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으로 지난 한주 국제사회가 어수선했다. 한국은 한국대로, 우리가 사는 미국은 미국대로 제각기 걸린 이해관계 때문에 북핵은 매일 신문과 TV 뉴스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미국에 살면서 ‘코리아’라는 말을 이렇게 자주 보고 들어본 때도 없는 것 같다.
미디어에서 워낙 자주 ‘김정일’이 거론되다 보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코리안은 김정일’이라고 농담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미국의 여론은 두 가지가 주류를 이룬다. 악한 세력들은 쳐부술 대상일뿐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시 행정부 정책 지지여론과 어떤 세력이든 다독이며 같이 풀어 가야한다는 클린턴 행정부식 외교정책 지지여론이다. 요즘 미국 블로그들을 보면 “뭘 망설이나. 북한 같은 나라는 당장 폭격해서 혼 내줘야 한다”는 섬뜩한 주장부터 “악의 축이라며 자꾸 몰아붙이니 북한이 핵실험까지 간게 아닌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차분한 주장까지 의견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 사이로 한가지 눈에 띄는 제3의 주장이 있다. 미국의 리더십에 관한 비판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미국만 그걸 모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지구상의 최강국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밑에서 도움 받던 개발도상 약소국들의 입지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미국을 ‘선생님’으로 시장경제며, 자유무역, 첨단 기술개발의 필요성들을 배운 나라들이 급속하게 부강해져서 미국의 눈치만 보던 이전의 고분고분한 나라들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자녀를 키우며 부모들이 종종 하는 실수가 있다. 아이는 고등학생으로 자랐는데 여전히 초등학생 다루듯 하는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 노릇이 쉽다. 아버지가 언짢은 기색만 보여도 아이는 당장 말을 듣는다. 아이의 세계에서 아버지는 최고의 권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그런 ‘약발’이 먹히지를 않는다. 10대가 되어 몸집이 커지고 자의식이 생기면 독립적인 개체로 존중받고 싶은 법인데 부모가 여전히 어린아이 취급을 하면 갈등과 충돌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처지가 이 비슷하지 않을까. 미개발의 빈곤국, 약소국이었던 나라들이 잘 살게 되면서 미국의 입김이 전같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자주국방’을 내세우는 한국도 그 한 예이다.
21세기가 되면서 지구상에는 변화들이 일고 있다. 브릭스(BRICs) 등 신흥경제국가들이 무섭게 잠재력을 키워가고 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4개국 경제협력체인 브릭스는 앞으로 40-50년 후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만큼 막강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20세기 최빈국이던 인도는 어느새 소프트웨어의 허브가 되어 있고, 중국은 명실공히 세계의 공장이다. 악성 인플레로 불안하기 짝이 없던 브라질, 구 소련 해체 후 혼란기를 겪었던 러시아도 이제는 탄탄하게 성장의 길을 달리고 있다. 드넓은 국토에 천연자원 풍부하고 인구는 다 합치면 전 세계의 40%를 차지하는 이들 국가가 21세기 중반 강대국이 될 것은 거의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2045년이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의 경제 대국이 될 것으로 골드만 삭스 보고서는 이미 결론지었다.
미국이 최강국의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현재로서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 상상의 어려움을 100여년전 뉴욕타임스도 느꼈었다. 1897년 6월22일 대영제국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축제 때였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은 전 세계 인구의 1/4, 전 세계 영토의 1/5을 통치했었다. 식민 통치하던 나라만 11개국. 그런 나라의 쇠퇴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 행성을 지배할 운명이라는 게 너무도 명백한 대영제국 …우리는 그의 한 부분이다”고 뉴욕타임스는 당시 썼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그대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던 옛날의 그 나라들이 아니다. 미국은 그대로인데 다른 나라들이 점점 커지고 있다. 21세기에도 미국이 세계 리더로서의 위치를 지키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부모가 10대 자녀들을 대하듯 존중과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미국이 앞에서 혼자 이끌어도 되던 시대는 저물고, 더불어 같이 나가야 하는 시대가 되는 것 같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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