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 여성은 이제 평등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아직도 정답은 없다. 평등하기도 하고, 평등하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가’ 보느냐,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남성의 시각으로는 ‘그만하면 평등’한 상황도 여성의 눈에는 ‘아직도 먼’ 경우가 많고, 학교라는 무대를 보면 평등한데, 직장을 무대로 하면 크고 작은 불평등이 남아 있다.
남녀 평등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았나를 점검해 보려면 간단한 방법이 있다.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려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학교 교실. 반장이 아이들을 통솔하는 장면을 그려보고, 남녀를 대입해 본다. 어느 쪽이든 자연스럽다면 남녀평등은 뿌리를 내린 것이다.
다음은 대기업의 사무실. 상사가 부하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는 장면을 그려본다. 상사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무대를 가정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부부가 함께 퇴근해 한 사람은 허둥지둥 부엌으로 달려가고 다른 한 사람은 맥주 캔 들고 느긋하게 TV 앞에 앉는다. 전자는 아내, 후자는 남편 - 남녀 역할을 바꾸면 도무지 어색하다. 전통적 성 역할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 남녀평등의 마지막 관문 - 바로 가정이다.
지난 주 한국의 교육부는 교과서에서 남녀 역할에 대한 성차별적 내용들을 걸러내 수정·보완한다는 발표를 했다. 한국 신문들이 발췌해 보도한 교과서 내용들을 보니 역시 차별의 무대는 가정이었다. 예를 들어 중학교 2학년 사회교과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씨는 초등학생 아들을 둔 어머니이자 직장인이다. 그녀는 바쁘지만 아이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러나 그 외 집안살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 집안살림이 엉망이 되곤 한다”
집안살림은 여성이 할 일인데 그 어머니는 본분을 다 못한다는 질책이 은연중에 담겨 있다. 새 교과서는 집안살림을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이좋게 같이 나눠하는 모습을 담게 될 것이다.
지난 달말 서울시는 가정 내 남녀평등을 위한 홍보행사를 마련했다. ‘가치(家治)! 둘이! 함께!-남녀평등 가사·육아분담‘이라는 이벤트였다. 가사노동은 여성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남성들이 가사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한다는 취지였다.
행사 중 재미있는 이벤트가 있었다. 참가자들이 ‘우리 집의 가사분담 점검하기’라는 테스트를 통해 스스로 어떤 유형의 부부인지를 알아보는 이벤트였다. 부부 유형은 남편의 가사분담 정도에 따라 순서대로 평등한 부부, 무던한 부부, 가부장적 협력 부부, 진보적 동참 부부, 보수적 동참 부부, 진보적 비협력 부부, 평범한 비협력 부부, 노력이 필요한 부부의 9가지로 나뉘었다.
가장 이상적인 유형인 ‘평등한 부부’는 남녀가 평등하다는 인식 속에 집안 일도 공평하게 나눠하는 관계. 반면 결혼 초부터 남편은 ‘하늘’로 군림하고 아내가 수족처럼 뒷바라지하는 관계는 ‘노력이 필요한 부부’가 된다.
‘가부장적 협력부부’는 남편이 가장으로서의 전통적 권위의식을 가지면서도 집안 일은 돕는 부부, ‘진보적 비협력 부부’는 남편이 머리로는 남녀평등을 믿으면서도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유형이다.
서울시가 가사분담 홍보를 펼치고, 교육부가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부부 맞벌이 현실에도 불구, ‘남편은 바깥 일, 아내는 집안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바뀌지 않아 여성들에게 가사부담이 너무 편중되고, 그것이 출산 기피로 연결돼 기록적 출산율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여성들의 가사·육아 부담을 나누지 않으면 인구가 계속 줄어들겠다는 사회적 경각심의 결과이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안 따라 주는 것 - 많은 남성들에게 가사노동이 그렇다. 미국에서 교육받아 남녀평등에 한치 의심이 없는 2세 남성들도 막상 결혼해 가정을 이루면 1세의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경우를 많이 본다. 부부가 똑같이 일하는 데도 집안 일은 아내 일로 여기고 남편은 거드는 수준에 머물러 부부 갈등의 원인이 되곤 한다. 남자와 대등하게 자라고 자기 의견 똑 부러지게 밝히는 2세 여성들이 부부간 불평등을 감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에게 쉼터, 여성에게는 제2의 일터인 가정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아들이 장차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하려면 가정교육이 필요하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 구별 없이 집안 일을 공평하게 나눠하는 훈련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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