는 국민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치열한 이민의 삶 속에서도 미래를 위해서나 후세를 위해서도 우리 자신부터 독서를 멀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가을만 왜 독서의 계절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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