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교육가)
‘안토니오 코레아’는 누구인가. 그가 처음에 이름 없이 한국내에 알려진 것은 1983년 피터 폴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 그림이 영국 경매장에서 32만4,000 파운드라는 엄청난 고액으로 판매되었다는 보도가 있고 난 이후이다. 루벤스는 바로크시대의 대표적인 미술계 인물이며,
서양 미술사에 빛나는 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17세기 유럽에서 그의 초상화 모델이 된 한국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흥분을 자아내는 첫 보도가 나가자 고 천관우(역사학자·언론인)씨는 곧바로 안토니오 코레아의 도항연대와 루벤스의 활동연대가 엇비슷하다고 알려 주었다. 그 이후 발표된 부산대 곽차섭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루벤스의 초상화 모델은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다 당시 일
본에 와 있던 이탈리아 상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를 따라 로마로 건너가 안토니오 코레아란 이름으로 살았다. 그에 관한 기록은 카를레티가 남긴 ‘나의 세계 일주기’에서 확인된다’고 하였다. 이 논문은 경매 당시는 ‘한복 입은 남자’라는 제목이었으나 현재 그 작품을 소장 중인
게티미술관이 ‘한국 남자’로 바꾼 초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인하였다.
곽 교수의 논문 기사와 함께 게재된 ‘한국 남자’의 모습에 깊이 감명을 받은 필자는 지금도 그것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첫눈에 그는 분명히 한국 남자다. 훤칠한 그의 모습에는 기품이 있다. 광대뼈가 나오고 미간이 넓은 얼굴에는 조용함과 넉넉함이 담겨있다. 그가 입은 ‘천릭’(임진왜란 전후에는 평상시 외출복의 정장이었다 한다)과 머리에 얹은 ‘말총 方巾’이 멋있다. 그는 가슴 아래에 풍성한 천릭 소매 안으로 두 손을 맞잡고 의젓하게 비스듬히 서 있다.그는 세속적인 ‘꽃미남’이란 말이 주는 가벼운 느낌이 아니고,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한 때 끌려갔고, 팔려간 사람의 모습이 전연 아니다. 이렇게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 첫 번째(?) 한국 남자로 유럽에 소개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것도 당대를 대표하던 루벤스의 초상화 중에서 가장 잘 그려진 작품 중의 하나로 현재까지 남게 된 것은 얼마나 강한 운인가.
그런데 루벤스는 왜 한국 남자를 그렸을까. 앞에 말한 곽 교수는 ‘기독교가 모든 세계로 다 퍼져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동양 세계를 포함해 다양한 이국적 소재를 그린 것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현재와 달리 교통 수단이 어려웠던 과거에도 끊임없이 인간과 물질의 교류가 있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문화권에 살면서도 비슷한 점이 있음이 흥미롭다. 인간과 물질의 교류는 거기에 부수된 문화교류를 뜻한다. 문화교류는 각 지역의 특색있는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더 한층 풍요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안토니오 코레아의 초상화를 보면서 유럽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그의 늠름한 기상, 보기 좋은 얼굴과 체격, 풍성한 의상 등에서 아마도 조용하면서도 품위있는 동양의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초상화의 모델 이상으로 문화사절의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안토니오 코레아의 등장은 그를 둘러싼 근거가 미약한 추측도 함께 재생산하였다는 것이 곽 교
수의 지적이다. 그 중의 하나인 이탈리아 남부의 알비(Albi)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200여명의 코레아 성씨가 안토니오 코레아의 후손이란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안토니오 코레아가 확인되면서 상상의 나래가 넓게 펴졌음을 탓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안토니오 코레아를 현재와 미래로 연장시키고 싶은 우리들의 바램이었을 것이니까.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수효가 660만명이 넘으며 175개국에 퍼져 살고 있는 현실은, 나라 밖에 또 하나의 문화권을 마련한 것이다. 이들이 제각기 한국인의 좋은 이미지를 심을 때 그 문화권은 거주국과 한국에 공헌하게 된다. 마치 루벤스의 한국 남자 처럼 넉넉함을 풍긴다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금 새삼스럽게 안토니오 코레아를 생각하는 이유는 게티미술관이 루벤스의 ‘한국 남자’를 포함한 한국 기획전 계획을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그림으로나마 안토니오 코레아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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